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Aid Perfection) 2014. 11. 9. 18:52

대종경(大宗經)

7 성리품(性理品) 10

대종사 봉래 정사에 계시더니 때마침 큰 비가 와서 층암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사방 산골에서 흐르는 물이 줄기차게 내리는지라,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보고 계시다가 이윽고 말씀하시기를 [저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지금은 그 갈래가 비록 다르나 마침내 한 곳으로 모아지리니 만법 귀일(萬法歸一)의 소식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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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정사[蓬萊精舍]

전북 부안군 변산면 실상동의 실상초당과 석두암을 통칭하여 봉래정사라 한다. 봉래정사라고 이름하는 것은 변산을 소금강(小金剛)으로 여기어 금강산의 별칭인 봉래산의 이름을 따 그 수양처를 봉래정사라 했다. 소태산대종사는 1919(원기4)부터 1924(원기9)까지 5년간 봉래정사에 머물렀다. 소태산이 하산한 뒤, 경상도에서 이주해 온 이춘풍이 산외(山外) 변산 초입인 신복리 종곡에서 산내(山內: 內邊山) 실상동으로 들어와 봉래정사를 수호하며 스스로 봉래산인(蓬萊山人)이라 칭했다. 이춘풍의 가족들이 길룡리로 이사한 뒤에 이보국이준경 등이 한때 봉래정사 수호주로서 주재하다가 이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퇴락되어 버렸고, 1948(원기33) 오창건이 1개월간 머물며 개축공사를 하여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개수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실상사 등 일대가 소실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원불교대사전)

만법귀일(萬法歸一)

(: 일만 만, : 법 법, : 돌아갈 귀, : 한 일)

모든 것이 필경에는 한군데로 돌아감(네이버 한자사전)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대종경성리품 17장의 법문.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뜻이다. 중국의 조주종심(趙州從諗) 등 선사(禪師)들이 즐겨 사용했던 공안(公案)의 하나로 원오극근(圓悟克勤)이 찬집한 벽암록(碧巖錄)545()으로 수록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1919(원기4)부터의 봉래산주석기에 서중안(徐中安)의 인도로 봉래정사를 찾아온 손님에게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나갈 의두로 이를 주고 있으며, 후일 선원의 성리법문에서 만법귀일의 소식이라 하여 이를 자주 들었다. 교단 최초의 교과서인 수양연구요론(修養硏究要論)(1927, 원기12)각항 연구문목(硏究問目)’일만 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갔는지 연구할 사()’로 수용된 후, 1962(원기47)에 완정된 현 정전수행편의 의두요목(疑頭要目)’에 수록되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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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의 참 소식을 들었는가?]

<조법전 교무/기흥교당>

성리품 10장의 내용은 만법귀일의 소식이다. 만법이란 만가지 법이란 뜻이니 넓은 세상의 수많은 이치와 인간의 다양한 일 가운데 벌여지는 만사 만리의 모든 법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만법이 그 근원은 하나라는 말씀이다.

추석 명절 향례에 올릴 꽃을 사기 위해 꽃시장을 갔다. 수많은 꽃들이 가지각색으로 시선을 끄는데 한결같이 아름답다. 꽃과 함께하는 작업은 신선함을 주지만 한번 핀 꽃은 곧 시든다는 일상의 진리를 보여준다.

또 이내 더운 날씨에 짓 물려 물 반 줄기 반으로 변태되어 간다. 이렇듯 우리 눈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우주만유는 생멸성쇠의 법칙을 갖고 변화되며 시든 꽃이 썩어가듯 형질이 변화되어 없어 질 때는 액체형태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면서 궁극적으로 기체로 전환이 되어 진다.

그러한 과정 속에 소위 질량보존의 법칙이 들어있어 대종사께서도 천도품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될지언정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수천만가지로 형상이 다른 우주만유는 그 속에 지수화풍이라는 기운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마치 얼음은 고체 상태이지만 녹으면 액체인 물이 되고 끓이면 수증기가 되어 기체로 변화하는 것과 같다.

