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교의품(敎義品) 18장
대종경(大宗經)
제2 교의품(敎義品) 18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공부의 요도 삼학(三學)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데에 가장 필요한 법이며, 잠간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예를 들면 육신에 대한 의·식·주(衣食住) 삼건(三件)과 다름이 없다 하노라. 즉, 우리의 육신이 이 세상에 나오면 먹고 입고 거처할 집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없으면 우리의 생활에 결함이 있게 될 것이요, 우리의 정신에는 수양·연구·취사의 세 가지 힘이 있어야 살 수 있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모든 일을 원만히 이룰 수 없나니라. 그러므로, 나는 영육 쌍전의 견지에서 육신에 관한 의·식·주 삼건과 정신에 관한 일심·알음알이·실행의 삼건을 합하여 육대 강령이라고도 하나니, 이 육대 강령은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한 가지 우리의 생명선이 되나니라.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육신에 관한 세 가지 강령은 소중한 줄 알면서도 정신에 관한 세 가지 강령이 중한 줄은 알지 못하나니, 이 어찌 어두운 생각이 아니리요. 그 실은 정신의 세 가지 강령을 잘 공부하면 육신의 세 가지 강령이 자연히 따라 오는 이치를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본(本)과 말(末)을 알아서 행하는 법이니라.]
★★★★★★★★★★
인생의 요도ㆍ공부의 요도[人生-要道ㆍ工夫-要道]
[개요]
인생의 요도는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의미하며, 공부의 요도는 공부인이 마땅히 밟아 행해야할 요긴한 도를 말한다. 소태산대종사가 밝힌 인류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실현하고 인격을 완성하는 신앙의 강령과 수행의 방법을 담고 있다.
[성립과정]
〈원불교교헌〉이 제정 반포되면서 원불교가 지향하는 교단활동의 방향으로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가 선포되었다. 1948년(원기33년) 4월, 제정 반포된 〈원불교교헌〉에 “본교는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학 팔조로써 전 세계를 불은화(佛恩化)하고 일체 대중을 선법화(禪法化)하여 제생의세(濟生醫世)하기로 목적한다”고 한 조항에서 알 수 있다.
먼저 원불교 교리 성립 과정에서 인생의 요도ㆍ공부의 요도를 살펴보면 기본 교리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선포라 할 수 있는 교강 발표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20년(원기5) 4월에 소태산은 봉래산에서 새 회상의 교강으로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을 발표했다. 이때에 발표된 사은은 천지은ㆍ부모은ㆍ동포은ㆍ법률은으로써, 그 피은ㆍ보은ㆍ배은을 설명하고 있다. 사요는 남녀 권리동일ㆍ지우차별(智愚差別)ㆍ무자녀자 타자녀교양(無子女者他子女敎養)ㆍ공도헌신자 이부사지(公道獻身者以父事之)이다.
삼강령 팔조목은 오늘날의 삼학 팔조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삼강령은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이며, 팔조목은 신(信)ㆍ분(忿)ㆍ의(疑)ㆍ성(誠)과 불신(不信)ㆍ탐욕(貪慾)ㆍ나(懶)ㆍ우(愚)이다. 신ㆍ분ㆍ의ㆍ성 사조로는 진행건(進行件)을, 불신ㆍ탐욕ㆍ나ㆍ우 사조로는 사연건(捨捐件)을 삼아, 삼강령 공부를 운용하는 요법이 되게 했다. 1932년(원기17) 4월에 《보경육대요령》이, 1934년(원기19) 12월에는 《삼대요령》이 발간되었다.
《육대요령》에는 권두에 개교 표어ㆍ총론ㆍ교리도를 싣고 바로 이어 ‘제1장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 제2장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이 실려 있다.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 장은 다시 ‘인생의 요도 사은의 내역’과 ‘인생의 요도 사요의 내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인생의 요도 사은의 내역’ 각 조항에는 피은의 강령ㆍ피은의 조목ㆍ보은의 강령ㆍ보은의 조목ㆍ배은을 설하고 이어 ‘의두해석’ 조항을 두어 각 항 전체에 대한 깊은 사고를 이끌고 있다. ‘인생의 요도 사요의 내역’에서는 남녀권리동일의 강령, 과거 조선여자의 생활조목, 남자로서 남녀권리동일 권장의 조목, 여자로서 남녀권리동일 준비의 조목으로 시대의 상황에서 남녀차별을 극복하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지우차별의 강령, 과거조선 차별제도의 조목, 지우차별의 조목, 무자녀자 타자녀교육의 강령, 과거조선 교육의 결함조목, 무자녀자 타자녀교양의 조목, 공도헌신자이부사지의 강령, 과거조선 공익기관의 결함조목, 공도헌신자 이부사지의 조목으로 시대의 결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려는 내용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어 제3장 훈련법에서는 ‘공부의 요도 정기훈련의 과목급해석’과 ‘공부의 요도 상시훈련의 과목급해석’을 설하여 공부의 요도를 실제로 훈련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공부의 요도를 삼학 팔조에 한정하지 않고 그 실행공부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지어 폭넓게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43년(원기28) 소태산이 “나의 일생 포부와 경륜이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다”고 한 《불교정전》의 편수 발간이 이루어졌다. 《불교정전》은 1940년(원기25) 9월부터 출판을 시도했으나, 일정(日政)의 출판 불허로 1943년(원기28) 3월의 발행이지만, 소태산의 열반 후인 그 해 8월 비로소 중앙총부에 배달되었다. 《불교정전》은 《원불교교전》이 발간되기까지 19년 동안 원불교 교서로 활용되었다.
