제3 수행품(修行品) 57장
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57장
또 말씀하시기를 [공부하는 사람이 각자의 마음 병을 발견하여 그것을 치료하기로 하면 먼저 치료의 방법을 알아야 할 것이니, 첫째는 육신병 환자가 의사에게 자기의 병증을 속임 없이 고백하여야 하는 것 같이 그대들도 지도인에게 마음병의 증세를 사실로 고백하여야 할 것이요, 둘째는 육신병 환자가 모든 일을 의사의 지도에 순응하여야 하는 것 같이 그대들도 지도인의 가르침에 절대 순응하여야 할 것이요, 세째는 육신병 환자가 그 병이 완치 되도록까지 정성을 놓지 아니하여야 하는 것 같이 그대들도 끝까지 마음병 치료에 정성을 다하여야 할지니, 이와 같이 진실히 잘 이행한다면 마침내 마음의 완전한 건강을 회복하는 동시에 마음병에 허덕이는 모든 대중을 치료할 의술까지 얻게 되어, 너른 세상에 길이 제생 의세의 큰 일을 성취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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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따라 정과 혜를 적절히 활용할지니]
<손정길 교무/남중교당>
[손정길 교무의 ‘수심결’]
然이나 障濃習重하고 觀劣心浮하야 無明之力은 大하고 般若之力은 小하므로 於善惡境界에 未免被動靜互換하야 心不恬淡者는 不無忘緣遣蕩功夫矣니 如云六根이 攝境에 心不隨緣을 謂之定이요 心境이 俱空하야 照鑑無惑을 謂之慧라하니 此雖隨相門定慧라 漸門劣機의 所行也나 對治門中에 不可無也니라 若掉擧가 熾盛則先以定門으로 稱理攝散하야 心不隨緣하야 契乎本寂케하고 若昏沈이 尤多則次以慧門으로 擇法觀空하야 照鑑無惑하야 契乎本知케할지니 以定으로 治乎亂想하고 以慧로 治乎無記하야 動靜相이 亡하고 對治功이 終하면 則對境而念念歸宗하고 遇緣而心心契道하야 任運雙修하야 方爲無事人이니 若如是則眞可謂定慧等持하야 明見佛性者也니라 〈수심결〉 29장
(직역) 그러나, 업장이 두텁고 습관이 무거우며 법을 관하는 힘이 약하고 마음이 떠서 무명의 힘은 크고 반야의 힘은 작으므로 선악 경계에 동정이 서로 번갈아 번뇌를 일어냄을 면치 못하여 마음이 편하고 담담하지 못한 이는 인연을 잊고 방탕을 없애는 공부가 없지 못할지니 저 이르되 "육근이 경계를 대하되 마음이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는 것을 정이라 하고 마음과 경계가 한가지로 공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 미혹됨이 없는 것을 혜라"하니 이 비록 수상문 정혜라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행하는 바이나 망연을 대치하는 문 가운데에는 가히 없지 못할지니라. 만일 산란심이 불같이 일어난즉 먼저 정으로써 자성 본리에 맞추어 흩어진 마음을 거두어 들여 마음이 망녕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여 본래 고요한 자리에 계합하게 하고 만일 혼침이 많은즉 혜로써 법을 택하고 공을 관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 미혹됨이 없어서 근본 지혜에 계합하게 할지니 정으로써 난상을 다스리고 혜로써 무기를 다스려 동정의 상이 없어지고 대치하는 공이 다한즉 경계를 대하여도 생각 생각이 근본에 돌아오고 인연을 만나도 마음 마음이 도에 계합하여 자유로이 운전하고 쌍으로 닦아 곧 일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정과 혜를 평등하게 가져 밝게 불성을 본 이라 할 것이니라.
