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

제3 수행품(修行品) 14장

원재(Aid Perfection) 2014. 10. 1. 23:15

대종경(大宗經)

3 수행품(修行品) 14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

선종[禪宗]

[개요]

불교의 한 종파. 교종에 상대되는 말. 선나(禪那)로 종()을 삼으므로 선종이라 한다. 교종(敎宗)이 교리를 위주로 내세우는 데 반해 선종은 선()을 실현하는 방법을 자각적으로 제시하며 교외별전(敎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종()의 강령(綱領)으로 하고 좌선(坐禪)으로 내관자성(內觀自性)하여 자기 심성을 철견(徹見)하고 자증삼매(自證三昧)의 묘한 경지를 체달함을 종요(宗要)로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는 달마대사로 중국 양()나라와 위()나라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종지(宗旨)로서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불렸다.

[역사와 사상]

인도에서도 선은 널리 행해졌으나 선종이 독립된 종파로 성립된 것은 달마에게서 비롯된다. 선종은 석가모니불에게서 정법안장을 물려받은 가섭으로부터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이르기까지 28조사가 법을 상승(相承)했다 하며, 이것을 서천(西天) 부법장(付法藏) 28조라고 한다. 선종은 제28조인 달마를 다시 초조(初祖)로 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에 와서 확립 번창했다. 달마가 중국에 온 것이 470년 전후로서 그때 불교는 불안한 중국사회에서 노자의 사상과 교섭을 통하여 안심(安心)의 도로서 중국화되었다.

이조혜가(二祖慧可)삼조승찬(三祖僧璨)사조도신(四祖道信)오조홍인(五祖弘忍)으로 이어지고, 홍인의 제자 신수(神秀)와 혜능에 이르러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으로 나뉜다. 대체로 승찬의 신심명(信心銘)에서 선경험의 해명이 시도되고 육조 혜능에게서 정혜불이(定慧不二)의 견성(見性) 경험이 주장됨으로써 선종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북종선의 신수는 달마가 전한 능가경(楞伽經)에 의하여 단계적 수선(段階的修禪)의 법으로서 중국 북부에 정좌선정적(靜坐禪定的)인 북점(北漸)의 풍()을 세운데 대하여 남종선의 혜능은 금강경을 전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의 도로서 영남(嶺南)에 남돈(南頓)의 풍을 일으켰다.

혜능의 사상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잘 나타나 있다. 신수의 북종은 장안(長安)과 낙양(洛陽)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고, 남종의 혜능 밑에 있던 남악회양(南嶽懷讓)과 청원행사(淸源行思)의 양계(兩系)가 있어 이후 오가칠종(五家七宗)을 이루게 되었다. 청원의 문하에 있던 석두희천(石頭希遷)의 가르침은 동산양개(洞山良价)와 그의 제자 조산본적(曹山本寂)으로 이어지면서 조동종(曹洞宗)이 형성되고, 석두희천의 가르침은 또한 천황도오(天皇道悟)를 거쳐 운문문언(雲門文偃)으로 이어지면서 운문종(雲門宗)이 형성된다. 청원행사에서 설봉의존(雪峰義存)으로 이어진 선풍은 법안문익(法眼文益)에 이어지면서 법안종(法眼宗)이 형성된다.

남악의 계통은 마조도일(馬祖道一)에 의해 이어지고 그 뒤를 백장회해(百丈懷海)가 이어가게 되는데, 백장으로부터 임제의현(臨濟義玄)으로 이어져 임제종(臨濟宗)이 형성되고, 백장으로부터 위산영우(潙山靈祐)와 그의 제자 앙산혜적(仰山慧寂)으로 이어지면서 위앙종(潙仰宗)이 형성된다. 이를 오가(五家)라 칭하며, 이후 임제종이 다시 황룡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黃龍派)와 양기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楊岐派)가 형성되어 이를 합해 오가칠종이라고 한다.

