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품(性理品) 19장
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19장
하루는 학명 선사가 글 한 수를 지어 보내기를 [투천산절정(透天山絶頂)이여 귀해수성파(歸海水成波)로다 불각회신로(不覺回身路)하여 석두의작가(石頭倚作家)로다.]라 한지라, 대종사 화답하여 보내시기를 [절정천진수(絶頂天眞秀)요 대해천진파(大海天眞波)로다 부각회신로(復覺回身路)하니 고로석두가(高露石頭家)로다.]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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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천산절정 귀해수성파[透天山絶頂 歸海水成波]
《대종경》 성리품 19장의 법문. “투천산절정 귀해수성파 불각회신로 석두의작가 절정천진수 대해천진파 부각회신로 고로석두가(透天山絶頂 歸海水成波 不覺回身路 石頭倚作家. 絶頂天眞秀 大海天眞波 復覺回身路 高露石頭家)”소태산대종사가 1919년(원기4)부터의 봉래산 주석기에 백학명(白鶴鳴) 선사와 주고받은 시문이다. 학명이 “하늘을 뚫을 듯한 산의 절정이여 바다에 돌아가 물이 파도를 이룰지로다. 몸 돌이킬 길을 알지 못하며 석두에 의지하여 집을 짓도다”라고 읊자, 소태산은 “절정도 천진 그대로 빼어남이요 대해도 천진 그대로의 파도로다. 다시 몸 돌이킬 길을 깨달으니 높히 석두가에 드러났도다”라고 화답했다.
선리(禪理)에서 보면 전자는 일체 차별이 돈공(頓空)한 근본 체성(根本體性)에 중심을 둔 도리라 한다면, 후자는 근본과 현상을 하나로 봄으로써 진공(貞空)과 묘유(妙有)가 아우러진 도리라 할 수 있다. 또한 경륜(經綸)에서 보면 전자는 큰 포부를 지니면서도 그 포부를 실현하는 길을 몰라 산중에 움츠리고 있음을 진심으로 동정하는 뜻이라 한다면, 후자는 이미 대회상(大會上) 건설의 기초사업을 여기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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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선사의 글 한 수]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학명 선사는 대종사와 동향의 선배였다. 당시 선가에 이름 높았던 학명은 반선반농(半禪半農)을 주창하였으며, 월명암 주지시절 대종사가 주석하던 석두암에 자주 왕래하였다.
대종사는 중한 인연이었던 학명의 선문답이 지닌 허점을 더러 지적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제자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을 뿐 그의 인품을 훼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루는 학명선사가 글 한 수를 지어 대종사께 보냈다. ‘투천산절정(透天山絶頂)이여 귀해수성파(歸涇水成波)로다 불각회신로(不覺回身路)하여 석두의작가(石頭倚作家)로다’ ‘산은 하늘을 뚫고 큰 바다 파도를 일렁이네. 몸 돌이킬 곳을 알지 못하여 석두에 의지하고 집을 지었구나.’
대종사는 화답하여 시를 보냈다. ‘절정천진수(絶頂天眞秀)요 대해천진파(大海天眞波)로다 부각회신로(復覺回身路)하니 고로석두가(高露石頭家)로다’ ‘절정도 천진으로 빼어남이요 바다도 천진의 파도라네. 다시 몸 돌아갈 곳을 알고 보니 석두의 집이 크게 드러나누나.’
학명의 시는 우선 대종사의 인품과 당시의 상황을 소재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대종사의 기개는 하늘을 뚫는 산이요, 경륜은 모든 물이 모이는 가없는 바다이다. 그러나 핵심은 뒤의 두 구절에 있다.
몸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함이란 좌우 인연 없는 고달픈 현실을 말하는 것 같으나, 모든 분별을 여읜 경절(徑截)을 상징하고 있음이다. 석두에 의지한다 함은 석두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말 같으나, 돌과 대종사가 둘 아님을 은유하여 철저한 공의 경지를 암시하고 있다.
이에 대종사는 ‘돌아갈 곳을 알고 보니 석두가 크게 드러났다’고 화답하는데, 한 소식 깨치고 나니 석두와 자신이 둘 아닌 독존이요 그대로 묘유라는 말이다.
봄 찾아 산하를 헤매다 겨우 집에 돌아오니 담 밑의 매화에 봄이 있더라는 소식이요, 허공 달이 천강에 비치매 낚싯대 하나 드리워 한꺼번에 건져낸다는 소식이다.
두 분의 문답에 대하여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그래도 쉽지만,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한 선사의 말로써 평을 대신하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