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Aid Perfection) 2015. 1. 6. 21:44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2부 법어(法語)

5 원리편(原理篇) 21

말씀하시기를 [불경의 정수는 공()이요 대종사께서도 공원정(空圓正)을 말씀하시었나니, 그대들은 공의 원리를 알고 공의 진리를 체받아 항상 청정한 마음을 닦아 기르며 무사(無私)한 심념을 닦아 행하라.]

★★★★★★★★★★

[: 빌 공]

[개요]

싼스끄리뜨 수냐(śūnya)의 역어. ()공적(空寂)공정(空淨)의 뜻이다.

[의미의 형성 및 전개]

우주 만물은 인연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생겨나서 곧 없어지고 마는 것이므로 영원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며, ()에 대한 비유(非有)로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다. 그러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체(自體)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 또는 허무와는 그 의미가 다른 실상(實相)의 의미이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 텅 비어 있는 것의 의미이지만 불교에서 그런 의미로 공을 사용하는 예는 드물다. 원시불교에서는 모든 개체적 존재의 실체가 공()하다는 의미에서 연기(緣起)의 원리가 성립되었는데 의미적으로 보면 연기와 공의 원리는 상통한다.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말한다. 아공은 자아(自我)의 실체를 공이라 한 것이요, 법공은 제법(諸法)이 다만 인연(因緣)에 의하여 존재할 뿐 그 항존 불변하는 자성(自性)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아공법공의 이공설(二空說)에 대하여 아공법공구공(俱空)의 삼공설(三空說) 등이 있다. 특히 이 공사상을 강조한 학파는 용수(龍樹)를 위시한 중관파(中觀派)이다.

중론관사제품(觀四諦品)에 의하면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나는 곧 무()라고 하고 또한 가명(仮名)이라고 하며 중도의 뜻이라고 하느니라. 인연으로 생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니라. 그러므로 일체의 사물은 공 아님이 없나니라(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囚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고 하여 인연에 의하여 생겨진 모든 존재는 그 실체가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일체 법은 공하지 아니함이 없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는 낳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고 하여 일체 상대적 상황을 초월한 경지를 공이라 하고, 또는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色卽是空 空卽是色)’ 하여 제법실상의 의미로도 본다. 유식계(唯識系)에서는 유와 공을 초월해서 아우른 중도(中道)의 의미로도 보며, 천태와 화엄사상에서는 제법실상의 의미로 보며, 선종에서는 주체적 실천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의미지운다.

[원불교에서의 의미]

원불교에서는 일원상 진리의 한 측면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공()으로 표현할 때, 유무초월한 자리를 보는 것,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자리를 아는 것, 모든 일에 무념 행을 하는 것을 공이라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게송(偈頌)’에서 유()와 무(), 곧 변()과 불변(不變)을 초월하면서 둘이 아닌 경지를 구공(俱空)이라 표현하여 불이문(不二門)을 공이라 했으며,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 곧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心行處)가 끊어진 경지이면서 유무초월의 생사문(生死門), 곧 유와 무를 초월하고 불변과 변화의 작용을 나타낼 수 있는 경지를 공이라 표현했다.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고 생멸거래(生滅去來)에 변함이 없고 선악업보(善惡業報)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경지를 공이라 의미지었다. 또한 일원(一圓)의 진리를 요약하여 공과 원과 정이라 표현하고, 양성(養性)에 있어서는 유무초월한 자리를 관()하는 것이 공이며, 견성(見性)에 있어서는 일원의 진리가 철저하여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아는 것이 공이며, 솔성(率性)에 있어서는 모든 일에 무념행(無念行)을 하는 것이 공이라 했다(대종경교의품7). 정산종사는 일원상의 원리는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말로써 가히 이르지 못하며 사량으로써 가히 계교하지 못하며 명상(名相)으로써 가히 형용하지 못할지라 이는 곧 일원의 진공체(眞空體)”(정산종사법어원리편2)라 했다.(원불교대사전)

공원정[空圓正]

[개요]

