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훈품(要訓品) 06장
대종경(大宗經)
제11 요훈품(要訓品) 6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어리석은 줄을 알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를 얻을 것이요, 자기가 지혜 있는 줄만 알고 없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점점 어리석은 데로 떨어지나니라.]
★★★★★★★★★★
[자기가 어리석은 줄 아는 지혜]
<송경호 교무/순천교당>
자기가 어리석은 줄을 아는 것은 마치 닫혀진 마음을 여는 것 같고 채워진 그릇을 비워두는 것 같은 것이다.
그릇이 비어 있으면 그 빈 그릇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게 된다. 세상을 볼 때도 예사로 보지 않고 모두 나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보기 때문에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도, 강아지들의 싸움 속에서도 산 경전을 발견하여 지혜를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어리석은 줄을 알면 항상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게 채워가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어리석음을 면할 큰 지혜를 갖추며 발전하는 사람이 된다.
‘하근기의 사람은 비록 자신은 없다 할지라도 법을 중히 알고 스승을 돈독히 믿는데 따라 그 진행하는 정성이 쉬지 않으므로 필경은 성공할 수 있다’고 하였다.(신성품 2장)
이와 같이 모자라는 것은 언제라도 채울 수 있지만 철철 넘치는 것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자기가 지혜 있는 줄만 알고 없는 것은 발견하지 못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점점 어리석은 데로 떨어진다.’ 하였듯이 손오공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우리 중생이 아무리 지혜 있다 해도 부처님의 지혜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지혜가 있다는 표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지혜는 천지의 밝음, 영지의 광명, 천지의 식(識), 영통(靈通), 도통(道通)하는 정도는 되어야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출가위 이상 불퇴전이 되어야 어리석은 데로 떨어지지 않는다 하셨으니 조금 반짝하는 지혜를 가지고 자만자족하면 어리석은 데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대종사는 ‘천지 만물의 변태와 인간의 인과보응을 여실히 알 것이며,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에 능통할 수 있으며, 천조의 대소유무를 보아다가 인간의 시비이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 뜰만한 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인가?’(불지품10)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큰 깨침에서 오는 지혜를 밝히기 위해 우리는 하루하루 정신을 맑히고, 어리석은 데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세우고, 돌려 정진적공 해야 합니다.
★★★★★★★★★★
불퇴전[不退轉]
(1) 한번 도달한 수행의 경지에서 물러서지 아니함. 불퇴(不退). 초기불교에서는 초급의 수행단계인 사선근(四善根)의 3번째 단계인 인위(忍位)에 오르면 더 이상 악도(惡道)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계위(階位)에 대하여 논하며 보살이 수행해야 할 제2단계인 십주(十住)에서 7번째 자리로 총 52위(位) 가운데서는 17위에 해당하는 자리라고 했으나 경전과 논서에 따라서는 달리 설명하기도 한다.
(2) 원불교에서는 수행의 계위가 출가위 이상이 되면 불퇴전으로 본다. 그러나 소태산대종사는 “불퇴전에만 오르면 공부심을 놓아도 퇴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 천하의 진리가 어느 것 하나라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없는지라 불퇴전 위에 오르신 부처님께서도 공부심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어떠한 순역 경계와 천만 외도라도 그 마음을 물러나게 하지 못할지니 이것이 이른바 불퇴전이니라”(《대종경》 변의품39)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