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동포은(同胞恩)
제3절 동포은(同胞恩)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2장 사은(四恩)
제3절 동포은(同胞恩)
1. 동포 피은의 강령 우리가 동포에게서 입은 은혜를 가장 쉽게 알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사람도 없고 금수도 없고 초목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라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것이니, 그런다면 누구나 살지 못할 것은 다 인증할 것이다. 만일, 동포의 도움이 없이, 동포의 의지가 없이, 동포의 공급이 없이는 살 수 없다면 그 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 대범, 이 세상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가지 생활 강령이 있고, 사람들은 그 강령 직업 하에서 활동하여, 각자의 소득으로 천만 물질을 서로 교환할 때에 오직 자리 이타(自利利他)로써 서로 도움이 되고 피은이 되었나니라.
2. 동포 피은의 조목 1) 사(士)는 배우고 연구하여 모든 학술과 정사로 우리를 지도 교육하여 줌이요, 2) 농(農)은 심고 길러서 우리의 의식 원료를 제공하여 줌이요, 3) 공(工)은 각종 물품을 제조하여 우리의 주처와 수용품을 공급하여 줌이요, 4) 상(商)은 천만 물질을 교환하여 우리의 생활에 편리를 도와 줌이요, 5) 금수 초목까지도 우리에게 도움이 됨이니라.
3. 동포 보은의 강령 동포에게 자리 이타로 피은이 되었으니 그 은혜를 갚고자 할진대, 사·농·공·상이 천만 학술과 천만 물질을 서로 교환할 때에 그 도를 체받아서 항상 자리 이타로써 할 것이니라.
4. 동포 보은의 조목 1) 사는 천만 학술로 교화할 때와 모든 정사를 할 때에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 이타로써 할 것이요, 2) 농은 의식 원료를 제공할 때에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 이타로써 할 것이요, 3) 공은 주처와 수용품을 공급할 때에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 이타로써 할 것이요, 4) 상은 천만 물질을 교환할 때에 항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 이타로써 할 것이요, 5) 초목 금수도 연고 없이는 꺾고 살생하지 말 것이니라.
5. 동포 배은 동포에 대한 피은·보은·배은을 알지 못하는 것과 설사 안다 할지라도 보은의 실행이 없는 것이니라.
6. 동포 보은의 결과 우리가 동포 보은을 한다면, 자리 이타에서 감화를 받은 모든 동포가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나 자신도 옹호와 우대를 받을 것이요, 개인과 개인끼리 사랑할 것이요, 가정과 가정끼리 친목할 것이요, 사회와 사회끼리 상통할 것이요, 국가와 국가끼리 평화하여 결국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세계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전 세계 인류가 다 보은자가 되지 못할 때에, 혹 배은자의 장난으로 인하여 모든 동포가 고해 중에 들게 되면, 구세 성자들이 자비 방편을 베푸사 도덕이나 정치나 혹은 무력으로 배은 중생을 제도하게 되나니라.