소태산대종사가 일원상(一圓相)의 진리(眞理)를 세 가지 측면(側面)으로 요약하여 말한 것으로, 대종경교의품 7장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공정은 각각 양성(養性)견성(見性)솔성(率性)에 배대되며, 삼학의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속성이다.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적 구조로서의 공]

원불교에서는 소태산의 대각에 의해 드러난 궁극적 진리, 곧 법신불 일원상을 본존으로 모시고,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신앙과 수행의 양문을 통한 자타력 병진의 종교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타력신앙과 자력신앙, 또는 대타적 신앙과 즉자적 수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전교리도에서는 이러한 신앙과 수행의 양문을 각각 인과보응의 신앙문진공묘유의 수행문이라 명시하고 있는 바, 그 구체적 내용을 중심으로 표현하면 각각 법신불 사은신앙자성불 삼대력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원불교의 종교적 실천의 양대 관문인 법신불 사은신앙과 자성불 삼대력 수행은, 다름 아닌 법신불 일원상의 본질적 성격 내지 진리적 구조를 진공묘유의 양면관, 또는 의 삼속성으로 파악한 바탕 위에서 전개된 것이다. 물론 궁극적 진리로서의 법신불 일원상 그 자체는 언어도단이요 심행처멸(心行處滅)의 경지로서, 상대적 개념이나 일상적 인식작용의 한계를 넘어선 초논리적이고 초경험적인 차원에 속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우리들 인간 차원에서의 이해작업 내지 논리전개의 시도가 없을 수 없는 바, 인류정신사 상에는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서 다양한 진리관 내지 형이상학적 논리전개가 시도되어 왔다.

원불교 또한 궁극적 진리로서의 법신불 일원에 대한 의미내용의 분석작업으로서, 소태산의 대각 제일성에 나오는 불생불멸인과보응 외에 변불변, 유상(有常)무상(無相), 구공구족, 진공묘유, 진공묘유인과, 진공묘유조화, 공적(空寂)영지(靈知), , 원만구족지공무사, , , 정신물질, ()(), , , ()(), , , ()()()(), 천지팔도 등 갖가지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 각 설명법은 그 나름의 내용적 특성과 경향성을 지니고 있어 각각에 대한 내용분석과 함께 종합수렴작업이 요청되나, 이 가운데 우선적으로 주목해야할 것은 진공묘유의 양면관과 공정의 삼속성관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불교를 비롯한 동양종교사상의 전통적 논리를 계승한 보편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특히 무엇보다도 여타의 다양한 진리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공묘유와 공정에 관한 개념 각각의 의미와 그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해석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법신불 일원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세계관과 종교신앙관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근본 진리관으로서의 진공묘유 내지 공정의 의미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고려할 사항은 본질적 진리와 현상적 진리, 곧 본체(실재)와 현상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원불교에서는 양자의 관계를 한편으로는 상즉의 논리에 입각하여 하나로 보는 관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본원의 논리에 입각하여 양자를 구별하여 보는 관점을 두루 열어 놓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동양사상의 전통적 논리의 하나인 일이이(一而二)의 양면관을 계승한 것이라 본다. 이러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진속이제설(眞俗二諦說)이나 이사무애설(理事無礙說) 등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며, 특히 진공묘유와 공정의 개념적 원류라 볼 수 있는 대승기신론진생이문(眞生二門)’, ‘여실공(如實空)여실불공(如實不空)’, ‘체상용삼대(體相用三大)’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의 개념과 종교적 의미]

진공묘유와 공

법신불 일원의 삼속성으로서의 공정 개념과 그 종교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기초 작업으로서 진공묘유의 양면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 양자는 서로 별개의 진리관이 아니라, 하나의 일원상 진리에 대한 대체적 또는 구체적 설명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원상진리에 대한 진공묘유의 양면관을 보다 세분화하여 확장한 것이 바로 공정의 삼면관이라 볼 수 있다. 원불교 진리관의 중요 항목을 이루고 있는 천지팔도(天地八道)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진공묘유와 공정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나, 대체로 공()은 진공에, ()과 정()은 묘유에 배대시킬 수 있다.