(설명) 29장에서 보조는 아무리 견성을 하였다 할지라도 과거다생에 쌓여온 업력과 습관은 일시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통해 정화를 하되, 하열한 근기의 수행이라 할지라도 수상문 정혜를 통하여 상황과 경계에 따라 대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일시에 휩쓸어 버린다. 아무리 수많은 공덕을 쌓고 선업을 지었다 할지라도 교만한 마음하나가 들면 소무공덕(所無功德)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분별심과 집착을 극복하려면 자성의 본원으로 돌아가 반조하여 경계따라 대응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점차로 지성으로 닦아나가다 보면 어느새 무의식까지 정화되어 유념하거나 심력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도와 계합하고 육근동작이 모두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무의식에 내재된 업을 정화하기 위해서 마음과 대상을 모두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잡념만 털어내면 되는 것이다.
정으로써 난상을 다스리고 혜로써 무기를 다스려
동정의 상이 없어지고 대치하는 공이 다한즉
생각이 근본에 돌아오고 마음이 도에 계합할지니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그 순간의 마음만 알아차리고 있으면 된다. 알아차림은 본래 고요하고 또렷한 마음상태로 각성되어 있는 것이다.
<정전> 좌선법에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라는 내용과 무시선법에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 지니라"는 내용은 점수의 핵심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상문 정혜는 하열한 근기의 수행이라 하였으나 순간 순간 변심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방편으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조도 인정한 것이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이 있다는 것을 먼저 제대로 알아야 적합한 약재를 처방하듯이, 무지와 아집의 마음병 또한 스스로 깊이 자각하여야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부처가 되기 위한 서원을 세워 쉬지 않고 정성을 다해 닦아가는 눈물겨운 과정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요, 처방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적공하다 보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반야의 지혜가 솟아나고 나와 남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는 자비가 넘쳐서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정화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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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영지의 광명[空寂靈知-光明]
[개요]
‘공적’은 텅 비어서 고요한 상태를 묘사한 말로서, 대적(大寂)ㆍ적적(寂寂)ㆍ적묵(寂黙)ㆍ정정(定靜)ㆍ적정(寂靜)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영지’는 문자 그대로 신령스러운 지혜광명을 표현한 말로서, 그처럼 공적한 가운데 무루(無漏)의 지혜광명이 나타나서 시공을 통해 소소영령하게 비추지 않는 곳이 없고, 그 광명에 들지 않는 바가 없음을 뜻한다. 공적영지는 진공ㆍ묘유와 함께 ‘일원상진리’의 본질적 속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서, 진공묘유가 주로 존재론적, 우주론적 입장에서 진리의 속성을 밝힌 것이라면, 공적영지는 주로 인식론적, 인성론적 관점에서 그 속성을 밝힌 것이다.
공적영지 또는 공적지(空寂知)는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돈오(頓悟)사상을 크게 선양하여 북종선을 배척하고 남종선을 주창했던 신회(神會)가 제시한 개념으로 그가 개창한 하택종(荷澤宗)의 중심사상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보조지눌에 의해 적극 수용되었으며, 돈오점수설의 사상적 배경이 된 서적으로 《수심결》을 들 수 있다. 이후 소태산대종사가 이를 중시함으로써 일원상의 진리를 온전히 드러냄과 동시에 마음공부를 함에 있어서 핵심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용]
공적영지의 개념적 의미는 진리의 본체가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런 걸림이 없는 가운데 신묘불측하고 소소영령한 지혜광명이 무궁무진하게 비추고 있음을 뜻한다. 공적과 영지의 뜻을 좀 더 자세히 밝혀본다. 진리의 체성은 원래 텅 비고 고요하여 막힘이 없는 자리이며, 우리의 심지(心地)도 원래 일체의 요란함과 어리석음과 그름이 없는 청정한 자성인 것이다. 이 자리는 지극히 공하여 텅 비어있기 때문에 고요하며, 고요하기 때문에 영지가 샘솟는 원천이 된다.
그 영지불매한 지혜광명은 형이상(形而上)의 진여법계는 물론 형이하(形而下)의 현상세계에 미치지 않는 바가 없으며, 시방세계의 대소 유무의 분별과 선악업보의 차별과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마치 장중(掌中)의 구슬같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진리의 광명이요, 자성의 영묘한 혜광(慧光)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주의 형상 있는 존재나 형상 없는 존재 모두가 그 실체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도 그 본성은 언어명상ㆍ사량계교ㆍ분별시비가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번뇌도 없고 집착도 없는 무아ㆍ무심인 것이다.
