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품(信誠品) 9장
대종경(大宗經)
제10 신성품(信誠品) 9장
대종사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그대들이 나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보고 싶은 생각과 가까이 있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던가.] 제자들이 사뢰기를 [심히 간절하더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리라. 그러나, 자녀가 아무리 효도한다 하여도 부모가 그 자녀 생각하는 마음을 당하기 어렵고, 제자가 아무리 정성스럽다 하여도 스승이 그 제자 생각하는 마음을 당하기 어려우리니, 만일 제자가 스승 신봉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스승이 제자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의 반만 되어도 가히 그 법이 건네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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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信奉]
(信 믿을 신, 奉 받들 봉)
믿고 받듦(한자사전)
사모[思慕]
(思 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 慕 그릴 모)
①정(情)을 들이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함 ②남을 우러러 받들고 마음으로 따름(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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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깊은 사랑]
<양지혜 교무/포천교당>
조카가 아이를 낳고 사진을 보내왔다. 꼬물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리고 설레는 것이, 첫 사랑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수시로 사진을 들여다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영상으로 통화를 하게 됐다. 이름을 불러대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것이 짝사랑이구나'
조카의 아이를 보고 이렇듯 마음이 흥분이 되고 설레는데 부모 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이 든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그 마음의 깊이를 알 수는 없어도 조금이나마 세상 부모의 마음들을 헤아려보게 된다. 부모에게 자식은 인생이고, 세상이고, 우주이다. 그런 부모의 은혜에 보은의 길은 끝이 없을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자녀가 아무리 효도한다 해도 부모가 그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은 당하기 어렵고, 제자가 아무리 정성스럽다 해도 스승이 그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과 스승이 제자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는 어느 것이 더 깊고 얕은지 그 경중을 따질 것은 못된다.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고, 부모와 스승 모두 모시고 받들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 은혜를 어떤 수치로든 측량한다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학부시절 꿈에서 대종사를 뵀다는 교우가 있었다. '얼마나 대종사를 향한 마음이 간절하면 꿈에 대종사께서 나오셨을까?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부러웠다. 나도 대종사를 뵙고 싶다는 생각에 잠들기 전에 대종사를 그려보기도 하고, 틈만 나면 대종사 성탑을 참배하며 대종사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내 꿈에는 대종사께서 나타나 주지 않았다. 꿈에서 대종사를 만난 교우는 얼마나 염원했으면 꿈을 다 꿨을까? 그에 못 미치는 신심인가 싶어 내심 부끄러웠다. 대종사는 멀리 교전이나 선진들의 말씀 속에만 계셨고 나에게는 그 보다 추천교무가 훨씬 큰 스승으로 자리했다. 특별한 서원이나 신심이 있어서 출가했던 것이 아니라 교무의 이끌림으로 출가한 인연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수계농원에서 황직평 원로교무에게 정전공부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대종사를 법신으로 만나게 됐다. 그 감동과 환희는 오랜 목마름 끝에 만난 오아시스와 같았다. 그 뒤 티벳에서 다시 한번 대종사를 향한 영적체험을 하면서 온전하게 큰 스승으로 내 가슴에 모시게 됐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대종사께 향하는 마음에는 감사 이전에 존경과 경외심으로 설레곤 한다. 이 회상에 내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온통 기쁨이다. 이렇듯 대종사께 신맥을 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스승들의 변함없는 지지와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제자에게 신뢰를 보내주는 스승의 따뜻한 살핌이 없었다면, 어찌 감히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대서원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감사하고 위대한 스승들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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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성탑[大宗師聖塔]
[개요]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대종사의 성해(聖骸)를 봉안한 탑. 전북 익산시 신룡동 344-2번지 원불교중앙총부 영모원 안쪽에 위치하며, 1949년(원기34)에 제1대 성업봉찬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1943년(원기28) 소태산의 열반 후, 일제의 불허에 의해 공동묘역에 임시로 마련했던 성해를 성탑을 조성하고 옮겨 안치한 것이다.
송림 사이에 계단을 조성한 고대(高臺)에 화강암으로 원형 비신을 만들어 성해를 안치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6급 기단 및 수화, 탑갓은 옥개 5급, 상륜부는 법륜대와 연화봉으로 구성했다. 초기 성탑의 조성 당시는 교단의 경제사정과 한국전쟁 등으로 성역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는데, 수림이 변화되는 등 성탑일대의 장엄이 교단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1991년(원기76)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성업봉찬회 사업의 일환으로 진입로를 넓히고 병풍석을 둘러 부조물을 조성하는 등 현재의 형태로 장엄했다. 탑의 높이는 조성 당시 732cm이던 것이 장엄사업을 통해 지대석 1급이 추가되어 총 높이 749cm가 되었다.
