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Aid Perfection) 2014. 12. 25. 14:24

대종경(大宗經)

12 실시품(實示品) 6

한 제자 교칙(敎則)에 크게 어그러진 바 있어 대중이 추방하기로 공사를 하는지라,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 차마 이러한 공사를 하느냐. 그는 나의 뜻이 아니로다. 나는 몇 만 명 제자만이 나의 사람이 아니요, 몇 만 평 시설만이 나의 도량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이 다 나의 사람이요, 온 세계 시설이 다 나의 도량이니, 나를 따르던 사람으로 제가 나를 버리고는 갈지언정 내가 먼저 저를 버리지는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 제자를 직접 부르시사 혹은 엄히 꾸짖기도 하시고 혹은 타이르기도 하시어 마침내 개과 천선의 길을 얻게 하여 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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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과 사회 둘이 아니다]

<유법원 교무/평화교당>

이 법문의 말씀은 성행이 거친 출가제자를 도량 풍기 문제 상 내 보내자는 제자들의 진언에 대종사님께서는 도량과 사회가 둘이 아니며, 불법의 대의를 살려서 개과천선의 길에 들도록 최선을 다하여 성불할 인연을 놓지 말자는 말씀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되는 일들이 있다. 스승님께 인증 받고 싶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단히 정진적공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업장인지도 모른다.

세상사가 마음과 뜻대로 되어지는 삶이라면 우리 이 사바세계에 무슨 걱정과 갈등이 있겠는가. 마음과 뜻대로 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수행이고 정진이고 적공이지 모든 것이 물 흘러가듯이 술술 풀리는 일이라면 수행이니 정진이니 적공이니 하는 이름들이 부질없는 수식어에 불과할 것이다. 성행이 거친 동지를 바라보는 동지도 괴롭지만 정작 당사자는 더 괴롭지 않을까?

이번 교무훈련을 나면서 유난히 눈에 띄는 후배교무가 있었다. 많은 선후배 교무들은 그를 이름하여 문제의 00교무라고 불렀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지나온 어리석고 방황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의 과정이라고그 교무를 바라보면서 고비를 잘 넘겨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요즘 청소년들을 바라보면 학교를 가는 건지 소풍을 가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필자가 청소년 시절 학교에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것, 아주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우리를 괴롭혔던 것 같다.

명찰을 달지 않으면, 머리가 귀에서 많이 내려오면, 스커트의 길이가 무릎 위로 올라가면, 앞머리를 잘라서 눈을 가리면 여지없이 학교 훈육선생님에게 곤욕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학생을 문제아 취급을 했고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남자가 머리를 뒤로 묶고 귀거리를 하고 다니던, 머리를 노랑 빨강 물을 들이던, 여자가 다 헤어진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누비던 누가 뭐라고 하는가. 요즘은 그것을 톡톡 튀는 개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단체면 단체에서 조금 비껴서 있으면 그를 감싸 안기보다 비난하고 벽안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조금만 관용과 너그러움을 갖고 바라보면 분명 그 사람에게도 살려 쓸 수 있는 훌륭한 소양이 잠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성을 존중해 주지 않고 나와 생활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요즘 말로 왕따를 시키면 그 누구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교단에서도 조금 힘이 들더라도 다양한 인재를 잘 수용하고 품에 안아서 대종사님게서 말씀하신 성불할 인연을 하나라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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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춤출 사/사바 세상 사, 할머니 파, 음역자 바, 인간 세/대 세, 지경 계)

불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일컫는 말. 참다, 견디다를 의미하는 싼스끄리뜨 사하(sah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음역하여 사하(沙河)색가(索訶)라고도 하고, 의역하여 감인토(堪忍土)인토(忍土)라고도 한다. 불보살들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사바세계이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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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의 부정을 사회로 옮길 건가]

<교무서울서부교구장>

한 제자 교칙에 크게 어그러진 바 있어 대중이 추방하기로 공사를 하는지라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 차마 이러한 공사(회의)를 하느냐. 그는 나의 뜻이 아니로다. 나는 몇만명 제자만이 나의 사람이 아니요, 몇 만평 시설만이 나의 도량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이 다 나의 사람이요, 온 세계 시설이 다 나의 도량이니 나를 따르던 사람으로 제가 나를 버리고는 갈지언정 내가 저를 먼저 버리지는 아니하리라하시었다.<실시품 6>

제자들 중에 혹 성행이 거칠어서 전일의 악습을 도무지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이것을 염려하여 도량의 풍기를 깨끗이 하려는 마음으로 회의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고하신 말씀입니다.

그가 지금 도량 안에 있어서도 그와 같으니 사회에 내 보내면 그 장래가 더욱 어찌되겠는가하시며 크게 걱정하시고 크게 꾸중하심입니다.

더욱이 사회와 도량을 따로 보는 것은 소승의 생각이며 독선의 소견이라 견책하시며 큰 견지로 본다면 사회의 부정이 곧 도량의 부정이요, 도량의 부정이 곧 사회의 부정이니, 도량의 부정만을 제거하여 사회에 옮기고자 하는 것이 어찌 원만한 일이냐는 말씀입니다.

불법의 대의란 모든 방편을 다하여 끝가지 사람을 가르쳐서 선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며 본인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여 간다면 모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미워하지 않으며 서로 화하여 다 같은 불자로서 함께 성불할 수 있는 인연을 놓지 말라 하신 말씀입니다.

집안 일에 화가 나서 죄 없는 부하나 학생에게 짜증을 내고, 부부간의 언쟁으로 성이 나서 자녀들에게 성질을 부리고, 직장 일에 시달려 평범한 일로 아내와 다투는 것은 범인들의 일상사입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폭풍이나 쌓였던 눈덩이도 조용히 가라앉히고 녹이듯이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누르며 솜처럼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의 본보기가 되겠습니까?

잘못이 없을 수 없고,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넘겨 본 예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공자님께는 인연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천품이 어질고 덕이 빼어났으나 단명하여 공자의 큰 기대를 저버리고 일찍 죽었습니다.

이때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쳤다고 대성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이 우는 것을 보지 못한 제자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인연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노여움을 결코 남에게 옮기지 아니하며, 같은 과실을 두 번 다시 범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노여움을 남에게 전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범인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보다 제자가 뛰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신의 사상과 덕을 후계자에게 계승 발전시키고 싶은 욕망이고, 이것이 곧 스승의 바람이요 사제의 도리입니다.

스승의 충고에 대꾸하는 학생들, 부모들의 염려를 싫어하는 자녀들, 겉으로는 화려하고 건강한 것 같으면서도 마약을 복용하는 철없는 젊은이들의 광란을 이유 없이 반항으로만 가볍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영원한 숙제임을 알고 동시에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가 스승의 도를 체 받고 실천하려는 삶의 근본을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