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Aid Perfection) 2014. 11. 20. 11:56

대종경(大宗經)

제8 불지품(佛地品) 3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대자(大慈)라 하는 것은 저 천진 난만한 어린 자녀가 몸이 건강하고 충실하여 그 부모를 괴롭게도 아니하고, 또는 성질이 선량하여 언어 동작이 다 얌전하면 그 부모의 마음에 심히 기쁘고 귀여운 생각이 나서 더욱 사랑하여 주는 것 같이 부처님께서도 모든 중생을 보실 때에 그 성질이 선량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고 스승에게 공경하며, 이웃에 화목하고 빈병인(貧病人)을 구제하며, 대도를 수행하여 반야지(般若智)를 얻어 가며, 응용에 무념하여 무루의 공덕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기뻐하시고 사랑하시사 더욱 더욱 선도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요, 대비(大悲)라 하는 것은 저 천지 분간 못 하는 어린 자녀가 제 눈을 제 손으로 찔러서 아프게 하며, 제가 칼날을 잡아서 제 손을 상하게 하건마는 그 이유는 알지 못하고 울고 야단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부모의 마음에 측은하고 가엾은 생각이 나서 더욱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는 것 같이, 부처님께서도 모든 중생이 탐·진·치에 끌려서 제 스스로 제 마음을 태우며, 제 스스로 제 몸을 망하게 하며, 제 스스로 악도에 떨어질 일을 지어, 제가 지은 그대로 죄를 받건마는 천지와 선령을 원망하며, 동포와 법률을 원망하는 것을 보시면 크게 슬퍼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천만 방편으로 제도하여 주시는 것이니, 이것이 곧 부처님의 대자와 대비니라.그러나, 중생들은 그러한 부처님의 대자 대비 속에 살면서도 그 은혜를 알지 못하건마는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천 겁 만 겁을 오로지 제도 사업에 정성을 다 하시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은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부라 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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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지[般若智]

(1) 근본지ㆍ청정지ㆍ영지ㆍ무루지의 근본. 무명의 반대.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 곧 참된 본성. 이무애(理無礙) 사무애(事無礙) 이사무애(理事無礙)한 사리통달의 지혜. 반야와 지는 서로 같은 뜻인데,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반야지라 한다.

(2) 반야종지와 같은 뜻으로, 미망(迷妄)과 고통의 세계를 극복하고 평화안락한 극락세계에 돌아오는 지혜.(원불교대사전)

응용무념[應用無念]

(1) 아무런 생각이나 관념 또는 상(相)이 없이 대응하고 응용하는 것. 해와 달이 무심으로 운행하듯이 사람도 무위(無爲)ㆍ무주(無住)ㆍ무작(無作)ㆍ무심(無心)으로 천만사물이나 경계에 대응하고 활용하는 것.

(2) 큰 은혜를 베풀고도 은혜를 베풀었다는 관념과 상을 놓아 버리는 것. 《정전》 ‘천지은’에 보면, 천지가 만물을 남김없이 화육하되 추호도 바라는 바 없이 무위ㆍ무심으로 운행하는 것을 응용무념의 도라 한다. 또한 이 응용무념의 도를 천지은의 피은의 강령으로 요약하는 동시에, 천지보은의 강령으로 삼고 있다. 이때 무념이란 천지에 있어서는 만물에게 사(邪) 없이 평등하게 생명을 부여하고 은혜를 베풀어주되 조금이라도 은혜를 베풀었다는 상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인간에 있어서는 모든 일을 할 때에 어디에도 끌리거나 주착됨 없이 행하는 초연한 상태를 뜻한다.

이처럼 인간이 천지의 응용무념의 도를 체받아서 행하는 것이 곧 천지보은이라 한다. 그러므로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천지의 응용무념의 도를 체받아서 동정간 무념의 도를 양성할 것이며, 정신ㆍ육신ㆍ물질로 은혜를 베푼 후 그 관념과 상을 없이 할 것이며, 혹 저 피은자(被恩者)가 배은망덕을 하더라도 전에 은혜 베풀었다는 일로 인하여 더 미워하고 원수를 맺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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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팔도[天地八道]

[개요]

《정전》 제2 교의편 사은(四恩) 중 ‘천지피은의 강령’에 밝혀진 천지의 여덟 가지 진리작용. 즉 ‘법신불 일원’의 진리가 천지의 대자연을 통해서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운행해나가는 도(道)를 여덟 가지로 설명한 것. 우주만물은 이러한 천지의 대도(大道)가 운행됨에 따라 대덕(大德)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 생명을 유지해가며 형각(形殼)을 보존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교리적 의미]

《정전》에서는 “우리가 천지에서 입은 은혜를 가장 쉽게 알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천지가 없어도 이 존재를 보존하여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것이니,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가 있다면 그 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 대범 천지에는 도(道)와 덕(德)이 있으니, 우주의 대기(大機)가 자동적으로 운행하는 것은 천지의 도요, 그 도가 운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천지의 덕이라.