정전일원상의 진리에 의하여 진공과 묘유의 양면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일원상진리를 본체론적 입장에서 본 진공의 체성그 자리는 대소유무와 생사변화와 선악길흉 등 일체의 상대적 차별현상을 초월한 진공의 경지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모든 차별현상의 근본 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한 절대의 경지는 상대적 언어로 개념화하거나 표현할 수 없으며 일상적 사유로는 미칠 수 없는 자리로서, 오직 일체의 언어와 사유가 끊어진 입정의 체험, 곧 무분별지의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서만 체득될 수 있다.

일원상진리를 현상론적 입장에서 본 묘유의 작용이란, 앞에서 살펴본 일원의 체성이 일체의 상대적 차별을 넘어선 무상의 진공체이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은 물리적 진공이나 무기공(無記空)과 같은 악취공(惡趣空)이 아니라, 공적영지의 광명과 묘유의 조화작용을 포함한 신묘한 공()이라 본다. 공적한 가운데 영지가 내함(內咸)되어 있어 묘유의 조화작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체의 차별 현상은 바로 이 법신불 일원의 묘유작용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러한 묘유의 조화작용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영원하여 우주만유를 통해 무시광겁토록 은현자재한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이와 같이 일원상 진리를 진공의 체성과 묘유의 작용이라는 양면으로 나누어 설명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설명의 편의상 하나의 진리에 대한 양면적 관찰에 불과하다. 그들의 관계는 선후나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체와 용이 상즉하여 둘이 아닌 상즉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소태산은 일원상에 대한 게송에서 ()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고 하여, 진공의 체성(俱空)과 묘유의 작용(具足)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이상과 같은 법신불 일원상에 대한 진공묘유의 양면관과 함께, 이를 보다 구체화하여 의 삼속성관을 강조한다. 이는 바로 우리의 본성이기도 한 법신불 일원상 그 자체에 갖추어 있는 삼대 속성으로서, 원불교의 수행강령으로 중시되고 있는 양성(정신수양), 견성(사리연구), 솔성(작업취사) 등의 삼학수행은 바로 이 일원상의 삼대 속성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 공부법이다. 대종경교의품 7장에는 공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원의 진리를 요약하여 말하자면 곧 공과 원과 정이니, 양성에 있어서는 유무 초월한 자리를 관하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거래 없는 것이 원이요,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정이며, 견성에 있어서는 일원의 진리가 철저하여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아는 것이 공이요, 지량(知量)이 광대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 원이요, 아는 것이 적실하여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정이며, 솔성에 있어서는 모든 일에 무념행을 하는 것이 공이요, 모든 일에 무착행을 하는 것이 원이요, 모든 일에 중도행을 하는 것이 정이니라.”

곧 일원의 진리를 공정의 삼대 속성으로 파악하여 양성견성솔성의 삼학공부 각각에 그 진리성을 표준으로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보다 단순화하여 정리하면 공정 삼대 속성은 바로 우리들 자성에 본래 갖추어 있는 삼대력, 공의 해탈력원의 대각력정의 중정력자성불삼대력(自性佛三大力)’이라 할 수 있다(한정석, 원불교의 신앙론). 이렇게 볼 때 공정은 일원상 진리의 요약인 동시에 모든 진리적 행위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상의 자료에 바탕하여 공정 각각의 개념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공은 천지미분(天地未分) 및 일념미생(一念未生) 이전의 자리로서, 그것은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유무초월의 경지이며,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경지이며, 모든 일에 있어 응용무념한 경지이다. 원은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일체의 집착과 탐착이 없으되 원만구족하여 조금의 흠집도 넘침도 없는 경지로서, 지혜광명이 지극히 밝고 광대무량하여 걸리고 막힘이 없는 자리이다. 정은 모든 일에 있어 사사(私邪)에 흐르지 않고, 한편에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아 공명정대하고, 이치와 사물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며, 과불급이 없는 중도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공은 진공(眞空)의 의미와 거의 같은 내용으로 이해되며, ‘게송에 표명된 구공과도 같은 개념이다. 이에 비해 원과 정은 묘유의 의미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분화한 것으로서, 원만구족과 지공무사는 바로 이러한 의미내용을 가장 적실히 표현한 것이다. ‘게송에서는 이 원과 정을 묘유 개념 하나로 통합하여 구족이라 표현하고 있다.