《불교정전》은 전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원경인 권1의 제2편 교의(敎義)에는 사대강령ㆍ일원상ㆍ게송ㆍ사은 사요ㆍ삼학 팔조ㆍ삼대력ㆍ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관계 등 9개장이 편입되었다. 여기에서 눈에 띠는 부분은 ‘삼대력’ 장을 분리하고,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관계’가 장을 달리하여 편성되었다는 점이다. 사은은 각 항마다 피은의 강령, 피은의 조목, 보은의 강령, 보은의 조목, 보은의 결과, 배은의 결과로 정리되었고 ‘보은에 대한 의두해석’ 조항은 천지은과 부모은에만 남아 있고 동포은 법률은에서는 제외되었다. 사요는 자력양성ㆍ지자본위ㆍ타자녀교육ㆍ공도자 숭배로, 삼강령 팔조목은 삼학 팔조로 그 제목들이 정돈되었다.
삼학은 각 항의 요지ㆍ목적을 두고 제8장에 삼대력 장을 따로 두어 정리하고 있다. 이어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의 관계’가 새로운 장으로 분리, 제9장으로 별립되었다. 이전의 사은 사요 삼학 팔조를 형용하는 용어였던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그 관계를 강조하는 내용이 첨가되어 새로운 장을 이루고 있다. 1962년(원기47) 《원불교교전》 발간에 이르러서는 ‘사은 사요’ ‘삼학 팔조’와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가 각각 장을 달리하여 정리되었는데,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은은 공히 피은의 강령, 피은의 조목, 보은의 강령, 보은의 조목, 배은, 보은의 결과, 배은의 결과의 항목으로 정리되었다. 천지은과 부모은에 있던 의두해석 조항도 삭제되었다. 사요에 있어서는 《불교정전》에서 자력양성의 ‘과거 조선인의 의뢰생활 조목’, 타자녀교육의 ‘과거 조선교육의 결함조목’, 공도자 숭배의 ‘과거 조선 공도사업의 결함조목’을 두어 조선사회 상황 극복을 주로 표현한 데 비해 《원불교교전》에서는 이를 좀더 인류 보편의 문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삼학 팔조에 있어서는 삼대력은 삼학의 각 항에 ‘결과’ 조목으로 삽입되었고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의 관계’는 ‘제6장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로 정리되어 있다. 《불교정전》에서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수록되어있는데 비해 《원불교교전》에서는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의 의미 설명을 서두에 붙이고 있다. 곧 ‘사은 사요는 인생의 요도요, 삼학 팔조는 공부의 요도인바’가 첨가되어 있다.
또한 《불교정전》에서는 ‘제3편 수행’의 제2장 ‘공부의 요도 정기훈련과목 급 해석’ 장을 두고 삼학 각항마다 ‘정기훈련 과목의 해석’을 두고 있다. 제3장은 ‘공부의 요도 상시훈련과목 급 해석’으로 현재의 ‘상시훈련’ 절을 싣고 있다. 이를 보면, 원래 공부의 요도는 삼학 팔조와 훈련법을 포함하고 있어서 수행과 관련된 내용에 폭넓게 쓰이고 있었다. 《원불교교전》에서는 그 내용은 다르지 않으나,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으로 정리되어 있다. 다만 《불교정전》에서는 정기 훈련 11과목을 삼학에 배대하여 수록했고, 《원불교교전》에서는 이에 대한 총론적 설명을 서두에 붙여두고 있다.
이렇게 인생의 요도ㆍ공부의 요도는 교리의 성립과 교서 편찬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내용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편제에서 거듭 정돈되었고, 처음에는 시대의 상황과 지역의 특성이 부각되었던 데 비해 내용의 보편화가 진행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최초에는 사은사요 삼학팔조와 공부의 구체적 실천체계인 훈련법 등을 형용하는 용어로 쓰이다가 차츰 독립된 장을 이루어 그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점도 발견된다.
[교리사상적 의의]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는 《정전》에 수록된 제2 교의편 제6장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장에서 그 근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인생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실현하는 길로 원불교가 제시하는 세상을 구원할 요법이다. 이는 사람은 사은의 무한 은혜의 산물이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천지은ㆍ부모은ㆍ동포은ㆍ법률은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은혜에 의해 생명을 얻고 존재를 유지해 간다. 그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며 보은하는 삶을 살도록 요청된다.
이를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이 사요다. 사요를 통해 궁극적 평등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먼저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기 위해서는 자력을 양성해야한다. 자력은 경제의 자립력, 육신의 자활력, 정신의 자주력이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하다. 지자본위로 지식이 평등한 사회, 타자녀교육으로 교육기회가 평등한 사회, 공도자 숭배로 사회적 근본 평등을 이루는 사회를 지향한다. 곧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는 인간을 사은의 무한 은혜의 총화로 인식하고 그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여 인간 사회를 궁극적인 평등의 사회, 낙원세계를 이루고자하는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이며, 그 고귀한 삶의 가치를 다하는 길이다. 공부의 요도는 ‘삼학 팔조’를 말한다. 《정전》 제6장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서 ‘삼학 팔조는 공부의 요도인 바’라고 하고 있다.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의 삼학 수행을 철저히 실행해서 인격을 완성하고 생령을 제도할 요법이다. 곧 정신수양 공부로 정신을 수양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여 천만 경계 속에서 온전한 정신의 자주력을 세우며, 사리연구 공부로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하여 실생활에서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하여 사리간에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을 얻어, 작업취사 공부로 무슨 일에서나 정의는 실행하고 불의는 버리는 실행공부로 낙원을 맞아오는 공부이다.