인간도 태어나기 전에는 영가이나 태어나서는 사람이고 죽게 되면 시체일 뿐이며, 화장하게 되면 수화풍으로 기체는 흩어지고 먼지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우주만유라는 현상은 지수화풍이라는 본질의 조화된 모습임을 알아야 애착 탐착에 떨어지지 않고 정견을 하게 된다.

정산종사께서 "우주만유가 영과 기와 질로써 구성되어 있나니 영은 만유의 본체로써 영원불멸한 성품이요, 기는 만유의 생기로써 그 개체를 생동케하는 힘이며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써 그 형체를 이름이니라"정산종사 법어원리편 13장에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주만유의 본질은 음양오행이라는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행의 기운을 움직이는 주체는 마음,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다.

대령은 분별심이 없기에 영이 곧 천지팔도로 작용하여 영기합일의 진공묘유 덩어리인 천지행을 하는 것이요, 개령은 분별심이 있기에 영기분리의 심신작용 인과로 육도윤회 진강급을 나투게 된다.

영이란 곧 우리의 정신이니 정신수양 없이는 결코 진급할 수 없고 사리연구 없이는 진리에 눈 뜰 수 없다.

만법귀일은 우주만유와 만법의 근원을 밝힌 성리의 대자리이다. 우주만유와 만법이 성리의 소자리와 유무자리를 뜻한다면 대를 여의지 않는 소와 유무를 말씀하신 것이다.

한가위 보름달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저 허공 없이는 존재할 수 없듯이 만유와 만법 또한 형상 없는 대자리가 없이는 한치의 간격도 없는 절대의 한덩어리가 될 수 없다.

이름하여 불성이라 했던가. 일체생령에게 평등하게 갊아 있고, 불생불멸하며 인과보응하기에 생사를 초월하고 남녀상을 초월하며 죄복에 머무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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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의 소식]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대종사님이 봉래 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큰 비가 와서 사방 산골의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시며 저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지금은 갈래가 다르나 마침내 한 곳으로 모아지리니 만법 귀일(萬法歸一)의 소식도 또한 이와 같다(성리10)”고 하시었다.

대종사님의 구도과정은 간화선의 수행내역과 퍽 닮은 데가 있다.

화두선에서 사용하는 여러 공안(公案) 중에서 만법귀일은 기본이다. 그래서인지, 대각 후 접하신 책 <선요>때문인지, 만법귀일은 대종사께서 즐기시던 화두였다. 총부시절 정기훈련이 끝날 무렵 성리문답에서 이 화두를 던져 제자들을 단련하곤 하셨다.

만약 봉래의 시냇물에 비유하신 만법귀일의 소식을 받들면서 우리도 덩달아 봉래구곡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영생토록 중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는 던진 흙덩이를 쫓고, 사자는 흙덩이를 든 손을 문다. 골짜기와 시내 따위의 사량을 내던진 곳에 만법귀일의 소식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사량을 던진 곳에만 진리가 있을까. 골짜기와 바다, 그리고 하늘에 이르도록 물이 있는 모든 곳에 만법 또한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법은 은혜로 존재한다. 법신불의 세계를 삼라만상으로 풀어 주시고 다시 그 다양함을 은혜 하나로 꿰어주신 대종사의 뜻에도 만법귀일은 존재한다.

추상적이고 언어적인 사유를 구체적인 그림으로 끌어내 설명하는 것에 능한 것이 성인들의 공통점이다. 시냇물의 비유는 석존의 <니까야>에도 있다. “수행승들이여, 연기는 마치 빗방울이 산에 떨어져 계곡을 이루는 것과 같고, 다시 작은 강 큰 강을 거쳐 바다를 이루는 것과 같다이는 12연기의 인과적 설명으로써 무명의 빗방울이 생로병사의 바다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 석존의 탁월한 비유이다.

무명의 빗방울에서 생로병사를 창조하신 것이 석존이시라면, 여러 산골의 물방울에서 이 세상 모든 물을 다 보시고, 생활 속의 며느리에서 우주에 가득한 법신불의 은혜를 아신 것이 대종사님이시다.

