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正典)/제2 교의편(敎義編)

제1절 자력양성(自力養成)

원재(Aid Perfection) 2014. 8. 16. 23:09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3장 사요 (四要)

제1절 자력양성(自力養成)

1. 자력양성의 강령

자력이 없는 어린이가 되든지, 노혼(老昏)한 늙은이가 되든지, 어찌할 수 없는 병든 이가 되든지 하면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한 바에는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여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힘 미치는 대로는 자력 없는 사람에게 보호를 주자는 것이니라.

2. 과거의 타력 생활 조목

1) 부모·형제·부부·자녀·친척 중에 혹 자기 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의지하여 놀고 살자는 것이며, 또는 의뢰를 구하여도 들어주지 아니하면 동거하자는 것이며, 또는 타인에게 빚을 쓰고 갚지 아니하면 일족(一族)이 전부 그 빚을 갚다가 서로 못 살게 되었음이요,

2)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지하였으며, 또는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이 교육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社交)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자기의 심신이지마는 일동 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니라.

3. 자력자로서 타력자에게 권장할 조목

1) 자력 있는 사람이 부당한 의뢰를 구할 때에는 그 의뢰를 받아주지 아니할 것이요,

2) 부모로서 자녀에게 재산을 분급하여 줄 때에는, 장자나 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그 재산을 받아 유지 못할 사람 외에는 다 같이 분급하여 줄 것이요,

3) 결혼 후 물질적 생활을 각자 자립적으로 할 것이며, 또는 서로 사랑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주로 할 것이요,

4) 기타 모든 일을 경우와 법에 따라 처리하되 과거와 같이 남녀를 차별할 것이 아니라 일에 따라 대우하여 줄 것이니라.

4. 자력 양성의 조목

1) 남녀를 물론하고 어리고 늙고 병들고 하여 어찌 할 수 없는 의뢰면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한 바에는 과거와 같이 의뢰 생활을 하지 아니할 것이요,

2) 여자도 인류 사회에 활동할 만한 교육을 남자와 같이 받을 것이요,

3) 남녀가 다 같이 직업에 근실하여 생활에 자유를 얻을 것이며, 가정이나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동등하게 이행할 것이요,

4) 차자도 부모의 생전 사후를 과거 장자의 예로써 받들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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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양성 (自力養成)

사요의 하나. 정신의 자주력, 육체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을 길러가는 수행.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높다고 한 서가모니불의 이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나 배타적 독선이나 자만이나 아만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이 우주에 홀로 우뚝 서서 주체적·창조적 삶을 살아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삶은 자기 스스로의 선택이요 결정이며, 자기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야 하고,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삶이 아닌 것이며, 따라서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도 자기 스스로가 져야 하는 것이다. 자력양성은 사요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자력양성을 잘 하는 사람은 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도 능히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민주화가 발전해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인권의 문제는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인권평등·인권존중이 이룩된 사회일수록 잘사는 사회, 민주화된 사회, 발전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인권이 무시당하거나 인권이 탄압받는 사회는 비민주사회요 후진사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권 평등·인권 존중의 문제는 정치적·제도적·경제적 장치 만으로써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권에는 정치적 인권과 도덕적 인권의 두 가지가 있다. 정치적 인권은 정치적으로 민주화 된 사회라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 인권은 민주화·산업화 된 사회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 개개인의 도덕성이 회복되고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적 인권보다 도덕적 인권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인데도 정치적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도덕적 인권이란 개개인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인권이 보장된 사회라 할지라도 권력자나 지도층이 특권의식을 갖고 있거나, 부유층이 빈민층을 멸시하고 사치풍조나 과소비 현상이 있다면 도덕적 인권, 곧 진정한 인권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범죄 현상이 많은 사회는 결코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다. 몇 명의 자녀를 둔 부모가 똑 같이 가르치고 똑 같이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할지라도 여러 해가 지나고 나면 잘 사는 자녀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녀도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가족회의를 할 때에 발언권이 서로 달라진다. 곧 인권 차별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있어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영향력의 차이가 바로 이러한 이치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력양성의 문제는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제일의 기본조건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육체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 정신의 자주력이 없으면 남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약자가 되거나 의뢰생활이나 빚지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남끼리는 말할 것도 없고 부부간이나 형제 자매간이라 할지라도 자력이 있어야만 인권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국가의 경우에 있어서도 전통문화·고유문화가 없는 나라는 문화적·정신적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외래문화를 주체성 없이 받아 들이면 남의 문화를 흉내내거나 꽃꽂이 문화가 범람하게 되고 심지어 문화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자립경제를 갖지못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예속국가가 되기 쉽고, 자주국방이 되지않는 나라는 주권을 상실하기 쉬운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인권 평등 문제도 제도적 장치 보다는 자력양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인류 사회는 오랫동안 남녀 차별 현상이 계속되어 왔다. 오늘날 남녀 평등이 많이 실현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제도적인 평등에 앞서 여성 스스로의 자력양성에 힘 입은 것이 더 크다 할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의 격차현상 해소도 역시 선진국·강대국의 도덕성 회복과 아울러 후진국·약소국의 자력양성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고뇌·고독·갈등을 갖고 있다. 고뇌·고독을 극복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나 경제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신적 깨달음, 곧 인생관·세계관이 확립되어야 하고 사명감이 투철하며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다. 인생은 수없이 많은 생을 윤회 전생하게 된다. 거기에는 인간보응의 이치가 있다. 종교적 수행으로 인과보응의 이치를 깨치고 복혜증진과 선연 작복의 삶이라야 영원한 세월에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세생생 악도에 윤회하지 않고 상극 악연을 맺지않게 되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모든 불평등은 제도나 습속 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자력을 양성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강대국이요 경제적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자력이 없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도 차별과 멸시를 받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세계 건설은 정치적·경제적인 제도 못지않게 도덕성의 회복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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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터치 16} 자력양성, 평등세상의 첫걸음