7. 동포 배은의 결과 우리가 만일 동포에게 배은을 한다면, 모든 동포가 서로 미워하고 싫어하며 서로 원수가 되어 개인과 개인끼리 싸움이요, 가정과 가정끼리 혐극(嫌隙)이요, 사회와 사회끼리 반목(反目)이요, 국가와 국가끼리 평화를 보지 못하고 전쟁의 세계가 되고 말 것이니라. |
동포은(同胞恩)
원불교 기본 교리의 하나인 사은(四恩)의 한가지. 동포 상호간의 관계를 대립·투쟁의 관계로 파악하지 않고, 은혜의 관계, 상생상화·상부상조의 관계로 파악하는 신앙·수행의 태도. 다시 말하면 동포로부터 입은 은혜, 동포 상호간에 자리이타로써 서로 도움이 되고 피은이 된 관계를 말한다. 인간사회는 끊임없는 갈등·대립·투쟁의 연속처럼 보일 경우가 많다. 개인과 개인의 경쟁에서부터 단체와 단체,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 사상과 사상, 동양과 서양, 어디를 들러보아도 경쟁·갈등·대립·투쟁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그래서 약육강식·적자생존의 투쟁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 뿐만아니라 삼라만상도 서로 갈등·대립·투쟁의 현상이 수없이 많이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나 새 짐승 한 마리 까지도 서로 잡아먹고 잡아 먹히는 치열한 싸움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맑고 깨끗한 마음, 크고 넓은 마음, 너그럽고 편안한 마음, 은혜롭고 사랑 넘치는 마음으로 다시 냉철하게 살펴보면, 인간사회나 만물의 세계는 갈등·대립·투쟁의 관계 이상으로 협조와 조화, 상생상화·상부상조의 관계임을 발견하게 된다. 끊임없는 모순·갈등·대립·투쟁의 생존경쟁 속에서도 인류역사는 줄기차게 발전해가고 있다. 만물의 세계에서도 서로 먹고 먹히면서도 생명의 소중함은 더욱 존중되고, 생명력은 갈수록 힘차게 뻗어나고 있는 것이다. 동포은은 나와 나 아닌 것과의 관계, 만물과 만물의 관계를 상생상화·상부상조의 은혜·조화·협조·발전의 관계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경쟁·갈등·대립·투쟁의 관계는 일시적이요 부분적인 것이며, 전체적이요 영원한 입장에서 보면 상생상화·상부상조의 발전적·미래지향적 관계인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동포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자리이타의 정신은 인간과 만물이 함께 잘 사는 길이다. 동포은을 발견하고 느껴서 자리이타·상생상화·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살아가면 인간은 보람차고 행복하며 평화롭고 발전적이며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화합하고 존경하게 된다. 가정과 가정, 단체와 단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이 서로 친목하고 융화하여 평화롭게 된다. 동포은을 발견하게 되면 이 세상이 그대로 커다란 은혜의 덩어리요 만물이 모두 은혜로운 부처님임을 알게되어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언제나 보은 감사생활로 혜복을 증진하게 되고, 날마다 날마다 기쁘고 좋은날이 되며, 매일 매일 다시 태어나는 생활이 된다. 모든 사람이 상생상화의 선연을 맺게되고, 시방일가 사생일신의 진리를 깨치고 체험하게 된다. 세계는 차츰 갈등과 전쟁이 없어지고, 평화와 화합의 길에서 하나되어 만나게 된다. 만물도 서로 상생상화의 기운으로 함께 진급하고 제도받아 광대무량한 불국토를 건설하게 된다. 동포은을 발견하는 사람은 모든 인류를 내 형제같이, 만물을 내 몸 같이 아끼고 사랑하여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
사설=동포보은의 길
- 자선의 달을 맞으면서 -
[84호] 1972년 11월 25일 (토) | 원불교신문![]() |
해마다 12월이 되면 「자선의 달」이라 하여 추위와 기아에 떠는 동포가 없도록 구호하자는 운동이 전개되어 왔고 금년에도 이 운동은 전개될 것이다. 내 동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추위나 기아에 시달리는 정경을 상상해 본다면 용연히 솟아오를 동정심을 그 어찌 아니 느끼겠는가. 하물며 금년 같이 번민한 풍수해로 많은 이재민을 낸 해에 있어서는 우리의 보다 큰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매년 이러한 재민의 구호에 주도한 시책을 강구해 온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10여 년 전에 비하여 난민의 질과 양이 현저하게 달라져 가고 있음은 천만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그러나 아직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이 미급한 현시점에 있어 우리들 스스로의 자비심의 발로가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금년 수재민만 하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재민 스스로의 의욕적인 복구 작업으로 주택의 재건사업이 눈부시게 전개되어 왔으며 피해이전 상태보다 오히려 더 훌륭한 주택들을 갖게 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라 하겠으나 아직도 그들의 생계는 안정된 것이 아니므로 핏줄기를 같이 한 동포들의 따뜻한 구호의 손길이 하루 속히 뻗쳐오기를 고대하는 마음 간절한 것이다.