조동종

청원행사로부터 석두희천, 약산유엄(藥山惟儼), 운암담성(雲巖曇晟), 동산양개, 조산본적으로 이어지는 선풍이다. 임제종과 더불어 선종의 2대 법맥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조동종의 명칭에 대해서는 조동종의 제2조 조산과 동산의 이름을 합하여 조동이라 했다는 설과, 혜능의 조계(曹溪)가 전한 법을 동산이 넓혔다는 의미에서 조동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전자는 중국에서 유력하고 후자는 일본에서 유력하다. 조동종의 수행은 고목중(枯木衆)이라 불릴 정도로 오로지 좌선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이러한 수행법을 묵조선(黙照禪)이라고도 한다. 혜능이 자성의 본래 청정함을 주장한 것을 이어받아 본래의 청정한 자성을 지키는 것을 중시했다.

운문종

석두희천에서 천황도오, 용담숭신(龍潭崇信), 덕산선감(德山宣鑑), 설봉의존, 운문문언으로 이어지는 선풍으로, 운문문언이 소주(韶州) 운문산(雲門山)에서 창종했다. 운문종의 종명은 운문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운문종은 운문천자(雲門天子)라는 말로 비유되는데, 천자의 조칙(詔勅)처럼 한 번에 만기(萬機)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곧 촌철살인의 글귀 한 두자 정도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일자선(一字禪)이락도 불렀다.

법안종

청원행사에서 설봉의존을 거쳐 현사사비(玄沙師備), 나한계침(羅漢桂琛), 법안문익으로 이어지는 선풍으로, 법안문익이 승주(昇州) 청량원(淸凉院)에서 크게 세력을 일으켰으므로 법안종이라 했다. 법안종은 당말 오대(五代)의 선불교를 최후로 종합하고 있으므로, 선풍도 조사선의 사상을 집대성 하고 있다. 법안은 삼계유심(三界唯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이는 조사선에서 말하는 평상심을 말한다. 일체의 경계나 집착이 없는 무심(無心)을 본질로 하는 법안종은 화엄철학을 선의 실천으로 구현시킨 선교융합(禪敎融合)의 종풍을 보이고 있다.

임제종

백장회해에서 황벽희운, 임제의현으로 이어지는 선풍으로, 참선문답(參禪問答)에 의한 자기규명을 종지로 삼았다. 조동종과 더불어 선종의 2대 법맥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사실상 중국 선종의 주봉(主峰)이라 할 수 있는데, 임제의 종명(宗名)은 임제의현이 하북성 진주(鎭州) 호타하 기슭에 임제원(臨濟院)을 짓고 학인을 지도한 것에서 유래한다. 임제의 선풍은 일체의 전통과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언제나 현실생활에서 자기가 주체가 되어 불법을 구현할 것을 강조한다. 이후 황룡파와 양기파로 나뉘게 된다.

위앙종

남악회양으로부터 마조도일, 백장회해, 위산영우와 그의 제자 앙산혜적으로 이어지는 선풍으로, 위산영우와 앙산혜적의 앞 이름을 따서 위앙종이라 했다. 위앙종은 원상(圓相)으로 법()을 보이는 것을 중시한다. 여기서 원상은 완전무결한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眞如)불성(佛性)실상(實相)깨달음의 상징이다. ()을 허무적멸로 이해하여 일생생활을 게을리하거나 세속과 절연(絶緣)하는 것은 진공(眞空)이 아니며, 오히려 중도(中道)를 실천하는 것이 진공임을 역설함으로써, 공사상을 현실에 투영하려고 했다.

황룡파

임제의현의 법제자 흥화존장(興化存奘)에서 수산성념(首山省念)에 이르기까지의 초기 임제종은 임제의 선풍을 답습하는데 급급했는데, 분양선소(汾陽善昭)의 제자 석상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황룡혜남과 양기방회가 공안선(公案禪)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황룡파와 양기파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황룡혜남은 황룡사에 주석하면서 임제종의 가르침을 설했는데, 선의 길에 처음 들어선 학인들에게 사람마다 모두 태어난 인연이 있다. 그대가 태어난 인연은 무엇인가?’, ‘내 손은 왜 부처님의 손과 닮았는가?’, ‘내 다리는 어째서 나귀의 다리와 닮았는가?’ 등 이른바 황룡삼관화(黃龍三關話)’의 질문을 통해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하나, 이에 계합(契合)하는 이가 적었으며, 일찍 법맥이 끊어졌다.