시냇물의 흐름과 만법귀일의 소식은 모두 우리에게 부처를 보증하는 희망어린 속삼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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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 일귀하처]

<이중정 교무/동산선원 부원장>

만법이 하나로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대종사 봉래정사에 계시더니 때마침 큰 비가 와서 층암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사방 산골에서 흐르는 물이 줄기차게 내리는지라,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보고 계시다가 이윽고 말씀하시기를 저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지금은 그 갈래가 비록 다르나 마침내 한 곳으로 모아지리니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소식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대종경 성리품 10)

이 우주 안에 천지 만물의 삼라만상과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천만 분별이 결국 하나의 원리에 바탕이 되어 있으니 그 하나의 원리(제일 원리)란 무엇이냐? 대종사께서는 우주와 만물의 근본은 본연 청정한 성품 자리로 이름도 형상도 거래도 생사도 없는 것이니 그 가운데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생겨나서 변화가 되나니라.하시었는데 그 본연 청정한 성품이란 만법의 근원이고 귀일처가 되는 것이다. 정산종사께서는 우주만유를 영((()로 분류하시었다. 우주만유의 자연현상은 법신불의 체(()), 그 체 가운데 한 기운이 들어서 천변만화를 내는 것은 법신불의 용(())이요, 그 체용 가운데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로 없어서 무엇이라 가히 증거 할 수 없으나 항상 허령불매하여 엄연히 체용을 주재하는 것은 법신불의 영지이니 체와 용과 영지가 다 법신 하나로써 둘이 아니니라.다시 기에 대해서 부연하시면서 기라 하는 것은 형상도 없고 잡을 수도 없으나 능히 형상 있는 것을 지배하나니 산과 대지에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봄이 도면 잎이 피는 것도 한 기운의 조화요, 우리가 생로병사를 면할 수 없는 것도 한 기운이 들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며 우주가 성주괴공이 되는 것도 한 기운이 들어서 그렇게 되나니라.

영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신 바는 없으나 기와 질을 주재하는 것이니 우주의 원리가 밝고 밝은 인과의 이법에 의해서 운행되나니 소소영령한 그 이법이 영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우리의 육신에 비유하면 우리의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것이요, 현대적으로 설명한다면 40여 가지 원소로써 구성된 세포는 질()에 해당하며 호흡과 체내에 혈액이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순환하는 것은 기운의 조화이며 육신과 기운 가운데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무엇이라 증거할 수가 없으나 항상 허령불매하여 육신과 기운을 주재하는 것은 우리의 영지(마음)이니 원소와 기운과 마음이 하나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신불의 영· · 질과 나의 영· · 질은 대령과 개령, 대기와 소기, 대질과 소질로서 결국 법신불 하나로서 둘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만법귀일의 이치도 차별은 저 허령불매한 법신불의 영지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만법을 주재하는 법신불의 영지란 무엇인가 좀 더 생각해보자.

대종경 변의품에는 천지의 식()에 대한 법문이 있다. 천지의 식이란 알기도 어렵고 가령 안다 할지라도 충분히 증명하여 보이기도 어려우나 가령 땅에다 종자를 심으면 참으로 소소영령하게 생장을 도와주며 인공을 많이 들인 자리와 적게 들인 자리를 밝게 구분하여 수확을 많이 나게도 하고 적게 나게도 하나니라. 그러나 땅 뿐 아니라 하늘과 땅과 일원성신 풍운우로상설이 모두 한 기운 한 이치여서 하나도 영험하지 않는 바가 없나니라. 그러나 천지의 식은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같지 않는 식이니 무념 가운데 행하는 식이며 상 없는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며 공정하고 원만하여 사사가 없는 식이니라.법시불의 영지나 천지의 식이나 결국은 같은 것으로 우주만유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만법귀일의 도리는 만유의 근원이 되는 자리에서 보면 하나로 돌아간다 할 것이지만 그 하나는 만유 속에 내재하여 있기 때문에 어디로 돌아간 할 수가 없다. 즉 만유가 하나로 하나가 만유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리적 분별로써 의론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백척간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비록 그 자리에 들었으나 참이 아니니 백천 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시방 세계가 온통 나의 몸이 된다는 옛 시와 같이 손가락에 의지해서 허공 달을 구경하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