이러한 때 우리의 종교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자명하다. 47년래의 대풍수해로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있는 우리 동포에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구호에 전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재민들의 일 즉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일 내가 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다. 동포의 아픔은 바로 내 아픔이고 동포의 시달림은 바로 내 시달림이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종교인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자선의 달이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자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포은에 보답하는 것임을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선이라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가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에 대하여 동정하고 베푸는 혜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우월하다는 자기만족과 온정을 베풀었다고 하는 상(相)이 동반되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상은 흔히 실망과 퇴굴심 또는 반발 등을 불러올 위험을 내포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은의 한 내용으로 동포은을 받들고 있는 피은· 보은· 배은의 내역과 결과를 배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자녀 교육과 공도자 숭배를 사요의 내용의 일부로 삼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교리에 비추어 우리는 누구가 누구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입은 동포은에의 보은이라는 신념으로 동포구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구호사업은 우리의 생활개선을 통하여 그 기금이 마련된다면 더욱 이상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생활에는 사치와 낭비의 부분이 얼마든지 발견된다. 생활의 합리화를 기하고 거기에서 절약된 부분을 동포구호에 바치게 된다면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내 현 생활을 그대로 둔 채 생활비의 일부를 할애한다거나 필수품의 일부를 내어놓는다면 심적 물적 부담감을 갖게 될 것이니 근검저축의 창립정신에 입각하여 생활 합리화로 절약된 부분을 바치도록 하는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한편으로는 구호금의 염출을 위한 특별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수입을 바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10월 유신으로 전 국민이 새로운 결의와 자세를 가다듬고 있는 중대 시점에, 우리의 일체 행동과 및 사고방식이 이 시대적 요청을 외면함이 없어야 할 것이오, 모두가 잘 살기 위한 벅찬 희망을 안고 한 사람의 낙오도 없는 전진대열을 정비하기 위하여 배전의 성의로 자선의 달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원불교 기초교리 강좌 / 동포은 -박 제 권④
자리이타의 大협동은 제시
[446호] 1986년 03월 06일 (목) | 원불교신문![]() |
동포란 「化生萬物이 謂土同胞」라고 천지 사이에 실여있는 만물 즉 인류로부터 금수, 초목, 물체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동초 사이에는 옹색할 때 서로 챙겨주고 바쁠 때 도와주는 도움이 있고 외로울 때 찾아주고 역경에 처할 때 위로해 주는 의지가 있고 사농공상의 분업으로써 천만학술과 천만물질을 교환하여 서로 자리이타로 大협조은을 입고 있다. 자리이타의 이념은 사회개도의 근본요서이며 인류행복에 공헌이 큰 윤리이다. 법문에 「불보살들은 어리석게 남의 일만 하는 것 같으나 내일을 하신 분들이고 범부들은 영리하게 내일만 하는 것 같으나 남의 일만 하는 자이니라.」하셨는데 성인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함으로써 자리를 삼아 겸손과 사양과 양보로써 상생의 因을 지으시며 중생은 이익만 탐한 나머지 다른 사람이야 해를 입든지 고를 받든지 자기만을 이롭게 함으로써 교만과 야만심으로 상극의 因을 짓는다. 사회진화에 있어 만물이 진리에 근원한 이치를 깨쳐서 서로 상부상조하여 서로 주고받아 은혜를 느끼어 화목하며 평화안락을 누리를 영구적인 진화가 있고, 다윈의 생물진화론에 있는 생존경쟁, 약육강식, 우승열패, 자연도태, 적자생존으로써 서로 투쟁하며 뺏고 서로 원수를 맺어 보복하는 비영구적인 진화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공정한 입장에서 자리이타로써 하는 길은 天理之空이며 바른 취사를 얻게 되고 탐욕에 끌리어 자리타해의 인욕지사를 행하는 사람은 공정하기 못하고 취사를 그르치게 된다. 그러므로 동포은을 보은하기로 하면 ①남의 인격을 무시하지 말고 항상 공경심을 갖고 ②끝까지 변치 않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③나쁜 인연을 가까이 말고 선지식을 가까이 할 것과 ④어디를 가든지 정신 ㆍ 육신 ㆍ 물질로 유익을 주되 손해주고 애먹이는 사람은 되지 말며 ⑤애경상문을 잘하여 챙기는 사람이 되고 ⑥척이 없어야 한다. 한사람의 기운도 막히면 아니 되며 원수를 용서하고 마음으로 미운사람, 동물, 물건까지 없어야 한다. 이와 같이 보은의 적공을 쌓고 보면 개인 개인의 화한 기운이 가정에 미치고 교단에 미치고 사회 국가 세계에 미치고 종교계에 미치어 상극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통하게 하여 심화 기화 인화의 사기가 충만할 때 우리가 바라는 평화 안락한 인류의 행복이 구현된다고 본다.