[건립과 구조]
1949년(원기34) 4월 25일 현재의 위치에 성탑을 조성하여 소태산의 성해를 봉안했다. 이는 1943년 6월 1일 열반 당시에 전북 익산시 금강동 장자산 공동묘역에 임시로 조성했던 성탑의 성해를 옮겨 안치한 것이다. 소태산의 열반 당시에는 일제의 단속에 의해 중앙총부에 성탑을 건설하지 못했으며, 6월 6일 대각전에서 발인식을 거행한 다음 수도산 화장막에서 화장하고, 7일 성해를 조실에 안치하여 49종재를 엄수한 다음, 7월 19일 장자산 공동묘역에 임시로 간이 성탑을 조성하여 봉안했다.
해방 후 교단 체제를 정비하고 개교 36년의 제1대 결산을 위한 성업의 일환으로 성탑건립이 이루어졌다. 성탑의 조성은 총부 인근의 황등 화강석을 사용했는데, 중앙의 탑신은 높이 90cm, 직경 100cm의 원형석으로, 이곳에 소태산의 성해를 안치했다. 기단부는 정 4면으로 지대석은 높이 25cm, 너비 549cm로 문양은 없고, 그 위의 기단은 6급으로 총 높이 233cm, 너비 1급이 424cm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6급은 127cm이며 4급하에 연꽃문양이 양각되고 6급에 탑제(塔題)인 ‘대종사성탑(大宗師聖塔)’이 한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수화는 높이 30cm, 너비 100cm로 앙련(仰蓮)문양을 이루고 있다. 탑갓은 정 4면인 옥개 5급의 총 높이 312cm로, 너비는 1급이 170cm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5급은 90cm이며, 5급에는 정면에 ‘◯(일원상)’이 양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총 높이 42cm로, 원통형의 법륜대 위에 연화봉을 높이 25cm, 직경 26cm로 조성해 올렸다.
성탑은 조성 당시 60평의 지반 위에 건립되었는데, 1991년 장엄공사를 통해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지대석 1급을 더했는데, 높이 17cm, 직경 900cm의 원형으로 조성함으로써 그만큼 성탑이 높아지게 되었다. 자갈이 깔려 있던 지반은 120평으로 넓혀져 화강암으로 포장했다. 성탑의 앞면과 진입계단은 석조 난간을 조성하고, 높이 230cm의 석등 6기를 세웠는데, 이에는 아래에 연꽃과 중간에 ‘일원상(◯)’, 위에 연화봉을 올렸다.
성탑의 옆면과 뒷면에는 석조 병풍석을 둘렀으며, 제일 높은 곳이 230cm, 전체 길이가 3,872cm이다. 이 병풍석에는 가로 247cm, 세로 184cm 크기의 동판에 대종사십상 10폭을 부조하고, 그 양옆에는 가로 110cm, 세로 140cm의 오석판에 소태산 친필인 ‘사은’과 ‘게송’을 각각 음각했다. 진입계단은 3단의 계단으로 조성했는데, 높이는 하단이 7급, 중ㆍ상단이 각각 6급으로 총 380cm이며, 폭은 하단이 700cm, 중ㆍ상단이 600cm, 중ㆍ하단 사이에 깊이 520cm, 폭 1,500cm의 참배단을 조성했다.
[의의]
소태산 열반 후 일제의 해체 획책을 피한 교단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새로운 교화활동과 함께 제도 정비에 들어선다. 1947년(원기32) 4월 27일 총회에서 교명을 ‘원불교(圓佛敎)’로 정하고, 1948년(원기33) 1월 16일 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 원불교’의 설립승인(문교부지령 제34호)을 받았다. 이해 4월 26일 총회에서 〈원불교교헌〉을 제정하고 다음날인 27일 원불교개교식을 거행하여 교명을 선포했다. 그리고 1952년(원기37)에 맞이할 제1대 결산을 내다보면서 1949년 4월 25일에 대종사성탑을 조성했다.
성탑을 조성하여 성해를 봉안한 다음날인 26일에 소태산의 유업을 받들기 위해 대종사주성업봉찬회(후일 제1대 성업봉찬회)를 발족했으므로, 성탑조성은 성업봉찬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업이었음을 말해준다. 성탑은 8m에 가까운 높이로 웅장한 모습을 짓고 있는데 전통적인 석탑양식을 수용하면서도 연꽃ㆍ일원상 등의 문양이나 형태 등을 통해 원불교적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성탑의 동남쪽에 1953년(원기38) 소태산이 교단을 연 포부와 목적을 새겨 전하는 대종사성비, 그 앞에 1991년 조성된 정산종사성탑 등이 조화를 이루어 신앙성을 북돋으며 교도들의 참배처가 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성해[聖骸]
성현의 유골. 원불교중앙총부에 위치한 대종사성탑은 소태산대종사의 성해를 봉안했고, 정산종사성탑은 정산종사의 성해를 봉안했다.(원불교대사전)
고대(高臺)
( 높을 고, 臺 대 대)
높이 쌓은 대(臺)(한자사전)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