심신의 자유와 해탈로 극락을 누리는 주체적 능력을 갖춘 낙도인(樂道人)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과 그 경지를 나누는 실천공부이다. 이를 위해서는 팔조, 곧 공부를 진행하는 추진력이 되는 진행사조와 공부에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인 사연사조 공부가 아울러 필요하다. 곧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인 신과 용감하고 씩씩하게 전진하는 분과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하는 의, 그리고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는 성의 진행사조의 추진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믿지 못하는 불신, 정도를 벗어나 과하게 얻으려는 탐욕, 나태함과 어리석음인 우의 사연사조를 마음에 일어나는 즉시 바로 알아차리고 제거하는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 인격의 완성을 이루는 공부이다. 소태산은 ‘공부의 요도를 지내고 나면 부처님의 지견을 얻을 것이요, 인생의 요도를 밟고 나면 부처님의 실행을 얻을 것’(《대종경》 변의품25)이라고 한다.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정전》에서는 “인생의 요도는 공부의 요도가 아니면 사람이 능히 그 길을 밟지 못할 것이요, 공부의 요도는 인생의 요도가 아니면 사람이 능히 그 공부한 효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지라”고 한다. 공부의 요도를 닦아 삼대력을 갖추어 갈 때 사은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보은의 노력에 정성스러울 수 있다.
나아가 사요 실현이 절실한 삶의 과제가 될 수 있다. 곧 인생의 요도를 깊이 실현하는 도량과 추진력,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세상을 선법화하는 능력을 발현할 수 있다. 또한 인생의 요도인 사은 사요, 곧 인간 존재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은혜 실현의 길이 있어서 공부의 요도를 통한 삼대력의 힘이 발현되고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온전한 인격을 닦아나가는 공부가 현실 삶 속에서 더욱 활성화되고 세상을 바르게 하고 생령을 이롭게 하는 능력으로 발현될 수 있다. 세상을 불은화(佛恩化)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 원불교 공부인은 수행과 동시에 세상과 소통하고 수행의 능력을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한다.
세상은 수행자에게 그 실현의 장이다.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불법을 의미한다. 그 실현은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은혜의 관계를 깨닫고 감사와 보은의 불국토를 이루는 낙원 건설이다. 따라서 공부의 요도는 인생의 요도를 실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며 인생의 요도는 공부의 요도의 효력을 발휘하게 하는 실현의 장이 된다. 이 두 길은 서로 바탕이 되고 도움이 된다. 그 관계는 의술과 약재에 비유된다. 공부의 요도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과 같고, 인생의 요도는 환자를 치료하는 약재와 같다.
의술은 약재를 활용하여 효력을 발휘할 수 있고, 약재는 의술을 통해 그 잠재 능력을 실현할 수 있다. 환자를 치료하여 건강한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로는 완전할 수 없다. 상호 활용과 의지의 관계를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이루고자 하는 최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제생의세의 방법을 완전하게 하고 구체화하는 길이다. 삼대력을 얻은 공부인이 사은의 은혜의 터전을 감사와 보은으로 일구고, 사요의 실현을 통해 세상을 평등과 평화의 불국토, 낙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는 궁극적 진리인 일원의 진리를 실현하는 구체적 내용이기도 하다.
이를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반조하고 실현하기 위해 ‘일상 수행의 요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1~4조는 공부의 요도를, 5~9조는 인생의 요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인생의 요도ㆍ공부의 요도는 원불교 교리가 지향하는 신앙과 수행의 병진 실행, 수도와 생활의 일원화, 생활 속에서 불법 활용으로 현실 삶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고 낙원을 건설하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삼학[三學]
[개요]
삼학이란 정신수양(精神修養)ㆍ사리연구(事理硏究)ㆍ작업취사(作業取捨)이며, 부처의 인격에 이르도록 하는 세 가지 길로 원불교의 대표적 수행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삼학은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실천하고 체험하는 길이며, 마음공부를 통하여 부처가 되는 길이며 법신불의 속성에 합일하는 길이다. 이러한 삼학공부를 조화롭게 병행해나 가면 수양력ㆍ연구력ㆍ취사력의 삼대력을 얻게 된다. 본래의 내 마음을 잘 회복하여 얻게 되는 것이 수양력이고, 내 마음을 제대로 깨닫는 것이 연구력이며,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여 얻는 것이 취사력이다. 이와 같이 삼학을 병진해서 삼대력을 얻고 보면 자신의 마음을 부처와 같이 사용할 줄 아는 자유인이 되며,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된다.
[삼학교리의 형성사]
삼학을 교리 형성과정에 따라 살피자면 다음의 몇 가지 단계로 구분된다. 《불법연구회창건사》에서는 1917년(원기2)의 내용으로 ‘대종사 현 사회를 보신 첫 감상’ 가운데 ‘수신의 요법’에서 그 단초가 엿보인다. 소태산대종사는 수신의 요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대를 따라 학업에 종사하야 모든 학문을 준비할 것이요, 정신에 수양력이 능하여야 분수 직히난 대에 안정을 얻으며 희로애락의 경우를 당하여도 정의(正義)를 잃지 안이할 것이요, 일과 이치에 연구력이 능하여야 허위와 사실을 분석하여 시비와 이해에 판단함이 빠를 것이요, 응용할 때 취사하난 주의심을 놓지 아니하고 지행(知行)을 같이하여야 할 것이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삼학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창건사》에서는 1920년(원기5)에 변산에서 교리강령을 정하는데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인 바”라고 하여 삼학의 초기명칭인 ‘삼강령’이 출현한다. 그러나 《창건사》 자체가 후일에 작성된 것으로 작성 당시의 정서와 표현 등이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교단 초기에 삼학의 교리가 완정되어 출현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된다. 삼학의 공식적인 출현은 1927년(원기12)에 발간된 《불법연구회규약》이다.