<법사 ㆍ 일본교구장>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자리이타 (自利利他)
⑴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 다른 사람의 이로움을 나의 이로움으로 삼는 것. 대승수행. ⑵ 내가 잘 살되 남과 함께 잘 사는 것.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건설해 가는 것. ⑶ 사은 중에서 동포은의 상호관계. 모든 동포간에 서로 자리이타의 관계로서 도움이 되고 피은이 되는 것. ⑷ 자리는 자각, 이타는 각타.
=======================================================================================================
교리공부 / 동포보은의 길
깊은 가운데 공정한 관계 유지해야
[632호] 1991년 02월 01일 (금) | 원불교신문![]() |
동포의 생활직장인 사농공상에 천만학술과 물질을 교환할 때 공정한 자리이타의 도로서 이루어져야한다고 동포보은의 강령에 밝혀있다.
이 은 먼저 무한히 전개되어있는 동포의 세계를 찾아내어 그 속에서 깊은 인연을 찾아내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치 신대륙의 발견과도 같은 일이 되리라고 보아진다. 그동안 이념의 장난으로 북방세계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오늘날 열려지고 보니 새삼 동포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한다.
어디까지나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찾아내는길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므로 기술교환 물자교환 등을 위해서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자리이타 상부상조하게하는 길로써 다음 세가지의 길이 요청된다.
첫째, 동포와의 깊은 관계를 찾아내는길은 나와 서로 다른 것이 있어서 서로 절장보단이 되어 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동포들은 서로다은 세계를 수용하여 깊은 관계를 맺고 살기 마련이다.
같은 친천끼리는 혼인 하지 않고 또 원한 맺힌 관계끼리도 혼인하지 않게되어 있는 것을 알아보면 짐작이 된다. 이것은 친불친을 뛰어넘어 공정하고 멀어야할곳에서부터 도리어 인연의 뿌리를 내야만 살수있다는 표상이 오랜 옛날부터 만들어진 습관이라고 생각된다. 단순한 인간과 인간사이에 라면 서로 가까울수 있어야 하는 인간의 관계를 동포은혜에서 맺는 인연라고 보아진다.
우리주변에 그어느것에도 무관한 것이 없음을 우리는 알아내야만 인간의 살길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같으면 동포가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극히 일부분으로 모두가 나의 이웃이라는 생각아래 가까이 할수 있어야만 세상이 활력있는 은혜의 세계로 바꾸어진다.
어느 목사는 전혀모르는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한쪽을 떼주는 화제를 모은일이 있다. 이것은 동포의 넓은 은혜를 국한없이 보은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볼 때 국한없는 동포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야말로 넓은 세상의 동포에게 무주상보시하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보아진다.
둘째, 동포와의 관계속에서 공정하게 자리이타로 베푸는 보은을 해야만한다고 교전에 밝혀있다. 공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를 함께하는 길로서 정산종사께서 밝히신대로 공화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평등한 민주사회가 정치이념이 되어야 하듯이 공정한 관계를 맺는 일이 필요하다. 대종사께서는 앞으로의 가정에는 부부가 평등하게 두문패를함께 달게되는 세상이오며, 또 저금통장도 부부가 각각 갖게된다. 하였다. 또한 결혼하는 가까운 인사 그첫날부터 어느한편도 의뢰하지 않는 서약서와 평등한 관계를 갖게하는 길을 밝힌점에서 다분히 가정속에서도 큰 인연을 맺게하는 길을 밝혔다.
이것은 원근친소가운데에서 공정성을 잃지않게하는 표본이라고 보아진다.
