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

제3 수행품(修行品) 27장

원재(Aid Perfection) 2014. 10. 3. 13:27

대종경(大宗經)

3 수행품(修行品) 27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원만한 사람이 되어 넓은 지견(知見)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한 편에 집착(執着)하지 말라. 지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다 각각 한 편에 집착하여 원만한 도를 이루지 못하나니, 선비는 유가의 습관에, 승려는 불가의 습관에, 그 외에 다른 종교나 사회의 사업가들은 또한 다 각각 자기의 아는 바와 하는 바에 편착하여, 시비 이해를 널리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법을 취하여 쓸 줄 모르므로 원만한 사람을 이루지 못하나니라.] 한 제자 여쭙기를 [만일 자가(自家)의 전통과 주장을 벗어난다면 혹 주견(主見)을 잃지 않겠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 말은 자가의 주견을 잃고 모든 법을 함부로 쓰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주견을 세운 후에 다른 법을 널리 응용하라는 것이니 이 뜻을 또한 잘 알아야 하나니라.]

지견[知見]

(1) 지식과 견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지식에 기초를 둔 견해. 자기 자신의 사려 분별에 의해 세운 견해를 의미한다.

(2) 불교에서는 지견(智見)과 동의어로 쓰임.(원불교대사전)

집착[執著]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시공 불교사전, 2003.7.30, 시공사)

주견[主見]

(1) 주장되는 의견.

(2) 자기 생각에 집착된 견해. 자기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견해. 주견에 사로잡히면 사리(事理)를 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게 된다. 정산종사는 모든 사물의 양면을 두루 살피지 못하고 하나에 집착하면 편벽되어 원만하지 못하나니 제 주견에 끌리지 말고 그때 그 처소에 일의 양면을 두루 보아서 적당한 비판과 취사를 하라 했다(정산종사법어응기편9). 또 자기 주견만 고집하여 의논 상대가 없는 사람을 지옥생활 하는 사람에 비유했다(정산종사법어경의편52).(원불교대사전)

[넓은 지견을 얻는 공부]

<장원경 교무/영산선학대학교>

수행품 27장 법문은 원만한 사람이 되고 원만한 도를 이루려면 반드시 한편에 집착하지 말고 자가의 정당한 주견을 세운 후에 다른 법도 널리 응용하라는 말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법을 두루 통하여 넓은 지견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원불교는 일찌기 일원상의 진리를 통하여 신앙과 수행을 병행시키고, 자력과 타력을 회통케하며 법과 신을 합일시켜 새 종교의 장을 열어 주세종교가 되었다.

특히 원불교는 신앙과 수행면에서 사은의 사실 신앙과, 무시선의 동정(動靜)없는 수행의 길을 열어 교리의 합리성과 원만성을 유감없이 갖추었다.

우리는 이 같은 정당한 주견을 세워 진리관, 신앙관, 수행관의 확호한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개 신생 종교는 교리와 의식 제도의 혁신 사항에 편착하여 자가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나머지 타종교의 특장점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일과 수용하고 활용하는 일에 인색하여 원만한 도를 이루는데 마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와 수많은 종파의 불교가 서양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것은 큰항아리속에 각종 각파의 불교를 한데 섞어서 혼합불교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불교가 서양에 들어오면 소위 서구적 사고방식에 의해서 검증을 받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불교만이 마지막 자리를 잡게 될 것이 확실하다.

불교 각종 각파의 다양하면서 때로는 상호 모순적인 가르침들 가운데 가장 실용적이고 공통적인 가르침은 바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개인도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참다운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실제로 원불교는 이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수행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관념과 사상의 집착을 벗어나야 참다운 자유를 얻는다.

나의 생각, 사상, 교리, 철학만이 옳다는 집착 때문에 단순한 논쟁에서 시작하여 큰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다툼이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교()를 알 수 있고, 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선을 이해한다.

불교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 기독교가 보이고 하느님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불교가 보인다.

대종사님께서는 나의 제자된 후라도 하나님을 신봉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져야 나의 참된 제자라고 하셨다.

"저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지금은 그 갈래가 비록 다르나 마침내 한 곳으로 모아지리니 만법귀일의 소식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고 하신 대종사님과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 근본정신은 하나의 진리에 근원하고 있다는 동원도리를 외치신 정산종사님 말씀대로 공부하면 사통오달의 큰 도를 얻게 될 것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대종경성리품 17장의 법문.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뜻이다. 중국의 조주종심(趙州從諗) 등 선사(禪師)들이 즐겨 사용했던 공안(公案)의 하나로 원오극근(圓悟克勤)이 찬집한 벽암록(碧巖錄)545()으로 수록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1919(원기4)부터의 봉래산주석기에 서중안(徐中安)의 인도로 봉래정사를 찾아온 손님에게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나갈 의두로 이를 주고 있으며, 후일 선원의 성리법문에서 만법귀일의 소식이라 하여 이를 자주 들었다. 교단 최초의 교과서인 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要論)(1927, 원기12)각항 연구문목(硏究問目)’일만 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갔는지 연구할 사()’로 수용된 후, 1962(원기47)에 완정된 현 정전수행편의 의두요목(疑頭要目)’에 수록되었다.(원불교대사전)

동원도리[同源道理]

정산종사가 선포한 삼동윤리(三同倫理)의 하나. 모든 종교의 사상은 근원적으로 같다는 말. 정산은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른바 세계의 삼대 종교라 하는 불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있고, 유교와 도교 등 수 많은 기성 종교가 있으며, 근세 이래 이 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 신흥종교의 수도 또한 적지 아니하여, 이 모든 종교들이 서로 문호를 따로 세우고, 각자의 주장과 방편을 따라 교화를 펴고 있으며, 그 종지에 있어서도 이름과 형식은 각각 달리 표현되고 있으나,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근원된 도리는 다 같이 일원의 진리에 벗어남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대체에 있어서는 본래 하나인 것이며, 천하의 종교인들이 다 같이 이 관계를 깨달아 크게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교회가 다 한 집안을 이루어 서로 넘나들고 융통하게 될 것이니, 먼저 우리는 모든 종교의 근본이 되는 일원대도의 정신을 투철히 체득하여,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하며, 나아가 이 정신으로써 세계의 모든 종교를 일원으로 통일하는데 앞장서야 한다”(정산종사법어도운편35)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일원대도[一圓大道]

일원이라 함은 우주의 근본되는 진리를 상징한 말. 일원의 진리는 절대 유일하여 상대가 끊어진 자리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무한히 돌고 돌아 그침이 없다는 뜻에서 대도라 한다. 또 대도란 만생령을 제도하고 전 인류를 불보살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크고 넓은 길, 또는 진리. 일원대도란 말은 소태산대종사가 진리를 크게 깨친 후에 비로소 처음 사용되었다.

소태산은 천하 사람이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의 큰 도요, 적은 수만 행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도라 이르나니, 그러므로 우리의 일원종지(一圓宗旨)와 사은 사요삼학 팔조는 온 천하 사람이 다 알아야 하고 다 실행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큰 도가 되느니라”(대종경교의품2)고 했다. 이와 같이 일원의 진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믿고 행할 수 있는 대도 정법이요 인의대도이기 때문에 일원대도라 한다. 또한 일원대도는 만법을 통하여 한 마음을 밝히고 온 세계를 일원화(一圓化)하며 전 생령을 널리 구제할 수 있는 길이다.(원불교대사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