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훈품(要訓品) 42장
대종경(大宗經)
제11 요훈품(要訓品) 42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참 자유는 방종(放縱)을 절제하는 데에서 오고, 큰 이익은 사욕을 버리는 데에서 오나니, 그러므로 참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계율을 잘 지키고, 큰 이익을 구하는 사람은 먼저 공심(公心)을 양성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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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自由]
(1)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
(2) 법률의 범위 내에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의 행위. 자율적인 활동. 진정한 자유는 사람의 권리임과 동시에 행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을 자행자지(自行自止)라고 한다.
(3) 원불교에서는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참된 자유라고 한다.(원불교대사전)
계율[戒律]
[개요]
계(Śīla)와 율(Vinaya)의 합성어. 싼스끄리뜨 쉴라(Śīla)는 시라(尸羅)로 음역(音譯)되며 계로 의역(意譯)되는데 자율적으로 규율을 지킨다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의 의미가 있으며, 싼스끄리뜨로 비나야(Vinaya)는 비니야(毗尼耶)로 음역되며 율로 의역되는데 불교 교단의 질서 유지를 위한 규율로서 타율적인 규율의 의미가 있다. 또한 율은 경(經)에 상대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계는 율의 한 부분으로서 훈계(訓戒)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국에 와서 계율이라는 용어로 합성되었다. 따라서 합성어인 계율의 의미는 자신의 수도를 위해 스스로 경계(警戒)함의 의미와 교단의 질서를 위해 법규에 따라 규율(規律) 있게 함의 의미가 모두 종합되어 있다. 계율은 불교, 원불교와 함께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에도 있다.
[원불교 계율의 의의]
원불교에서는 계율로서 교도에게 보통급십계문ㆍ특신급십계문ㆍ법마상전급십계문 등 삼십계문을 부여하고 있으며. 법강항마위 이상인 법위자에게는 각각의 처지와 장단에 따라 심계(心戒)를 두도록 하며 교단의 질서 유지와 행정 관리를 위해 〈교헌〉, 〈교규〉 등 법규를 두고 있다. 이는 악습(惡習)을 고쳐 항마입성(降魔入聖)하게 하는 초보적 공부로서 일시적 통제를 거쳐 영원한 자유의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고, 인과적으로도 악행을 끊고 선행을 하여 세세생생 고를 여의고 낙을 얻게 하는 것이며, 교단과 사회에 있어서는 무질서의 근원을 없애 평화의 사회를 유지하게 하려는 것으로 삼학 가운데 작업취사 공부에 속한다.
[원불교 계율의 특징]
첫째, 조문이 간소화되어 대중적으로 계율을 지키기가 용이하다. 불법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삼십조문을 정하여 계문으로 했다(《회보》 제46호). 둘째, 내용이 현실 사회생활에 맞도록 되어 있어 시대와 생활에 적합하다. 곧 7개의 연고(緣故) 조항을 둠으로써 극단적인 금욕을 주장하는 소승적 계율이기 보다는 연고 곧 까닭이 있는 경우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절욕을 주장하는 대승적 계율이다.
연고의 궁극적 기준은 생명에 도움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곧 영적 삶과 육적 삶을 온전히 함(靈肉雙全)에 도움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범계(犯戒)의 기준이 된다. 셋째, 수행의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부여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우리에게도 서른 가지 계문이 있으나 한 가지도 삭제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그대로 지키게 하노라. 다만 계율을 주는 방법에 있어서는 사람의 정도를 따라 계단적으로 주나니, 능히 지킬 만한 정도로 먼저 십계를 주고 또 계단을 밟는 대로 십계씩을 주며 삼십계를 다 마친 후에는 계율을 더 주지 아니하고 자유에 맡기나니, 그 정도에 이른 사람은 부당한 일과 당연한 일을 미리 알아 행하는 까닭이니라”(《대종경》 교의품25)고 했다.(원불교대사전)
공심[公心]
① 공정하고 편벽되지 않는 마음. 공익심의 준말. 원불교에서 신심과 아울러 가장 강조하는 마음.
② 자기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나 인류전체를 위하는 마음. 공심에는 부분공심과 전체공심이 있다.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도 자기가 속한 기관이나 단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인 공심에 속한 것이며, 국한을 넓혀 사회전체를 생각하는 것을 전체공심이라 하는 것으로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진정한 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를 본위로 생각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으로 자기를 놓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인류 역사상 여러 종류의 차별과 분쟁 또는 더 나아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수행을 통해 일원의 진리와 사은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공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으로 부처님이나 모든 성자들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 일체중생을 위해 제도의 문을 열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공심은 진리를 깨닫고 수행을 할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능력으로 인생으로써 최고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감수한 것이나 이차돈의 순교는 공심의 표본이 될 만하다고 했다(《정산종사법어》 공도편4).(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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