셋째, 동포에게 무엇인가 받는것보다 주는 것이 많은 실적을 내야만 덕있는 사람이되는 길을 밝혔다. 아무래도 이 넓은 세상에 널리 힘미치기는 어려울듯싶지만 마치 태양이 동편에 솟아 밝게 빛나면 삼라만상이 혜택을 입듯이 우리의 능력은 무한하여 실천하게되면 반드시 이루어 지리라고 보아진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인간으로 소졸하게 지낼지언정 알고보면 무한한 힘이 열려지리라고 생각하면서 무주상보시로 무주상복덕을 이루는 노력을 하여 보기로 하자.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교리공부 / 사은 = 자리이타의 절대적인 은혜관계
동포가 주는 의미
[630호] 1991년 01월 18일 (금) | 한정원![]() |
인간은 서로 주고받는 깊은 관계를 맺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에게는 근원적으로 서로 의지해야만 살수있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불교에서 상의상자하는 연기로 관계 지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포은은 인연의 합리적 성적인 자리이타로 되어지는 모습임을 이해할수 있다. 이런 관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원불교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부연하고 있다.
첫째 동포가 의미하는 것처럼 지극히 평등한 바탕을 한 관계를 가지고 상대되는 면이며, 둘째는 국한없이 많은 세계의 식물곤충까지도 한 동포의 품안에 넣고 보는 안목이 동포은 속에 담겨있다. 이 무한한 중생의 모습을 일찍이 불교에서는 크게 구류중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한 육도사생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소태산대종사는 이 중생의 모습을 넘어서 평등한 인연관계에서 포용하는 무한한 동포이며 또한 생활의 바탕이 되는 무한한 윤기를 보여주는 관계이니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직업인의 생활구조에 따라 구분지어왔던 이른바 사농공상의 형태에서 나누어 사는 동포의 형태를 밝힌 점이 독특하다 하겠다.
이것은 현실생활을 본위로 하여 밝힌 동포의 관계를 설명한 단면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지난날 불교적 안목에서 밝히는 동포는 중생계를 총괄하여 유주무주의 중생계를 찾아 밝히는 이른바 넓은 차원에서 심신작용에 따라 이루어지는 세계 이른바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누어 무량세계의 중생을 설명하는 구류중생을 두루 밝히는 하나의 분류법이였다. 그러나 소태산대종사는 이 구조를 버리지 않고 수용하면서 중생이 주는 제도자와 미제도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떠날 수 없는 협조 관계를 맺은 일촌의 인연으로 보는 점이 다르다. 특히 사농공상의 네가지 분류는 생활상에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서로 평등한 구조를 통해 서로 인연을 맺고 살고있는 모습임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름아닌 동포사이에 생활상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는 자기가 살고있는 형태에 따라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이른바 직업상의 생활 분류로 본 것이다.
또한 동포를 생활 구조상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기도 한다. 친족간에 인연을 맺고 사는 소위 친족사회에서 윤기를 밝히는 인연이 되는가하면 또한 인간 생활의 계약을 통해서 살고있는 이른바 계약사회로 조성되어 있는 동포들의 관계가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계약사회에서 사논공상의 생활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두가지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서로 인척사이에 맺고 사는 사회, 단일민족이 조직하여 사는 사회들이 있는가하면 인간관계에 계약을 통해 사는 사회규범을 통해 모여진 사회가 있음을 찾아볼수 있다. 친족사회의 구성체는 본래부터 깊은 혈연관계를 가진 인연집단으로 근원적으로 이사회는 자칫하면 평등성을 상실한 굳어진 사회로 전락되는 관계를 맺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밝힌바 있다. 얼핏 생각하면 혈연관계로 맺어진 좋은 인연이라고 보기 쉬우나 상부상조의 협동체가 되기어려운 낙후성을 면치 못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서로 모르는 관계이나 어느 입장에서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찾아 비록 지금은 맺어진 인연이 없는 듯하지만 평등한 이익집단이면서도 근원적으로 깊은 인연을 맺고 사는 관계임을 아는 계약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어느때나 중생들과의 관계를 혈연의 윤기로 맺되 상호평등한 공화의 관계가 되도록 하는 자리이타의 관계를 찾아야만 여기에서 밝히는 이른바 동포은의 세계이다.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이땅에 오신 대종사 / 원불교 교도가 보는 상업
以小成大에 바탕한 자리이타가 상의도
[658호] 1991년 08월 30일 (금) | 李圓京![]() |
상업에 대하여
상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부터 있어왔고, 점차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로 하는 물품(물건)을 전문적으로 교환하여 사람으로부터 물품을 조달 받았고, 이들은 상업으로써의 직업이 정착되었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물건)을 필요한 시기에 적정한 값으로 공급하여 줌으로써 상인들은 구매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로써 반대부(상업소득)를 얻게 된다.