정의 종교적 의미

이상에서 살펴본 일원상 진리의 논리 구조로서의 진공묘유와 공정은 원불교의 신앙과 수행 제반에 걸쳐 불가결의 요소이다. 특히 교리도에 명시된 인과보응의 신앙문진공묘유의 수행문은 바로 이들 진리관을 바탕으로 전개된 것으로서, 그 구체내용을 살펴보면 법신불 사은신앙은 주로 진공묘유의 논리에 근거하여 전개된 것이라면, 이에 비해 자성불 삼대력 수행은 진공묘유와 공정의 논리가 두루 적용된다. 이처럼 진공묘유의 양면관은 신앙과 수행 양문의 설명에 두루 활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정 삼속성의 진리관은 수행문의 설명에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만, 신앙문에서는 그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정의 진리관이야말로 원불교의 어느 교리체계보다도 신앙적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를 안고 있다. 정의 개념과 그 종교적 의미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정산종사법어원리편 3장에 제시된 진공묘유인과3구분법, 또는 대산종사의 정전대의에 설명된 정의 법화 삼신불에의 배대등이 귀중한 참고자료가 된다.

대승기신론은 일심(一心)을 중심으로 진여생멸의 이문을 열고, 그에 바탕하여 일심에 본래 갖추어 있는 용 삼대’, 곧 체성(體性)과 성덕(性德)과 덕용(德用)이 광대무량하고 불가사의하여 다함이 없음을 역설함으로써 그 종교적 의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진공묘유와 공정은 상호 별개의 속성이 아니라, 다만 법신불 일원의 진리적 구조에 대한 설명상의 차이에 불과하며, 양자 모두 신앙과 수행의 양면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신불 사은신앙의 설명에 있어서도 진공묘유의 진리관을 중심으로 한 의미해석도 중요하나, 정의 진리관에 의한 논리 전개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원불교에서는 법신불일원 그 자체를 무한 절대의 은혜불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법신불 사은에는 무량 덕상으로서의 절대은혜를 비롯한 체용의 삼대, 곧 공정의 삼대력이 원융 무애하게 구비되어 있다. 한편 수행문으로서의 진공묘유의 수행문에 관한 설명에 있어서도, 정 삼속성의 보다 적극적인 활용은 물론, 특히 내재적 진리로서의 자성불에는 체용의 삼대와 같은 광대무량하고 불가사의하여 우리의 일상적 차원을 넘어선 절대무한의 경지라는 대()의 의미가 내함되어 있다는 뜻에서, 자성불 삼대력신앙이라 강조해 부른다.

이처럼 법신불 일원에 대한 공정의 삼속성관은 진공묘유의 양면관과 함께 법신불 사은신앙과 자성불 삼대력수행의 두 문에 있어 중심논리를 이룰 뿐만 아니라, 이 밖에도 심고와 기도참회불공불신관윤리관낙원관천도론사회정의론 등 원불교의 종교적 영역 전반에 걸쳐 불가결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

. 사전적 의미

연기[緣起]

(인연 연, 일어날 기)

<한자사전>

사물(事物)의 유래(由來)나 원인(原因) 길흉(吉凶)의 조짐(兆朕) 우주(宇宙) 만유(萬有)가 서로 인연(因緣)이 되어 생김 절 따위를 짓기까지의 유래(由來)나 부처, 고승(高僧)들의 영험(靈驗)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말

<국어사전>

[명사] <불교>

1. 모든 현상이 생기(生起) 소멸 하는 법칙. 이에 따르면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과 조건인 연()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비슷한 말] 기연(起緣).

2. 중생의 지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법하는 일.

3. 절을 짓게 된 유래나 부처고승의 염력에 대한 설화.

. 원불교대사전

연기[緣起]

(인연 연, 일어날 기)

[개요]

모든 현상이 생겨나고 소멸 하는 법칙을 말하는 불교용어. 현상의 사물인 유위(有爲)는 모두 원인(: hetu)과 조건(: pratyaya)의 상호관계 속에서 성립된다고 보는 관점.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싼스끄리뜨 쁘라띠뜨야 삼우뜨빠다(pratītya-samutpāda)의 번역어이다.