사요의 첫 번째 조목인 '자력양성'은 자력을 양성하여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무자력자를 보호하자는 것으로, 동등한 권리 확보를 통한 평등세상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우선은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과거의 타력 생활 조목 1) 예비교역자 시절, 스승님이나 동지들의 따뜻한 격려보다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정진하는 동지들의 모습이 나에게 더 큰 힘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를 안타깝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동지들의 모습이었다.

또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일동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과거의 타력 생활 조목 2)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은 이메일 끝 부분에,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소중한 나의 인생이 남의 손에 좌우될 수 있다'는 짧은 문장을 항상 적어 보낸다. 자력을 양성하지 못하면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예전에 독거노인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한번은 내가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살아서 뭐해. 빨리 죽어야지"하며 흐느끼신다. 이처럼 내 능력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의 고충을 보거나 듣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직무유기'의 심경마저도 갖게 하는, 내게는 또 다른 의미의 고충이다. 무자력자 보호를 위해서는 이웃의 어려움에 대해 무심하지 않을 만한 심경(자비)과 함께, 무력하지 않을 만한 능력도 갖추어야 하겠다.

자력자로서 타력자에게 권장할 조목 1조인 '자력있는 사람이 부당한 의뢰를 구할 때에는 그 의뢰를 받아주지 아니할 것이요'를 근거로 '멀쩡하게 생긴' 걸인에 대한 적선을 만류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자력양성 vs 보시'의 문제는 장발장으로 상징되는 '정의 vs 자비'를 연상시킬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들이 자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겠지만, 당장 빵이 급한 그들에게 적선을 하는 것이 교법을 크게 상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돕다보면, 수입이 전혀 없으면서도 비누 한 장도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고집 센 분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분들을 두고 남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좁은 속을 핀잔하기도 하고, 가난이 만들어 놓은 비뚤어진 심사를 탓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집은 얼마간의 물질적 수혜에 비하여 자신의 처지를 개척해 나가는 데 대개의 경우 훨씬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자력을 양성하는 일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하는 길이다. 자력양성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해가 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인권(평등)'은 대 사회운동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자력양성은 원불교 대 사회운동의 훌륭한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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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경축사 / 자력양성의 길

 오늘 대각개교절은 대종사님께서 구원겁래로 큰 원력을 세우시고 이 세상에 탄생하신 날이요, 온갖 고생 끝에 대각을 이루신 날이며,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시고자 새 회상의 문을 여신 날이요, 우리 봉법불자의 공동생일로 정해주신 날이니, 새 천지 새 역사의 비롯이 되고 근원이 되는 명절로서, 우리 모든 동지와 전 인류는 물론 시방 세계 일체 생령이 다 함께 가슴 깊이 경축하는 날입니다.