공적은 우주의 본체인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다. 공적이 되면 영지가 나오고, 영지가 나오면 광명이 발생한다. 이러한 공적영지의 광명은 우주의 광명이요, 진리의 광명이요, 인간의 본래 마음의 광명이요, 일원상 진리의 광명이다. 우주는 공적하기 때문에 영지의 광명을 나타낸다. 지극히 밝고, 지극히 정성스럽고, 지극히 공정하고, 순리자연하고, 광대무량하고, 영원불멸하고, 길흉이 없고, 응용에 무념한 것이 우주의 공적영지의 광명이다. 인간의 마음도 본성을 깨쳐 마음이 공적해지면 영지의 광명, 곧 무루의 반야지혜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천만 사리를 걸림 없이 알게 되고, 시종여일하게 만사를 작용하게 되며,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림이 없이 중도행을 하게 되고, 불합리를 버리고 합리를 취하게 되며, 애착심ㆍ탐착심ㆍ집착심ㆍ편착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로병사와 육도 윤회에 해탈을 얻게 되며, 모든 일을 당해서 길흉화복에 끌리지 아니하고 동정간에 무념무착행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염념(念 )이 보리심(菩提心)이요, 처처(處處)가 안락국(安樂國)으로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누리게 된다.
이러한 ‘공적영지의 광명’에 대해 《정전》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가 장중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라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일원상진리의 근본자리는 인간의 상대적 언어나 인식작용의 한계를 넘어선 초논리적ㆍ초경험적 차원에 속한 절대의 경지로서, 그것은 대소ㆍ유무ㆍ생멸ㆍ거래ㆍ선악 등 일체의 상대가 끊어진 공적한 자리이다. 그러면서도 그 공적한 가운데 소소영령하여 영지불매(靈知不昧)한 지혜 광명이 작용하고 있으니, 이를 ‘공적영지’라 한다.
이 자리를 ‘천도법문’에서는 “이 우주와 만물도 또한 그 근본은 본연 청정한 성품자리로 한 이름도 없고, 한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도 없고 허무와 적멸도 없고 없다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것이나 그중에서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생겨나,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를 따라 육도와 사생으로 변화하고”(《대종경》 천도품5)라 설명하고 있다.
또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2장에서는, “일원상의 원리는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말로써 가히 이르지 못하며 사량으로써 가히 계교하지 못 할지라 이는 곧 일원의 진공체요, 그 진공한 중에 또한 영지불매하여 광명이 시방을 포함하고, 조화가 만상을 통하여 자재하나니 이는 즉 일원의 묘유요” 라고 설명하는 가운데, 진공과 영지와 조화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진공 개념은 공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나, 다만 공적의 개념에는 ‘고요하고 적적하다’는 의미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같은 원리편 17장에서는 “일월은 허공을 통하여 밝게 비치고, 인과는 공한 진리를 통하여 공정히 나투나니, 지극히 빌수록 밝은 것이요, 지극히 밝기 때문에 영령이 통하나니라”고 했다. 곧 공적과 영지가 상즉하여 둘이 아니되, 공적은 영지의 원천이요, 영지는 공적의 결과로서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임을 밝히고 있다.(원불교대사전)
공적[空寂]
⑴ 공공적적(空空寂寂)의 준 말. 우주 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고, 상주(常住)하는 것이 없다는 말.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뜻. ⑵ 마음이 텅 비어 고요한 것. 우주 만물이 모두 잠들어 고요한 것.(원불교 용어사전)
영지[靈知]
(1) 신령스럽게 앎. 신령스러운 지혜.
(2) 진리의 소소영령(昭昭靈靈)함을 나타내는 말.