이제 도시든 농촌이든 산촌 어촌이든 생활에 필요한 물품(물건)들을 자급자족 할 수 없기 때문에 써비스 산업으로써의 상업은 그 역할이 매우 크다.
직업으로써의 상업
원불교 정전 동포은을 보면 「대범 이 세사은 사 ㆍ 농 ㆍ 공 ㆍ 상의 네가지 생활 강령이 있고, 사람들은 그 강령 직업하에서 활동하여, 각자의 소득으로 천만 물질을 서로 교환할때에 오직 자리이타로써 서로 도움이 되고 피은이 되었나니라」고 밝혀 주셨다.
그러므로 상업을 생활 강령으로 하는 상인은 동포에게 필요한때 값싸고 좋은 물품을 공급하여 의식주 생활에 편리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편리하게 제공하여 조달시켜 주는 행위, 그것이 상행위라고 생각할 때 은혜도 함께 하는 즉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를 한다면 바로 그 상인은 동포보은을 하는 직업이다.
인류생활에 필요한 물품, 즉 천만물질을 공급하여 줄때는 향상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로 하는 사람이 원불교의 상업에 대한 견해이다.
공정한 자리, 자리이타라고 하는 것은 물품의 공급자로써 품질을 소비자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어야하고 또 그 가격이 정찰로써 표시되어 적정한 가격이어야 함을 말한다.
道山 ㆍ 公山의 상업
이리 보화당은 영육쌍전 ㆍ 이사병행 ㆍ 제생의세의 정신을 생활속에서 실천하고, 나아가 원불교의 인재양성, 경제기반 확립,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서기 1934(원기 19년)에 설립 되었다.
道山 李東安 대봉도는 서중안의 건재약방 (김제)에서 몇 년간 한약업 수습을 한뒤 보화당을 경영하였다.
도산 대봉도는 ①좋은 약재를 구입키 위하여 전국 우수한 약포와 거래선을 트고 약효가 가장 높은 시기에 취재된 약재(상품)를 구입하는 이른바 원자재구입 확보에 심혈을 쏟았으며, ②薄利多賣를 판매전략으로하여 좋은 약재를 싸게 많이 팔아서 더많은 고객을 계속 창출하는 이른바 마케팅을 훌륭히 구사 하였다. ③또한 친절과 공신력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고객으로부터 믿을 수 있는 보화당, 이른바 신용을 창출하였으며, ④재고관리(창고관리)에도 철저 하여 약효가 지났거나, 품질이 변질된 약재가 있으면 폐기(태워버림)처분 하여 항상 약효의 신선도를 높이는 이른바 재고품 관리에도 만전을 다하였다.
李東安대봉도는 한약업을 통하여 원불교인의 사업인(경영자)으로써 그 성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초기 교단의 경영인이며 도인이시었다.
후임으로 보화당 경영을 인수 받은 公山 송혜환 대봉도도 도산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밀고나가 만17년간의 경영(상업)으로 마침내 호남 굴지의 보화당 한약방을 만들었다. 더욱 공산대봉도는 공인의 자세가 철저하여 공사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공사로 출장 가면 최저의 경비를 쓰고도 그 일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엄격한 한계계산으로 남은 여비는 반납 한느 공인의 길을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이 걸었던 후진들에게 있어서는 만대사표가 될 스승이셨다.
이소성대의 사업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교단 창업에는 철저한 근검(새벽부터 밤 늦게까지의 노동)과 절약(최저의 의식주 비용만 씀)이 있어야 했다. 또한 무산자들로써 세계사업의 대경륜이 있었기 때문에 작고 적은 것을 쌓고 또 쌓아서 마침내 큰 것을 이룰 수 밖에 없다는 천리를 체질화 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회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되어가는 시세를 감지 하지 못한 이소성대의 경영은 마침내 그 한계가 노출 되고 말았다. 교단 초기에는 탁월한 경영도인이 있었음에도 작고 적은것만을 붙들고 있었던 그 이후의 보수 경영은 마침내 영육쌍전 ㆍ 이사병행 ㆍ 제생의세라는 대종사님의 경륜이 현상유지만 한체 규모 경제로 발전을 못하였음은 후진으로써 부끄러움이 앞선다.