여기에서 ‘본회의 유래’ㆍ‘본회의 취지 설명’ㆍ‘연구인의 강령 건’에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의 삼학이 기록됨으로써 최초의 기본교서에 삼학이 하나의 조목으로 명시되었다. 같은 해에 발간된 《수양연구요론》에서도 삼학은 공식적으로 출현한다. 특히 《수양연구요론》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연구문목’이 삼학 중에서 연구에 치중하고 있으며, ‘공부의 진행순서’에서 초심ㆍ발심ㆍ입지ㆍ수양ㆍ연구ㆍ취사ㆍ세밀ㆍ입정의 가운데 삼학을 순서대로 열거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1932년(원기17)에 출간된 《육대요령》에 ‘교리도’가 처음으로 제시되면서 삼강령이라는 제목으로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가 명시되어 있으며, 본문에도 요지와 목적을 밝히고 있다. 1939년(원기24)에 출간된 《불법연구회근행법》에서는 ‘일상수행의 요법’ 9조가 출현하는데 그 1, 2, 3조가 삼학의 내용에 해당된다. 여기서는 정신수양을 정(定), 사리연구를 혜(慧), 작업취사를 계(戒)로 표현함으로써 삼학을 처음으로 ‘계ㆍ정ㆍ혜’와 연결시키고 있다. 1943년(원기28)에 발간된 《불교정전》의 ‘교리도’를 보면 일원상을 중심으로 해서 진공묘유의 수행문과 인과보응의 신앙문으로 나누고, 진공묘유의 수행문의 구체적 방법으로 삼학을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삼강령’으로 명칭되어 오던 것이 공식적으로 ‘삼학’으로 바뀌었다.
또한 삼학을 ‘계-솔성(率性)-작업취사, 정-양성(養性)-정신수양, 혜-견성(見性)-사리연구’로 ‘교리도’에 명시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1962년(원기47)에 발간된 《원불교교전》의 ‘교리도’에 보면 《불교정전》에 들어가 있던 계ㆍ정ㆍ혜, 솔성ㆍ양성ㆍ견성의 부분이 삭제되고 삼학의 조항으로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빠져 있던 ‘사리연구’의 ‘연구’에 대한 개념정의를 ‘사리연구의 요지’의 끝에 “연구라 함은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함을 이름이니라”고 밝히고 있다.
[삼학의 교리적 근거]
일원의 진리는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으로써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다. 소태산은 일원상 진리를 돈공ㆍ광명ㆍ조화로 요약하고(《원불교교전》 교리도), 또한 공ㆍ원ㆍ정으로 요약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일원상의 진리는 돈공ㆍ광명ㆍ조화, 진공ㆍ묘유ㆍ인과, 공ㆍ원ㆍ정 등으로 접근할 수 있으나, 이는 표현상의 차이일 뿐 일원상 진리가 갖고 있는 비고, 밝고, 바른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들은 삼학이 지향하는 것들과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일원상의 진리와 삼학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소태산은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그 진리를 체받아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나니, 일원의 원리를 깨닫는 것은 견성이요, 일원의 체성을 지키는 것은 양성이요, 일원과 같이 원만한 실행을 하는 것은 솔성인 바, 우리 공부의 요도인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도 이것이요”(《대종경》 교의품5)라고 하여 일원상 진리의 세 가지 측면이 곧 삼학수행의 표준임을 말하고 있다.
정산종사는 “일원의 수행은 곧 일원의 진리를 그대로 수행하자는 것이니”(《정산종사법어》 원리편4)라고 하여 삼학은 일원의 진리에 합일하는 공부길임을 밝히고 있다. 소태산은 “견성은 일원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고, 양성은 일원의 체성을 지키는 것이며, 솔성은 일원과 같이 원만한 실행을 하는 것으로 공부의 요도인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도 이것이요, 불교의 계정혜 삼학도 이것으로서 수양은 정이며 양성이요, 연구는 혜며 견성이요 취사는 계며 솔성”(《대종경》 교의품5)이라 하여 원불교 삼학은 물론 불교의 삼학도 이 일원의 진리에 바탕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삼학수행의 원리를 요약하여 소태산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함과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니라”(《정전》 일원상의 수행)고 요약하고 있다. ‘일원상서원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일원의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일원의 속성을 갊은 수행 원리인 삼학을 통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삼학수행의 요지]
① 정신수양은 성품의 고요한 측면에 도달하자는 것이다.
소태산은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니라”(《정전》 정신수양의 요지)라고 말한다. 곧 분별심과 주착심을 다스려 본래의 두렷하고 고요한 성품의 본성에 합일하고자 하는 것이 정신수양이라는 말이다.
② 사리연구는 대소유무의 이치에도 걸림이 없고 시비이해의 일에도 걸림 없이 아는 지극히 밝은 반야지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사라 함은 인간의 시비이해를 이름이요, 이라 함은 곧 천조의 대소유무를 이름이니, 대라 함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정전》 사리연구의 요지)이라 했다. 또한 ‘연구라 함은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함을 이름이니라’고 했다.
곧 사리연구라 함은 대소유무의 이치를 연마하고 궁구하며 시비이해의 일을 연마하고 궁구함을 말한다. 또한 소태산은 만약 “이치의 대소 유무를 모르고 산다면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의 원인을 모를 것이며,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하여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모를 것이며”(《정전》 사리연구의 요지)라고 했다.