모든 현상은 상호 관계 속에서 성립되므로, 독립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원인과 조건이 서로 작용하여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상이다. 불교 기본교리인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등 일체법(一切法)의 분류,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 모두가 연기법을 다양한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이다. 때로는 절을 짓게 된 유래나 부처고승의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연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기설의 성립과 전개]

석가모니불은 깨달음을 얻은 후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며(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此滅故彼滅)”(잡아함경30)고 했다. 또한 아함경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는 기록이나, “연기를 보는 자는 불()을 본다는 기록에서 연기는 기존의 인도사상과 구별되는 석가모니의 독특한 사상이다. 불교는 연기설을 기점으로 교리가 전개된다.

원시불교 이래의 사제설도 일종의 연기설로서 고()()2제는 유전연기, ()()2제는 환멸연기를 나타낸다. 연기설의 가장 일반적 형태는 무명(無明)()()명색(名色)육입(六入)()()()()()()노사(老死)12종이 순차적으로 발생소멸하는 것을 나타내는 십이연기이다. 처음에는 소박한 형태의 연기설이 불교사상으로 전개되면서 다양한 이론으로 전개되었다. 업감(業感)연기아뢰야(阿賴耶)연기진여(眞如)연기여래장(如來藏)연기법계(法界)연기 등이 그것이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는 십이연기의 12()에 업설(業說)을 결부하여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있다고 보아 시간적인 생기(生起) 관계인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를 중심으로 연기설을 해석했다. 부파불교에서는 십이연기를 3(三世)에 걸쳐 실재론적으로 해석했지만, 대승불교에 이르면 반야경(般若經)의 일체개공(一切皆空)의 입장 ()’ 사상에 의해 연기가 이해되어, 모든 것은 ’,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에 연기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이후 대승불교에서는 일체 현상은 말나식(末那識)의 활동과 이 말나식을 내포하고 있는 아뢰야식의 연기로 보는 아뢰야연기설, 모든 중생 속에는 깨달음의 가능성, 즉 여래(如來)의 인자가 있다고 하는 여래장연기설과 진여연기설, 모든 연기를 이상세계로서의 법계의 전개라고 보고 일체의 사물은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관계에 있다고 하는 법계연기설,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원소로 지()()()()()()에 의한 연기를 말하는 육대(六大)연기설로 다양하게 전개된다.

[십이연기]

불교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八苦)는 숙명적이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가 원인이 되어 받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 이를 정리한 것이 십이연기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인간이 늙어서 죽게 되는 것은 태어나기 때문에 일어나며, 또한 괴로움은 사랑의 번뇌에 의해 생기거나 인간의 근원적인 무명(無明)에 의해 생기며, 반대로 번뇌가 없으면 고통도 없어진다고 했다. 이것을 계열화하여 무명에서부터 노사에 이르는 십이연기(十二緣起)가 확립되었다.

무명(無明)

실재하지 않는 무상한 것을 실체(實體)로 착각하고 그 무상한 형체를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 집착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곧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말한다. 연기와 사성제의 도리도 모르고, 선악도 모르니 인생의 고뇌와 불행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

이처럼 밝지 못한 상태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함으로써 습관, 성격, 소질 등 바르지 못한 자기 즉 업이 형성되어 간다.

()

이러한 행에 의해 형성된, 잠재된 힘으로 육근(六根)을 통해 받아들인 모든 인식을 판단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분별하는 인식작용을 말한다.

명색(名色)

명은 정신적인 것을 말하며 색()은 물질적인 것을 말한다. 명색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로 인식작용에 의해 일체의 존재가 현상적으로 나타남을 말한다.

육처(六處)

명색이 있으므로 그것을 지각하는 능력이 일어난다. 곧 눈의지(意志)라는 육처가 그것이다.

()

촉이란 접촉한다’, ‘충돌한다라는 뜻으로 감각하는 기관과 그 대상인 육경(六境) 과 감각, 지각의 주체(六識)가 화합, 접촉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가 만나므로 감각과 지각의 인식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

수는 감수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촉에 의해 즐거움이나 괴로움, 그리고 즐거운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닌 느낌의 세 가지가 일어난다.