더욱이 금년은 반백년 성업의 완성을 목전에 둔 경절이니, 개인이나 교단이나 다 같이 각 분야에서 충실한 힘을 길러 보람찬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정비 점검하여,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며 인류의 행복과 세계평화를 생산하는 역사적인 사명완수에 誠力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람마다 바라는 참다운 행복과 자유는 오직 자력에 있고, 세상이 요구하는 참다운 질서와 평화 또한 각자 각자가 충실한 자력을 세워 먼저 인권을 두루 골라져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의 생장은 자력과 타력이 아울러 이루어지되, 항상 자력이 주장이 되어 스스로 생을 보존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이웃을 돕는 것이 천리의 당연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자력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길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 재가· 출가의 모든 동지는 이에 깊이 명심하여 개인, 가정, 국가, 교단이 다 같이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주력과 제 힘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활력과 제 힘으로 설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자립력을 양성하여, 사은에 보답하는 동시에 나아가 정신, 육신 물질로 언제나 남을 도와주고 살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데 앞장 설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이에 자력양성의 도를 대강 밝혀 뜻 깊은 이 날을 기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1. 배워 아는 것과 알아 실천하는 것은 바로 자력이 된다.

2. 자력은 실력이요 실력은 자산이다.

3. 자력은 생명이요 원기다.

4. 나의 참된 자력은 곧 천지의 힘이 된다.

5. 내가 나를 먼저 헐고 망친 뒤에 남이 나를 헐고 망하게 한다.

6. 참 나는 부처요 하늘이요 여래요 상제요 조물주인 것이다.

7. 의뢰심은 나의 寶具를 死藏한다.

8.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미루는 것은 천리를 어기는 것이다.

9. 천불이 가르쳐주시려 해도 제 그릇 한정밖에는 더 담지 못할 것이니 먼저 제 그릇을 넓힐 것이다.

10. 나의 마음을 먼저 통일한 후에 남의 마음을 통일시킬 수 있고, 나의 마음을 밝힌 후에 남의 마음을 밝힐 수 있고, 나의 마음을 밝힐 수 있고, 나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11. 자ㆍ타력을 병진할 줄 알면 타력도 곧 자력이 될 것이다.

원기 55년 3월 26일 종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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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33> / 자력양성<박제권 ②>

의뢰병, 게으른 병, 노동 천시병 없애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 내가 사는 각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대종사님께서 대도를 증득하신 후 한국사회의 병점을 진맥하여 내놓으신 화제의 하나가 곧 자력양성이다.

1. 병점을 들자면

첫째, 의지하는 병이다.

여자는 삼종지례(三從之禮)로써 제도적으로 부모· 남편· 자식에게 의지하게 되었으며 가정으로써는 외가 덕· 처가 덕· 사돈 덕 등을 보려는 의지하는 병이 있었고 국가적으로는 사대주의 사상으로써 힘이 있고 큰 나라에 의지하여 자주적인 정신을 상실한 병이다.

둘째는 게으른 병이다.

이조 오백년 동안 문약의 폐를 입어 글하는 양반들은 보리멍석이 떠내려가도 모르는 십지부동의 안일 병에 걸리어 노동을 천시하여 놀고먹는 폐풍 즉 무의도식을 하여 무능하고 비활동적이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셋째는 예산이 없는 생활이다.

계획성이 없고 수지대조가 없어서 저축할 줄을 모르고 살았으니 결국 이것은 한국 사회를 좀먹는 병으로 힘이 쌓이지 않는 생활에서 사상의 빈곤, 경제의 빈곤을 초래하여 후진국을 면치 못하였다.

2. 자력이란?

정신에 있어서는 자주력을 얻음이요, 육체에 있어서는 자활력을 갖춤이요, 경제에 있어서는 자립력을 세우는 것이다.

① 정신의 자주력이란?

진리 오득의 기점을 바로 파악하여 근원에 뿌리한 투철한 신앙심으로 권태를 모르는 신심, 시비를 초월한 신심, 생사를 불구하는 신심이 되어 사업에 실패가 되고,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며,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고, 친한 사람과 슬픈 이별을 하게 되며 애먹이는 악연이 끊어지지 않고 재산이 일시에 상실되는 역경과 고경을 당할지라도 무서울 것이 없이 극복하여 나가며, 오욕의 욕정이 치성하는 순경의 유혹을 이겨나가며, 상실하고 번민하고 고민하는 공경(空境)을 뿌리치고, 정신이 철석 같이 견고하여 요지부동의 정력을 갖고, 천만 사리를 분석하는데 걸림 없는 지혜력을 얻어 자성의 혜광이 언제나 발하여 진실한 마음, 도를 즐기는 환희의 마음, 증애가 없는 청정한 마음, 지선의 마음이 순경과 역경과 공경에 매각(昧覺)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일이관지하여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수립하여, 사상이 풍요하고 생활철학이 명료하여, 확고부동의 생활신조가 서게 되어,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의 대 해탈을 얻는 경지이다.