③ 작업취사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취사력을 얻는 공부를 말한다.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에나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함을 이름이요, 취사라 함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이니라”(《정전》 작업취사의 요지)고 했다. 정의를 취한다는 것은 옳은 일을 죽기로서 실행한다는 것이며 불의를 버린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을 죽기로서 아니한다는 것이다. 정의를 실행한다는 것은 원래에 갖추어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실행력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삼학수행의 방법]
① 정신수양의 방법
정신수양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정할 때는 염불과 좌선 등을 통해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애 일정심(一定心)을 이룬다. 소태산은 “염불은 천지만엽으로 흩어진 정신을 주문 한 귀에 집주하되 천념 만념을 오직 일념으로 만들기 위함이요”(《정전》 염불법)라 하고, 자심미타와 자성극락을 강조했다. 또한 “좌선은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 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요”(《정전》 좌선법)라고 했다. 곧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는 두렷하고 고요한 진경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좌선이라는 것이다.
또 소태산은 좌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정전》 좌선법). 망념을 쉰다는 것은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 한다는 것이며 진성을 나타낸다는 것은 두렷하고 고요한 성품을 발현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좌선은 염불과 아울러 정할 때 정신수양 공부의 기본적인 방법이다.
둘째 동할 때는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는 부동심(不動心)을 기르는 것이다. 소태산은 약을 달이는 것과 바느질하는 것을 함께 하는 공부에 대하여 “열 가지 일을 살피나 스무 가지 일을 살피나 자기의 책임 범위에서만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방심이 아니고 온전한 마음이며, 동할 때 공부의 요긴한 방법이니…, 자기의 책임만 가지고 이 일을 살피고 저 일을 살피는 것은 비록 하루에 백 천만 건을 아울러 나간다 할지라도 일심 공부하는 데에는 하등의 방해가 없다”(《대종경》 수행품17)고 했다. 그 일 그 일에 일심을 집중하여 일심의 정력을 쌓음과 아울러, 그 일을 성공하게 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수양력을 기르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② 사리연구의 방법
사리연구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정기훈련을 통하여 사리연구를 하게 하는 것이다. 정기훈련과목으로 경전ㆍ강연ㆍ회화ㆍ의두ㆍ성리ㆍ정기일기 등의 과목이 있다. 경전은 우리의 지정교서와 참고경전 등을 공부하는 것이다. 강연은 사리간에 어떠한 문제를 정하고 그 의지를 해석시켜 대중의 앞에서 격을 갖추어 그 지견을 교환하며 혜두를 단련하는 공부이며, 회화는 각자의 보고 들은 가운데 스스로 느낀 바를 자유로이 말하게 하여 구속 없고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혜두를 단련시키는 공부법이다.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공부이며, 성리는 우주만유의 본래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를 해결하여 알자는 공부법이다. 정기일기는 당일의 작업시간수와 수입 지출과 심신작용의 처리건과 감각감상을 기재시켜 지견을 키워가는 공부법이다. 둘째 그 일 그 일에서 알음알이를 구하는 것이다. 소태산은 일 속에서 알음알이를 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첫째는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 일 그 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를 힘쓸 것이요, 셋째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중에 의심나는 것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요”(《대종경》 수행품2)라고 했다.
이는 현실생활에서 모든 일을 할 때에 그 일 그 일에서 이치와 일을 깨치도록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다른 면으로는 “일을 당하기 전에는 미리 연마하고, 일을 당하여서는 잘 취사하고, 일을 지낸 뒤에는 다시 대조하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며, 비록 다른 사람의 일이라도 마음 가운데에 매양 반조하는 공부를 잘 하면, 점점 사물에 능숙하여져서 모든 응용에 걸리고 막히지 아니하리라”(《대종경》 수행품24)고 표현하고 있다. 연마ㆍ취사ㆍ반조의 공부가 실생활에서 사리연구하는 방법이 됨을 알 수 있다. 대소유무의 이치를 깨친다는 것은 원래 갖추어져 있는 반야지의 능력을 발현시키는 것이며, 시비이해의 일을 잘 판단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일을 바른 분석과 빠른 판단으로 생활을 성공하자는 것이다.
③ 작업취사의 방법
작업취사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정기훈련을 통해 작업취사 공부를 하게 하는 방법이다. 정기훈련법에는 상시일기ㆍ주의ㆍ조행 등의 공부법이 있다. 상시일기는 당일의 유무념 처리와 학습상황과 계문의 범과유무를 기재시킴이며, 주의는 사람의 육근을 동작할 때에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을 경우에 따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실행하는 마음을 이름이며, 조행은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행실 가짐을 이름이다. 이 모든 공부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부를 무시로 대조해 실행에 옮김으로써 공부의 실지효과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정전》 정기훈련법) 이 공부법들은 정기훈련 중 작업취사에 해당하는, 실행력을 기르는 공부이다.
둘째 실생활 속에서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공부이다. 작업취사는 수양력과 연구력을 사회생활의 일을 당해서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에 목적이 있다. 소태산은 수양ㆍ연구의 실효과적인 측면으로 작업취사를 말하여, “정신을 수양하여 수양력을 얻었고 사리를 연구하여 연구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실제 일을 작용하는 데 있어 실행을 하지 못하면 수양과 연구가 수포에 돌아갈 뿐이요 실 효과를 얻기가 어렵나니”(《정전》 작업취사의 목적)라고 했다. 곧 작업취사란 수양력과 연구력을 사회생활의 일을 당해서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므로 개인과 사회가 선을 실행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방법인 것이다.
소태산은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정의어든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든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싫어하는 고해는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아 오자는 것이니라”(《정전》 작업취사의 목적)고 했다. 곧 작업취사의 핵심은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사회를 바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불의를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삼십계문을 들 수 있다. 계문을 지키는 것을 통하여 신ㆍ구ㆍ의 삼업을 청정히 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함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정의를 실행하는 방법으로는 솔성요론이 대표적이다. 솔성요론 16조항은 정의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며,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 할 것이요”(《정전》 솔성요론)라는 조항은 작업취사의 이념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작업취사를 넓은 의미로 보면 사은사요를 실천하는 것이다 사은에 보은하고 사요를 실천하는 것은 바로 사회적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삼학수행의 결과]
① 삼학수행은 일원의 진리에 계합하는 방법이다.