(3) 정신에서 발현되는 지혜. 마음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가운데 영묘하게 앎이 나타나는 것.(원불교대사전)
진공묘유의 조화[眞空妙有-調和]
[개요]
‘법신불일원’의 진리적 속성을 존재론적 입장에서 단적으로 표현한 말. 우주의 모든 현상 곧 천차만별의 차별현상은 진공묘유의 조화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의미해석]
원불교 최고종지인 법신불일원의 진리적 속성에 대해서는 ‘진공ㆍ묘유ㆍ조화’의 3속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진공의 체성’과 ‘묘유의 조화작용’이라는 양면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궁극적 실재로서의 법신불일원 그 자체는 인간의 상대적 언어나 인식작용의 한계를 넘어선 초논리적, 초경험적 차원에 속한 절대의 경지라 볼 수 있으나, 그에 대한 인간 차원에서의 가능한 한 최대의 이해작업으로 불생불멸ㆍ인과보응, 변ㆍ불변, 유상ㆍ무상, 진공ㆍ묘유, 공ㆍ원ㆍ정, 이(理)ㆍ사(事), 대소유무, 동ㆍ정, 도ㆍ덕 등으로 제기된다.
이 가운데 진공ㆍ묘유의 양면관은 무엇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기본적 진리관이다. 진공ㆍ묘유의 논리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종교사상의 전통적 논리를 계승한 보편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여타의 다양한 진리관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공ㆍ묘유의 개념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해석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법신불일원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세계관과 종교신앙관이 전개될 수 있다. 《정전》 ‘일원상 진리’장을 토대로 하여 진공과 묘유의 양면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일원상진리를 본체론적 입장에서 본 ‘진공의 체성’ 그 자리는 대소유무와 생사변화와 선악업보와 길흉화복 등 일체의 상대적 차별현상을 초월한 진공의 경지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차별현상의 근본 체성이므로 그러한 절대의 경지는 상대적 언어로 개념화하거나 표현할 수 없으며 일상적 사유로는 미칠 수 없는 자리로서, 오직 일체의 언어와 사유가 끊어진 입정의 체험, 즉 무분별지의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서만 체득될 수 있다. 일원상진리를 현상론적 입장에서 본 ‘묘유의 작용’이란, 일원의 체성이 일체의 상대적 차별을 넘어선 무상(無相)의 진공체이나, 그것은 물리적 진공이나 무기공(無記空)과 같은 악취공(惡趣空)이 아니라, 공적영지의 광명과 묘유의 조화작용을 포함한 신묘한 공(空)이다.
공적한 가운데 영지(靈知)가 내재되어 있어 묘유의 조화작용이 전개되므로 진여본체로서의 진공의 체성에 바탕하여 묘유의 조화가 작용함으로써, 천차만별한 현상세계가 전개된다. 그리하여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일월은 춘하추동과 주야로 운행하며, 만물은 형형색색 천차만별로 나타나고, 생로병사로 변화하면 진공에 바탕한 묘유의 조화에 의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이 생사유전하고, 선악업보가 상응하며, 유무ㆍ음양ㆍ길흉ㆍ화복 등 일체의 상대세계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즉 진공ㆍ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해서 무시광겁토록 은현자재한다.
‘일원상진리’를 진공의 체성과 묘유의 작용이라는 양면으로 나누어 설명했으나, 편의상 하나의 진리에 대한 양면적 관찰에 불과하다. 그들의 관계는 선후나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체와 용이 상즉하여 둘이 아닌 상즉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소태산은 일원상에 관한 ‘게송’에서,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역시 구족이라”고 하여, 진공의 체성(俱空)과 묘유의 작용(具足)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공ㆍ묘유의 양면관을 근간으로 하여 변ㆍ불변, 유상ㆍ무상, 공적ㆍ영지, 공ㆍ원ㆍ정, 대소유무 등 다양한 논리적 구조들이 전개되고, 그들에 의하여 법신불일원에 함축되어 있는 다양하고 심오한 다차원적 의미들이 조명되고 있다.
일원상 진리의 논리 구조로서의 진공묘유의 양면은 원불교의 신앙과 수행 전반에 걸쳐 불가결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교리도’에 명시된 ‘인과보응의 신앙문’과 ‘진공묘유의 수행문’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물론, 명칭에서 조차 ‘진공묘유’의 개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인과보응의 신앙문’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법신불사은’의 개념은 주로 진공묘유의 논리에 근거하여 전개된 것이라면, 이에 비해 ‘진공묘유의 수행문’은 진공묘유의 논리를 기본으로 하면서 공ㆍ원ㆍ정의 논리가 병용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