② 육신의 자활력이란?

정적인 데 치우쳐 무능력자가 되지 말고 왕성한 활동력 있는 실천인이 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물이 없다는 소리가 높다. 성실하고 유능한 인물, 양심적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책임감이 강하고 공신력이 강한 사람, 사보다 공을 위하고 개인의 이보다 전체의 의를 위하는 사람,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의 천직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옳은 일이 죽기로써 행하고 그른 일은 죽기로써 하지 않는 용감한 실천력으로부터 내가 나를 이기고 나쁜 습관을 뜯어고치며 기질변화가 되어 행동에 자유를 얻는 능력자가 되는 동시에 창조의 활동, 보은봉사의 활동, 발명의 활동, 개척의 활동, 생산의 활동으로 노는 땅을 없애고 노는 사람을 없애고 노는 시간을 없애는 곳에 유능한 인재, 쓸모없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어 육신에 자활력을 갖추게 된다.

③ 경제의 자립력이란?

땀의 투자와 노력의 자본으로 머리와 손과 정열과 의지가 빈곤 투쟁에 동원되고 빈곤추방에 집결하여, 개인의 경제를 서게 하고 나라에 부강을 오게 하고 번영을 쟁취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검소, 근면, 절약으로 사치와 향락을 삼가고 처지에 안분하는 생활에서, 저축에 힘쓰고 부의 힘을 갖추어 사회보장에 도움을 주고, 국가와 교세발전의 혜시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의 자립력이다.

3. 양성하자

부처님 말씀에 구유여래지혜덕상(俱有如來智慧德相)이라고 누구나 본래 다 갊아 가지고 있는 지혜와 덕상을 기르고 세우고 갖추자는 것이다. 이 세상의 생령과 만물의 일체는 다 힘의 소산이라 힘은 기를수록 쌓이는 것이라 노력하고 적공을 쌓고 정진함으로써 자성을 회복하여 사회와 나, 국가와 나,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자각하여 대의를 오득하여 정력· 혜력· 계력의 삼대력을 갖추어 인간을 회복하는 동시에, 우주일가 사생일신의 뜨거운 대자대비심이 울어나서 주인정신으로써, 제도의 의무를 자각하면 의세의 실적을 완수하여 구세성자의 주권을 회복시키는 길이 곧 양성이다.

4. 결론

나의 일생은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스승이나, 부처님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소중한 삶이기에 남에게 맡기지 말고, 의지하지 말고 기대지 말아서 의뢰하는 병, 게으른 병, 노동천시의 병을 없애고, 잘 살아야겠다는 의욕과 구도에 대한 욕망과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결의로써, 거짓과 허위와 분열과 시기와 이기심 아만심을 뜯어고쳐 성격을 개조하고 자아를 혁신하여 인격혁명을 오게 하여 새 민족, 새 국가, 새 세계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리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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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공부<71>49 / 자력양성의 강령

 

도리에 근거해 의무를 실행하는것

자력양성 이란 정신, 육신, 물질간에 나스스로 살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는 것이니 남, 녀, 노, 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문제이다. 우리 자신이 살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곧 사회생활의 제1차적인 길이다. 그동안 누대에 걸쳐 의뢰의 병에 걸려왔던 폐단을 발견한 소태산 대종사가 말씀한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건전한 사회 명랑한 사회로 가는 기본사상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회에 있어 인간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길로는 다름이아닌 이 자력양성의 길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는 어른들을 찾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의뢰하는 것이 상례이며 또 한국의 여자들은 젊어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뢰하여온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같은 현실을 먼저 바르게 간파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교전에 보면 과거 타력생활을 해온 조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로, 부모 형제 부부 자녀 친척 중에 자기 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놀고 살자는 풍습이며, 또는 의뢰를 구하여도 들어주지 아니하면 동거하려드는 풍을 갖게 되었으며, 또는 타인에게 빛을 줬다가 갚지못하면 그 일족에게서 빚을 받다가 서로 못다할 일을 당하게 되는 풍이 그것이다.

둘째로,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뢰하였으며, 또는 관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이 교육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자기 심신이지만 일동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였음이다.