양기파

양기파의 개창자 양기방회는 황룡혜남과 더불어 석상초원의 문하에서 나왔다. 초기에는 황룡혜남의 세력이 컸으나, 이후 양기파가 문호를 넓혀 임제종을 대표하게 되었다. 특히 송대(宋代) 이후 도가와 성리학 등이 선종의 종리로부터 큰 영향을 받을 때 그 근원지 역할을 한 것이 양기파였으며, 이 당시 활동했던 것이 간화선의 중흥자라 할 수 있는 원오극근(圓悟克勤)과 대혜종고(大慧宗杲)였다. 고려 말 태고보우(太古普愚)가 양기파의 12세손 석옥청공(石屋淸珙)으로부터 법맥을 이어왔다는 것을 통해 본다면 한국의 조계종은 대혜종고의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임제종 양기파의 선풍을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선종]

우리나라에 선종이 들어온 것은 신라 선덕여왕 5(784)에 당나라의 서당지장(西堂智藏)으로부터 법을 받아 온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智山門)을 비롯한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성립되면서 크게 번창했다. 이 구산문을 총칭하여 조계종이라 부른다. 조계종은 신라 말기와 고려 초에 성왕했으나 고려 중엽에 이르러 쇠운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보조지눌(普照知訥)이 송광산(松廣山) 길상사(吉祥寺)에 거주하면서 그 산을 조계산이라 개칭하고 선풍을 크게 일으키니 선종은 다시 중흥되고 이때부터 조계종이라는 종명(宗名)이 생겨났다. 고려 말기의 선종은 태고보우와 나옹혜근(懶翁慧勤)의 두 파로 갈라졌는데,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가서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의 조계종은 고려말기부터 생긴 이름이고, 선종의 법맥을 이어받아 한국 불교종파 중 큰 종단의 하나가 되었다.(원불교대사전)

단전주[丹田住]

원불교 좌선법(坐禪法)에 있어서 음을 단전(丹田)에 주하는 요령. ()은 심일경주(心一境住), 곧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러두고, 삼매(三昧), 곧 잡념을 떠나서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수련법이다. 이에는 석존 당시에 행했던 위빠사나를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그 중에서 중국 선종이 발달하면서 개발된 조동종(曹洞宗)의 묵조선(黙照禪),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원불교에서는 좌선을 마음에 있어서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하여 모든 생각을 제거함이 예로부터의 통례라 정의하고, 단전주법을 택하고 있다. 그 방법은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에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잡는 것으로, 단전에 마음을 주하고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며 수기(水氣)와 화기(火氣)가 잘 조절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게 되기 때문에, 선정(禪定)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일거양득하는 방법으로 설한다.(원불교대사전)

화두[話頭]

(1) 이야기의 실마리. 화제(話題).

(2) 선종의 고칙(古則)이나 공안(公案) 등의 1절 또는 1칙을 이르는 말. 스승이 제자에게 지혜를 연마하여 깨치도록 하는 의문의 조목. 임제종에서는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을 주장한다. 원불교에서는 의두(疑頭)라 한다. 화두를 궁구하는 실천적 지표를 집중적으로 제시한 문헌으로는 대혜종고의 서장(書狀)과 고봉원묘의 선요(禪要)가 있다. “만약 진정으로 의지를 확고히 하여 마음을 밝히고자 하면 우선 평소에 마음속에 받았던 모든 선악의 대상을 그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막고 터럭만치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고요히 앉아 바른 생각을 견고하게 모으고 향상(向上)의 현묘한 기틀을 세밀하게 궁구하며 선종의 비밀스런 취지를 탐구하여 맛보며 화두를 절실하게 놓치지 말고 삼가고 두려워하여 약간이라도 틈이 없게 들어야 한다. 움직이나 고요하나 어그러지지 않아야 점차 깊고 은밀하며 지극히 미세한 경계에 이를 것이다”(서장).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단지 한 가지 의심에 불과하다. 화두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타파하면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타파된다. 단지 화두를 의식에 드는 것으로 알아맞히려 하지 말며, 또한 이 화두를 사량하고 헤아려서도 안 된다”(서장). 이와 같이 화두는 마음을 깨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천만 가지 의심이 한 의심으로 뭉쳐져 강하게 두드려야만 깨쳐지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의두[疑頭]