()

애는 심한 욕구()를 말한다. 수에 의해 일어난 맹목적인 욕심을 말하는 것이다.

()

애에 의하여 일어난 욕구가 추구하는 대상을 소유화하는 것을 말한다.

()

취에 의하여 있음이 발생한다. 몸과 말로써 짓는 행동 뒤에 일어난다.

()

이러한 유로 말미암아 존재 자체가 형성된다.

노사(老死)

생으로 말미암은 늙음과 죽음의 괴로움을 말한다.

생과 사는 단순히 육체적인 생사만이 아니라 자신이 나고 죽는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인 괴로움을 말한다. 이러한 과정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유전연기, 이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무명을 버리고 지혜()를 획득하는 것을 환멸연기라고 한다. 이렇게 불교는 인간이 죽음을 포함한 모든 고뇌에 속박되어 있는 원인과 거기에서 벗어나는 문제에 대해 연기법으로 그 해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기설의 의미]

연기설은 모든 현상과 사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의존관계를 벗어날 수 없어 생성과 소멸은 항상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존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이것과 저것의 의존관계와 상관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상호 관계성을 뜻한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항상 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맺고 있다 하여 연기법을 상의성(相依性)의 법칙이라 말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사상(事象)은 항상 서로 관계되어 성립하기 때문에 불변적고정적 실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연기설은 불교의 공()사상으로 철학적 정립을 이루게 된다.

[연기설과 존재]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된다. 석가모니는 인간존재를 포함한 모든 연기된 존재를 주로 오온이라는 용어로 표현했고 경우에 따라서 십이처 또는 십팔계라 설하기도 했다. 연기된 모든 존재현상을 나타낸다 하여 일체법(一切法)이라 하기도 하고, 세 가지 과목으로 분류한다 하여 오온십이처십팔계를 삼과(三科)라 부른다. 일체법이란 모든 존재현상을 말한다. 석가모니는 연기적 관계를 떠나서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일체법을 설한 것이다.

인간의 고는 일체법과 라는 존재의 연기성을 체득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모든 존재현상은 라는 존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 수 있다. 중생은 일체법의 참된 모습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고, 집착함으로써 그것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오온십이처십팔계를 설한 목적은 물질과 정신이 모두 영구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연기하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원불교의 연기설 수용]

연기설을 초기 원불교에서는 주로 십이연기설을 중심으로 수용했다. 특히 십이연기설을 부파불교의 삼세양중인과설에 바탕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불법연구회근행법에서 그 설명양태를 볼 수 있다.

정산종사도 십이연기는 부처님이나 중생이 한 가지 수생하는 과정이지마는, 부처님은 그 이치와 노정을 알기 때문에 매하지 아니함이 다르며, 그 중에서도 현재 삼인(三因)인 애()와 취()와 유()에 특별한 공부가 있나니, 부처님은 천만 사물을 지어갈 때에 욕심나는 마음으로 갈애(渴愛)하거나 주착하지 아니하며 또한 갈애하고 주착하는 마음으로 취하지 아니하며 또한 모든 업을 지음은 있으되 그 업에 주착하는 마음은 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일체 모든 업이 청정하여 윤회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윤회를 능히 초월하나니라”(정산종사법어경의편45)고 하여, 부파불교의 설명방식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의 중심은 삼세윤회보다는 현실의 마음작용에 초점을 두어서 해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경향은 소태산대종사가 범부 중생은 육도의 윤회와 십이 인연에 끌려다니지마는 부처님은 천업(天業)을 돌파하고 거래와 승강을 자유 자재하시나니라”(대종경불지품6)고 하여, 생사거래와 육도윤회를 자유자재로 해야 한다는 종교적 이상의 목표를 제시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불교의 연기설은 상호관계성의 측면에서 원불교의 사은과 철학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불교의 사은은 그 핵심적 표현이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정전사은)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생성과 소멸의 상호 관계성을 말하는 불교의 연기설과 매우 유사한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석가모니가 펼치려 했던 세계가 소태산이 지향하고자하는 세계와 서로 같은 흐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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