소태산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아서 양성하고 사용하는 것이 일원상의 수행”(《정전》 일원상의 수행)이라고 하여, 삼학수행은 신앙과 더불어 일원의 진리에 합일하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소태산은 “우주의 진리를 잡아 인간의 육근 동작에 둘러씌워 활용하는 사람이 곧 천인이요, 성인이요 부처니라”(《대종경》 불지품12) 했고, 또 “천지에 아무리 무궁한 이치가 있고 위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 도를 보아다가 쓰지 아니하면 천지는 한 빈 껍질에 불과할 것”(《대종경》 불지품13)이라 하여, 천지의 이치와 위력을 체 받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② 삼학수행은 부처에 이르는 길이다.
일원상의 수행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소태산은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그 진리를 체 받아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나니…, 이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학식 있고 없는 데에도 관계가 없으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성불함을 얻으리라”(《대종경》 교의품5) 하여 삼학수행을 하고자 하는 것은 마침내 부처의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③ 삼학수행은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길이다.
삼학수행의 결과 얻게 되는 삼대력은 원만한 인격의 세 면모인 동시에 현실생활을 원만하게 살아가게 하는 인품이다. 소태산은 마음의 자주력인 수양력, 지혜의 힘인 연구력, 실행의 힘인 취사력의 삼대력을 갖추어야 원만한 인격자라 본다. 이렇게 삼학공부를 통하여 마음에 자주력을 갖춘 인간은 원만한 인격을 이룰 수 있으며, 생사의 도와 인과의 이치를 터득하여 혜와 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대종경》 교의품19). 또한 소태산은 사람이 수양을 통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의 힘을 길러야 마음을 자유로 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④ 삼학수행은 수행상의 가장 바른 길이다.
소태산은 “우리 공부의 요도의 삼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가장 필요한 법이며, 잠깐도 떠날 수 없는 법”(《대종경》 교의품18)이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쌍전[雙全]
양편이나 또는 두 가지 일이 모두 온전(穩全)함. 소태산대종사는 수도와 생활, 곧 영(靈)과 육(肉)을 쌍전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육신생활 곧 현실생활과 정신생활, 곧 수도생활이 함께 온전할 때 이상적인 삶이 될 수 있다. 소태산은 육신에 관한 의ㆍ식ㆍ주 삼건과 정신에 관한 일심ㆍ알음알이ㆍ실행의 삼건을 합하여 육대강령이라고 부르고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개인생활을 물론이요 인류 전체 문명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있다.
정신생활에 관한 총체적 확대와 심화라고 할 수 있는 “정신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육신생활과 관련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대종경》 교의품31)고 말한다. 여기에는 종교나 수행 전통에서 정신적 고양 위주로 추구하던 편벽된 입장을 개혁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원불교대사전)
영육쌍전[靈肉雙全]
[개요]
영적인 삶 곧 정신의 고양을 추구하는 수도의 삶과 육신의 삶 즉 건강하고 건전한 현실 삶을 함께 온전히 완성해 가는 것을 추구하는 사상. 원불교 교리 표어 중 하나로 《원불교교전》 맨 머리에 실려 있으며, 공부(工夫)와 사업(事業)을 병행하여 복(福)과 혜(慧)를 원만하게 갖추자는 이사병행의 이념과도 상통한다.
[시대 사상적 배경]
석가모니불은 백성의 경제생활을 도와주어야 악행이 감소된다 했고, 맹자(孟子)도 의식(衣食)이 족해야 백성들이 예절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류역사를 통해 종교 전통에서는 현실생활의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었다.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전통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현실 상황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종교도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칼빈주의가 근대 자본주의 형성의 직접적인 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청렴한 생활을 지향하는 청교도정신을 통해 부지런히 일하며 저축하는 정신이 함양됨으로써 자본의 축적이 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그는 경제생활을 더욱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향상시켜 가는데 종교적 이념이 기여할 수 있다는데 주목한 것이다. 이는 중세 서양에서 종교 편향적 가치관으로 인해 현실 삶의 문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과는 대조된다. 한국에서도 조선 후기에 실학을 숭상하는 학자들은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의 도덕적 엄숙주의의 전통을 비판했다.
실학자들은 현실생활을 정체시키는 법률 제도 등 사회규범들을 사실적으로 개선하고 농ㆍ공ㆍ상 등 실업과 의학 및 과학지식과 기술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으며 실증적 고증을 통해 사실 또는 객관적 지식을 확충해가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탐구방법을 추구하는 등 새로운 학풍을 일으켰다.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이용(利用)이 있은 다음에 후생(厚生)이 있다. 즉 경제생활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경제생활을 풍부하게 한 다음에 도덕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여 경제생활을 가볍게 알고 도덕만 강조하는 완고한 유생(儒生)들을 비판했다.
그는 경농법(耕農法)ㆍ양잠법(養蠶法)ㆍ도자기 제조술(陶滋器製造術)ㆍ야금술(冶金術) 등 청나라의 선진기술을 배워오자고 주장했다. 농부의 농사경험과 농서(農書)를 연구하여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유생들이 농업발전에 무관심함을 비판하고 영농방법의 개선, 농기구의 개량, 관개수리시설의 확장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많은 실학자들이 현실생활을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실다운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던 것은 한국역사상 새로운 각성이 시작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실학의 싹은 크게 발흥하지 못했다.