부동산은 해마다 상승하는 원리를 철저히 경험하여 철학으로까지 심화되어 왔으나 사회의 사업체나 생산 경제규모는 그보다 더 팽창하고 성장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 한 결과로 신도안의 부지도, 수계농원의 땅도 원대한 국가발전의 계획으로 수용되고 말았다.
이소성대의 천리는 작고 적은 것을 소중히 하고, 작고 적은 것부터 철저히 경영하여 마침내는 큰 것을 이루어 그 큰것에서 많은 과실이 발생하여 제생의세의 큰 보탬이 되어야 비로서 우리는 이소성대의 천리를 말 할 수 있는 것라고 생각하여 본다.
원불교 상업의도
일찍부터 대산 종법사님은 상의도를 밝혀 주시었다.
①자리이타의 법으로 장사(산업)를 하면 인류는 공생 한다고 하였다. 내장사도 잘 되면서 남의 장사도 잘되어 인류도 잘 된다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②천만 물질을 교환할때에 상부상조로 하여야만 서로 살아 난다고 하였으니 사람의 삶은 각자가 생산한 것이 서로 교환되어 질때 향상 되고, 발전되는 것이 진리 임을 알고 (동포은), 하나의 가족, 한 삶의 공동체임을 철저히 알아야 인류가 산다는 말씀이다.
③서로 이익을 주고, 이익을 받는 관계, 서로 서로 한 삶의 공동체(상부상조)라는 관계의 진리를 알고 시중에서 활선으로 활불이 되는 상인이 바로 원불교인이 보는 상업관비며 상인=도인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사치와 사이비 신자
우리는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그럴듯하게 판매하는 장사치 종교인을 볼 수 있다.
극락이나 천당을 내세워 재산과 돈을 헌납하도록 겁도주고, 강요도 하며, 무보수 노동도 강제하며 재산을 늘린 후 사회발전을 외면 한다면 그 종교는 사이비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신앙인은 가짜 장똘뱅이 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을 업으로 하는 상인들도 상의도를 팽개치고 가짜를 진짜로 속여 팔고, 터무니 없는 값으로 고객을 농락 한다면 그 사람은 장사치라고 불러 주어야 할 것이다.
상업을 하는데에도 항상 국민의 생명 즉 보건을 생각하면서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의 교환을 늘 천직으로 하는 상업은 인류에게 도움과 편의를 증진하여 한량없는 세상을 살면서 한량없는 고객을 창출하여 세세생생 복족족혜족족한 상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 늘 법장사도 겸해서 영육쌍전 ㆍ 이상병행하는 원불교인이 될 것이다.
李圓京 <교무 ㆍ 원광새마을금고>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이소성대 (以小成大)
원불교 창립정신의 하나. 모든 일을 작은 데서부터 합리적으로 출발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한 노력으로 점차 크게 발전시켜 가자는 정신. 산골 물이 모여들어 큰 바다를 이루고 티끌 모아 태산을 쌓듯,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큰 일을 이루어 나가려는 정신이다. 일확천금이나 요행수를 바라거나, 부당한 투기로 큰 돈을 모으려 거나, 폭리를 취하려는 것은 이소성대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소성대의 정신은 중국의 옛 이야기에 등장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이야기나, 민족주의자 도산 안창호의 점진주의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물질적인 사업도 작은 데서부터 출발하여 점차 크게 이루어 가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성불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인격도 범부 중생의 무명 번뇌에서 출발하여 각고 수행 정진 끝에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교단 일이나 세상일이나 일시적 공명심이나 욕속심으로 성급하게 성공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큰 대들보로 쓸 나무는 수 백년을 묵묵히 자라야 하는 것이다. 장차 세계의 정신적 지도이념이 될 원불교도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국가와 사회의 인정을 받고 나아가 세계가 요청할 때까지 꾸준하고 성실하게 발전해가야 하는 것이다.