화두(話頭)공안(公案)과 같은 뜻.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 갖는 큰 의심. 정기훈련 11과목의 하나로서, 대소유무의 이치나 시비이해의 일 또는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선택하여 깊이 연구하는 것. 정전정기훈련법에서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 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라 했다. 그러므로 수행인의 근기 따라 의두는 각각 다를 수가 있다.

정전에는 의두요목’ 20(정전의두요목)가 선택 제시되어 있다. 의두는 불보살이 깨친 오묘 불가사의한 진리의 세계를 언설로써는 어떻게 표현해서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에 방편으로써 어떤 문제를 제기하여 그것을 계속 연마하고 궁구하여 마침내 진리를 체득하게 하는 방법이다. 소태산대종사가 의두를 정신수양 과목이 아닌 사리연구 과목에 두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단전주 선법

<장원경 교무/ 영산선학대학교>

수도인의 일과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교도님들 관심사중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좌선을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행품 14장에서 수양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하는 단전주 선법으로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단전주 선법은

정전좌선법에 밝혔듯이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곧 다시 챙겨서 단전에 기운을 주함으로써 사심 잡념을 일으키지 않고 청정일심을 얻는 공부법이다.

단전은 인체 생명 활동에 매우 중요한 부위이다.

단전의 위치는 배꼽 아래 3(세 손가락을 모아서 옆으로 뉘어 배꼽아래에 대었을 때 손가락 아래)과 배꼽아래 1, 1.5촌 등 많은 의견이 있지만 단전의 위치를 꼭 찍어서 말하기 보다는 하단전의 위치는 느낌이며 작용이기에 자신의 느낌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툭 부리어'라는 말은

실었던 짐을 내려 놓거나 위에 있는 것을 아래로 내려 놓는 의미와 같다.

, 단전에 마음과 기운과 호흡을 내려놓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세 개의 단전이 있다.

얼굴의 두 눈썹 사이를 상단전, 가슴의 두 젖꼭지 사이를 중단전이라고 한다.

보통 말하는단전은 하단전을 지칭한다. 사람의 육신의 중심 부분이 하단전이다.

단전주선법은 간화선과 묵조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조화시킨 것이다.

단전주 선법은

마음을 단전에 집중하고 화두는 좌선 시간이 끝날 무렵이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잠간씩 연마한다.

단전주가 잘 되면 수승화강이 잘 되고, 항상 성성적적한 기운으로 원기(元氣)가 충실해지며, 기단과 심단이 잘 되어 극락을 수용하게 된다. 좌선 할 때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단전에 기운을 집중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통일이 잘 된다.

수험생이 평소 좌선에 공들여 놓으면 집중력이 높아져 공부에 도움을 얻을 것이고, 날씨가 추울 때에도 단전에 기운을 모으면추위를 덜 느끼게 된다.

사람 몸의 중심은 단전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 단전주의 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단전주 선법시 주의점은

단전에 억지로 힘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신의 힘을 뽑은 채 엉덩이를 뒤로 내민듯하게 앉으면 기력은 자연히 단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다만 단전에 관심을 둘 뿐이고 자세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전에 긴장감을 가질 뿐이다.

또 배부를 때 단전주 선을 하는 것은 위장이 늘어날 염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공복에 하는 것이 좋다.

★-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