[영육쌍전 개념의 형성]
한국 근대의 격변하는 상황에서 소태산대종사는 미래 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영육쌍전은 그 가운데 하나로서 《정전》 수행편의 ‘영육쌍전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세간생활을 하고 보면 수도인이 아니라 하므로 수도인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 왔다.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불조사(諸佛祖師)가 바로 전해주신 심인(心印)인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三學)으로써 의ㆍ식ㆍ주를 얻고 의ㆍ식ㆍ주 와 삼학으로써 그 진리를 얻어서 영육(靈肉)을 쌍전(雙全)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 이 내용에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문명의 전환점으로 인식하고 과거 수도생활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전통종교의 수행전통에서는 일정한 자력적인 경제활동이 없이 수행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어야할 수도인들이 오히려 개인과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원인이 되었다. 이제 묵은 세상이 새 세상으로 바뀌는 전환의 시기이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소태산은 ‘산 종교’라고 명명하고 있다. 수도와 현실의 삶이 유리되지 않아서 건강한 현실 삶 속에서 수도의 결실이 맺어지고 수도를 통해 얻어진 체험과 지혜가 현실적 삶에서 실현됨으로써 모두가 도움이 되는 생활을 영위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수도와 생활을 아울러 온전하게 하는 삶을 성취하는 것이다.
인간생활에서 정신생활과 육신생활은 서로 떠날 수 없는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을 존중하는 종교인들은 물질생활의 향상을 소홀히 생각하거나 나아가 이것이 수도에 장애가 된다고 보기도 했다. 정신의 숭고성만을 강조하고 물질생활에 대한 이해와 개발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빈곤과 질병으로 인해 발전이 정체되는 뒤떨어진 사회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이 건전하지 못하면 인간성이 파괴되어 온전한 삶이 되기 어렵다. 영육쌍전은 영에 치우친 전통적 종교의 편향적 경향, 또는 육에 치우친 세속주의적 삶을 떠나 영과 육이 건강하게 상보적인 온전한 삶을 지향한다.
[영육쌍전의 의미]
영육쌍전의 개념은 대체로 세 가지의 함의를 지닌다.
① 수행상에서의 정신과 육신의 조화로운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 수행법인 좌선의 방법으로 소태산은 단전주선법을 제시했다.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정전》 좌선법). 단전주선법은 마음에서 참된 본성을 찾고 몸에서 수승화강으로 기운을 조화롭게 하는 선법이다. 단전주는 선 자체를 위해서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긴요한 법이다.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나니, 이 법은 선정(禪定)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양득하는 법”이라고 한다. 이 선법을 오래 수행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없는 심락(心樂)을 누리게 되리라”고 한다. 마음에서 참된 본성을 회복하며 몸의 기운이 조화로워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이 되어 원적무별한 진경에서 심락을 누림을 지향하는 수행이다.
소태산은 불교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당시 한국 불교 수행의 핵심인 간화선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를 보인다.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화두수행 방법에 대한 반성과 기운의 부조화에 대한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단전주선법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상보적으로 작용하며 온전히 완성되는 성취를 기대했다.
동시에 몸의 건실한 유지를 중시했다. 소태산은 자신의 수행과정을 돌아보고 “나의 길 얻지 못할 때의 헛된 고행을 증거하여 몸을 상하는 폐단이 없게 하라”(《대종경》 수행품47)고 부촉한 바 있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면서 종교수행을 하는 것이 대승수행(大乘修行)임을 강조한다. 또한 몸은 수행하고 보은하는 근본이다. 제자 가운데 신(信)을 바치는 뜻으로 손을 끊은 사람을 보고 소태산은 크게 꾸짖고 ‘몸은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 없지 못할 자본’이라고 강조했다. 영육쌍전은 영(靈)과 육(肉)이 조화로운 건강한 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② 수도생활과 현실생활의 원만한 조화이다.
소태산은 불법을 천하의 큰 도라고 하고 불교에 연원을 정했다. 그러나 당시 불법이 현실 삶에서 유리되고 있는 상황을 직시했다. 불법으로 생활하고 불법이 현실생활에서 실현되어 누구나 사람으로서 정당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고 수도만 일삼는 것은 건강한 삶이 될 수 없으며 도리어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종교인이 될 수도 있다. 소태산은 대각 후 첫 행보로 가난하고 각성이 부족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삶의 희망을 찾고 생활의 질서를 세워가는 길을 모색했다.
이에 그들과 함께 저축조합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영적인 구제와 현실생활을 병행하는 활동, 곧 영육쌍전의 새 삶 운동이었다. 이후에도 저축조합 운동에서 시작된 영육쌍전의 노력은 초기 교단사에서 간석지를 개간하고 법인기도를 올리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후 익산총부 건설당시에도 엿 장사와 농축산과 양잠 개간사업을 일으켰고 한약업 등의 사업을 전개하며 주경야독의 전통을 이어갔다. 소태산은 현실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필요한 물질적 요소들을 의ㆍ식ㆍ주로 표현하고 정신의 의식주에 해당하는 수행과 병행할 것을 강조했다. 곧 불법으로 생활하고 생활에서 불법을 실현하여 정신적 성취와 풍요로운 생활의 영위를 조화롭게 이루고자했다.
“육신의 의ㆍ식ㆍ주가 필요하다면 육신 생활을 지배하는 정신에 일심과 알음알이와 실행의 힘은 더 필요할 것이 아닌가. 정신에 이 세 가지 힘이 양성되어야 그에 따라 의ㆍ식ㆍ주가 잘 얻어질 것이요, 이것으로 그 사람의 원만한 인격도 이루어질 것이며, 각자의 마음 근본을 알고 그 마음을 마음대로 쓰게 되어야 의ㆍ식ㆍ주를 얻는 데에도 정당한 도가 실천될 것이며, 생ㆍ로ㆍ병ㆍ사를 해탈하여 영생의 길을 얻고 인과의 이치를 알아 혜복을 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또한 참답고 영원한 의ㆍ식ㆍ주 해결의 길이라, 그러므로 정신의 삼강령이 곧 의ㆍ식ㆍ주 삼건의 근본이 된다 하노라”(《대종경》 교의품19).