=======================================================================================================
개벽의 소리 / 報恩四分法
생산성 향상은 나눠 갖는게 당연
[648호] 1991년 06월 14일 (금) | 조정제![]() |
요즈음 노사의 갈등은 한 마디로 심각하다. 「너죽고 나 살기 식의 투쟁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런 투쟁의 계속은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결과를 빚게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왜 이 모양이 되고 말았을까?
상대적빈곤감과 내 몫찾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의 생활수준은 분명히 소련보다, 그리고 중국보다도 낫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주거수준도 사회주의국가의 그것보다 더 양질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 내 이웃과 비교해서 더 못 사는데 있다. 주거수준도 향상되고 있으나 다 내집을 갖고 싶어한다. 10년전 만해도 2~3년의 봉급을 몽땅 모우면 집 한 채값은 되었으나 이제 봉급이 인상되었다고해도 6~7년치를 전부 저축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서도 상대적빈곤감을 안겨준다.
그러니 노사갈등속에 근로자들은 생산성향상분을 전부 자기들의 봉급인상으로 되돌려 달라는 주장을 펴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근로자의 기여로 성장한 기업이니 이를 분해해서라도 한다. 이같은 성장의 과실을 나누어 갖자는 주장은 옳은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같은 주장이라도 노사가 마치 서로가 원수인 것처럼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원불교의 강자 ㆍ 약자진화상 요법은 강자와 약자가 동반자로서 서로 키워주는 은혜의 공생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한 기업의 성장은 노 ㆍ 사만의 힘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노 ㆍ 사외에 정부의 보호와 국민(동포)의 호응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은의 과실인 생산성향상은 나눠 갖는게 당연하다. 그러면 어떻게 나눌 것인가?
우선 몫의 배분은 생산성향상의 범위내에 한정되어야한다. 이 큰 원칙이 깨어지면 그 기업이 얼마동안 버틸지 몰라도 결국 도산을 면하지 못하게 되고 나라전체로 보더라도 이러한 관행이 보편화되면 사회전체에 물건은 모자라고 유효수요가 넘치게 되어 소련처럼 상점마다 줄서서 기다리는 형국이 전개되고 물건값이 폭등하게 된다. 그러면 근로자도 명목임금은 올라도 장바구니는 가벼워지는 빈곤을 맛보게 된다.
그러니 생산성향상의 범위내에서 이빵을 적절히 배분하는 방법이 제시도어야하는 것이다. 이 빵은 그 생산에 기여한 대로 근로자, 사용자, 국민, 국가간에 사분 되어야하는 것이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배분은 그간 기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덜 받은 근로자에게 더 많은 분배가 이뤄져야할 것이다. 정부에게는 떳떳한 세금을 내어 법률의 시행이 제대로 되도록 하고 덜 갖은자의 주거문제등을 지원 ㆍ 해결토록 해야할 것이다.
동포은에 대한 분배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좀 더 싸게」공급하고 일부는 사내유보를 통하여 기업의 확장이 되게하여 직업이 없는 자에게 취업의 문호를 넓혀주는 것이다. 같은 상품을 좀 더 싸게 공급하면 이는 생산성향상의 일부를 동포에게 베푸는 셈이딘다. 만약 모는든 기업이 생산성향분중의 일부를 동포에게 나눠주기운동에 동참하게되면 사회전체의 물가가 그만큼 안정될 것이고 물가가 안정되면 개별기업의 근로자도 동포에 대한 배려로 처음에는 임금인상이 그만큼 작아져도 결국은 물가가 안정되어 장바구니의 무게로 보아 더 이익이 되는 결과(실정임금의 상승)가 된다.
사회전체로 봐서도 물가가 그만큼 안정되면 수출은 잘 되고 수입이 억제되는 효과가 있어서 사회에 도움주고도 내게 이로운 利他利自」의 관계가 성립된다.
우리, 보은사분법을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생산성향샹의 10%를 동포에게」라는 이타이자의 캠페인을 전개했으면 한다.
<교도 ㆍ 보은동산회장>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