이상의 여러악풍이 오늘날에는 법으로 해소된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은 어딘가 아직도 의뢰하는 풍토가 마침내 비리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우리 주변에 비리, 불법의 뿌리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활동하지아니하고 타력에만 의뢰하려는 의식구조에서 낳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점에서 첫째, 우리에 있어서 자력양성은 먼저 자기가 살아나가는 기본자세로 먼저 자기를 지켜나가야할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의무란 내가 인간으로서 응당 실천해야할 나의 도리요, 책임이란 자신이 맡아서 해야할 임무를 이름이다.

둘째, 우리는 나의 실천으로 능히 밥값을 하고사는 인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능히 실천해야할 과제를 갖자는 것으로 능히 인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고 생각된다. 만약 자력으로 살아가야할 자기 실천의 분야에 부득이 타력에 의뢰하지 않을 수없게 도리때는 그와 상응하는 일을 하여 결국 심신간에 자력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옛날 스님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은 먹지도 않겠다는 말씀을 했듯이 자기가 세상에 나와서 자기가 책임지고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연한 의미가 담겨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무엇보다 자력생활은 곧 자기의 정신, 육신, 물질간에 적자생활을 벗어나 흑자생활을 하자는 것이며, 또 자력생활은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 남을 위해 나의 보람을 다하여 남에게 필요한 자기의 교류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점에서 걸인은 걸인에 맞게 보시하고 또자력있는 사람에게 주는 보시는 그사람에게 맞게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남을 위한 보시도 자기의 자력여하에 따라서 그공이 결정되는 것을 알수있다.

이런 점에서 자력의 양성은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수있다.

<교무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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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있는 정전공부 2} 삶을 편하고 복되게 삽시다

스스로 힘을 기르고 능력 최대한 신장시키자.

오늘은 원불교교리 사요중 자력양성(自力養成)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자력양성이란? 스스로의 힘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자력의 한도 내에서 가능한 것이고 자신의 삶을 오롯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력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고, 무자력한 타인을 보호는 할지언정 남에게 의뢰하지 않는 생활은 바로 낙원세계를 건설하는 근본이요 인생을 편안하고 복되게 가꾸는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신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단계로 성장했을 때에는 자신이 해야할 일은 자신이 책임지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의뢰심이 많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이 도리어 무자력한 후손을 길러내는 역기능을 낳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과잉보호가 결국 무자력한 자녀를 길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 아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일까?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심어줄 것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 하는 책임지는 정신를 길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일 큰 자산이요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힘을 기르고 능력 최대한 신장시키자

자력양성은 또한 남녀노소 선악귀천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력을 길러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은 물론 무자력한 타인을 보호하는 단계까지 자력을 길러나가야 참으로 자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산종사는 자력을 세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이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추어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의 자주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신의 자주력이 무장되어 있으면 다른 자력도 아울러 길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력을 길러 편하고 복되게 살며 남에게 은혜 베푸는 삶을 살자는 것이 자력양성의 정신입니다.

<교정원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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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13} 자력양성 /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때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먼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마음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마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아는 공부가 사리연구 공부이다.마음을 알고 난 후에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힘을 기르는 공부가 정신수양 공부이며, 육근을 통하여 마음을 사용하는 공부가 작업취사 공부이다.

다음은 내 육신의 건강은 내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하기 위하여 육체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육체가 영양이 필요하다면 먹기 싫어도 먹어 주어야 하고, 입맛에 맞아 아무리 먹고 싶어도 육체에서 이제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먹지 않는 것이 육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면 하는 만큼 되는 것이 진리이다.

80세에도 근육을 단련하면 힘이 쌓이는 것이다. 적당한 영양 섭취와 적당한 운동, 여기에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건강의 필수 조건이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식주를 스스로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경제의 자력을 가져야 자력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나 스스로 해결하자. 정신의 자력은 삼학병진 수행으로, 육신의 자력은 적당한 운동과 식생활로, 생활의 자력은 나에게 알맞은 직업을 가지고 근검과 저축으로 자력을 양성하여야 인권이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당한 의뢰를 하는 자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의뢰를 받아 주지 말고 자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도움을 주더라도 일시적 지원보다는 스스로 배워 자력을 얻도록 근본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마음공부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마음공부의 원리를 알려주어 스스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육신의 건강도 운동을 대신해 줄 수도 식사를 대신해 줄 수도 없으므로 운동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운동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자력 양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경제의 자력을 얻는 데에도 일시적인 경제의 지원보다는 기술을 배워 스스로 경제의 자력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나는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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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