영육쌍전의 이념을 주창한다고 하여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나 수도 생활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노력이 현실의 물질생활을 바르게 이끌어감으로서 현실 생활 속에서 진리가 실현될 수 있게 하자는 데에 본뜻이 있다.
③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병진이다.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정신문명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정신문명과 과학문명이 겸전한 참 문명세계를 건설하려는 사상이 영육쌍전 정신의 확대된 의미이다. 물질문명으로 대표되는 모든 현실의 문명은 바른 정신으로 구하고 바른 정신으로 사용될 수 있을 때 그 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며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
그러나 만일 현대와 같이 물질문명에만 치우치고 정신문명을 등한시한다면 마치 철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칼을 들려준 것과 같아서 어느 날 어느 때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를 것이니 이는 육신은 완전하나 정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고 정신문명만 되고 물질문명이 없는 세상은 정신은 완전하나 육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나니 그 하나가 충실하지 못하고 어찌 완전한 세상이라 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내외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비로소 결함 없는 평화 안락한 세계가 될 것 이니라”(《대종경》 교의품31)고 했다. 진리추구와 도덕 정신에 바탕하여 과학 지식과 기술을 생활에 도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어느 한편이 충족되지 않으면 완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또한 도덕정신이나 종교정신에 의한 목표를 갖지 않은 과학기술은 도리어 인류의 행복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정신문명 곧 도학이 건강한 과학문명을 이끌 수 있을 때 참 문명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영육쌍전에 포함된 내용은 세 측면에서 집약해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수도생활, 의식주 등의 현실생활과 종교적 수도 생활의 겸행, 물질문명을 이끄는 과학과 정신문명을 이끄는 도학의 겸전을 통해 이상적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것 등이다. 이는 개인에서부터 사회ㆍ문명에 이르기까지 그 외연이 확충되는 포괄적 이념이라 할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영육쌍전법[靈肉雙全法]
《정전》 제3 수행편 16장의 내용. 영적인 삶 곧 정신의 고양을 추구하는 수도의 삶과 육신의 삶 즉 건강하고 건전한 현실 삶을 함께 온전히 하는 공부법. 소태산대종사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문명의 전환점으로 인식하고 과거 수도생활(修道生活)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찾고자 했다. “과거에는 세간생활을 하고 보면 수도인(修道人)이 아니라 하므로 수도인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 왔다”(《정전》 영육쌍전법)고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소태산은 ‘산 종교’라고 명명하고 있다. 수도와 현실의 삶이 유리되지 않고 수도와 생활을 아울러 온전하게 하는 삶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불조사(諸佛祖師)가 바로 전해주신 심인(心印)인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수양ㆍ연구ㆍ취사의 삼학으로써 의ㆍ식ㆍ주를 얻고 의ㆍ식ㆍ주 와 삼학(三學)으로써 그 진리를 얻어서 영육을 쌍전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정전》 영육쌍전법)고 했다. 영육쌍전법은 영에 치우친 전통적 종교의 편향적 경향, 또는 육에 치우친 세속주의적 삶을 떠나 영과 육이 건강하게 상보적인 온전한 삶을 사는 길로서 미래 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제시한 것이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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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선이 되는 육대강령]
모경희 교무
앞에서는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과 신앙의 방법과 원리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이 장부터는 공부의 요도인 수행법에 관한 말씀이 시작된다.
익산교당 법좌에서 설하신 법문이 원기 21년 6월 회보 25호에 발표되었고 다시 교의품 18장과 19장으로 나누어 정리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육신 보전을 위하여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장소는 필수 요건이다.
어찌 먹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입지 않고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며, 거처할 장소가 없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대종사님께서는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잠깐도 떠날 수 없는 필수적인 법이라 하시며 수양(일심), 연구(알음알이), 취사(실행) 3가지를 말씀하셨다.
이는 정신의 의·식·주(衣食住)라 할 수 있다. 즉 수양은 불교의 정(定)과 같으니, 마음을 정한 즉 심행처가 없어지고 정신이 온전하여지므로 육신의 편안한 집(安宅)과 같다.
연구는 불교의 혜(慧)와 같으니, 지혜가 밝은 즉 알음알이가 많아서 생사고락의 모든 이치를 걸림없이 앎이라 육신의 밥(法食)과 같다.
취사는 불교의 계(戒)와 같으니, 경계한다는 것은 무엇이나 부당한 일은 하지 말고 정당한 일만 함이라 육신의 깨끗한 옷(淨衣)과 같다.
육신과 정신이 합해있는 상태라야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산 사람이라면 육신의 의·식·주와 정신의 의(취사)·식(연구)·주(수양)가 반드시 모두 필요한 요건이 된다.
그러므로 대종사님께서는 육신에 관한 의·식·주와 정신에 관한 일심·알음알이·실행을 합하여 '육대강령'이라고 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라 말씀하셨다.
과거의 수도인들은 정신의 의·식·주는 소중히 여기면서 육신의 의·식·주를 소홀히 하는 풍토가 있었다.
또 오늘날 보통의 사람들은 육신에 관한 3가지 강령은 소중한 줄 알면서 정신에 관한 3가지 강령은 중한 줄을 모른다. 이는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신의 3강령과 육신의 3강령은 모두 중요하며 다만 그 본(本)과 말(末)을 말하자면 정신의 3강령이 근본이 되어서, 정신의 3가지 강령을 잘 공부하면 육신의 3가지 강령이 자연히 따라오는 이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지송학중학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