천지의 도는 지극히 밝은 것이며, 지극히 정성(精誠)한 것이며, 지극히 공정(公正)한 것이며, 순리자연(順理自然)한 것이며, 광대무량(廣大無量)한 것이며, 영원불멸(永遠不滅)한 것이며, 길흉(吉凶)이 없는 것이며, 응용(應用)에 무념(無念)한 것이니, 만물은 이 대도(大道)가 유행되어 대덕(大德)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 생명을 지속하며 그 형각(形殼)을 보존하나니라”고 밝히고 있다.

① 지극히 밝은 도

법신불 일원의 진리가 천지를 통해서 지극히 밝게 나타나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천지의 식(識)을 말한다. 예컨대 콩을 심으면 콩을, 팥을 심으면 팥을, 악(惡)을 지으면 고(苦)를, 선(善)을 지으면 낙(樂)을, 그리고 공(功)을 잘 들이면 들인 만큼, 잘못 들이면 못들인 만큼, 인과보응의 진리에 따라 지은 그대로 결과를 받게 하되, 아무리 은밀히 한 일이라도 털끝만큼도 속이지 못하며 또는 그 보응에 항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천지의 식(識), 즉 천지의 밝음의 위력이다.

그러나 천지의 식은 무념(無念) 무상(無相)한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며, 공정하고 원만하여 사사(私邪)가 없는 것으로서, 희로애락에 치우치는 인간의 정식(情識)과는 다르다. 또한 이 천지의 식은 일체만물을 간섭하지 않는 바가 없고, 생멸성쇠(生滅盛衰)의 권능을 행사하지 않는 바가 없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지극히 밝은 도를 체받아서, 천만 사리(事理)를 연구하여 걸림 없이 알 것이요”라 했다.

② 지극히 정성(精誠)한 도

법신불 일원의 진리가 천지를 통해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지극히 정성한 도를 말한다. 천지는 무한생명의 기운으로써 만물을 생성하고 화육하는 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주대자연이 조금의 착오도 없이 시종일관(始終一貫)하고 지성불식(至誠不息)으로 운행하기 때문이라 한다. 예컨대 지구가 일순간도 머뭇거리거나 쉬지 않고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계속 진행하기 때문에, 밤과 낮이 교차하고 사계절이 순환하며 그 가운데 만물이 생육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가까이는 우리들의 혈액순환이나 맥박운동, 또는 신진대사(新陳代謝) 등 모든 생명운동 또한 그러한 예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천지의 정성한 도는 천지순환의 끊임없는 모습이요, 만물생성의 핵심적 원동력이다. 《중용》에서는 “성(誠)이란 진실무망(眞實無妄)한 것이며, 천리(天理)의 본연(本然)이라” 하고, 또 “성이란 하늘의 도(誠者天之道)이며. 성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誠之者人之道)이다”라고 하여, 성 그 자체를 천도(天道)로 보고 있다. 그리하여 오직 천도가 성실한 뒤에야 만물이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성이란 사물(事物)의 처음과 끝이다. 성이 없으면 일체 사물이 존재할 수 없다”라고 역설한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지극히 정성한 도를 체받아서, 만사를 작용할 때에 간단없이 시종이 여일하게 그 목적을 달할 것이요”라고 했다.

③ 지극히 공정(公正)한 도

법신불 일원의 진리가 천지를 통해서 지공무사(至公無私)하고 원만평등(圓滿平等)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말한다. 예컨대 하늘은 모든 만물을 빠짐없이 덮어주고, 땅 또한 만물을 다 똑같이 실어주며, 일월은 시방을 두루 똑같이 비추어준다. 그런데 이처럼 천지 사이에 충만한 법신불 일원의 진리는 원근친소(遠近親疏)와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끌림 없이 만물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두루 공정하고 평등하게 작용하여 미친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지극히 공정한 도를 체받아서, 만사를 작용할 때에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에 끌리지 아니하고 오직 중도(中道)를 잡을 것이요”라고 했다.

④ 순리자연(順理自然)한 도

법신불 일원의 진리가 천지를 통해서 나타날 때,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지극히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작용함을 말한다. 예컨대 모든 천체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있으며, 또는 태양을 중심으로 혹성들이 일정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운행하는 가운데, 사계절의 순환이 그 차서를 잃지 않게 되며,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가 순서 있게 진행되고 있으며, 음양상승(陰陽相勝)의 도를 따라 인과보응의 이치가 만물에 호리(毫釐)도 착오 없이 적용되고 있다.

법신불 일원의 변화하는 진리가 천지를 통하여 나타나는 데 있어, 털끝만큼의 착오나 차서(次序)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한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순리자연한 도를 체받아서, 만사를 작용할 때에 합리와 불합리를 분석하여 합리는 취하고 불합리는 버릴 것이요”라고 했다.

⑤ 광대무량(廣大無量)한 도

법신불 일원의 실체적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천지 자체는 그 범위와 크기가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국한 없이 크고 넓어서, 무엇이나 다 덮어주고 실어주며, 감싸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예컨대 천지허공은 텅 비어서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것이며, 그 안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다 안고 있을 뿐 아니라 만물을 다 덮어주고 있으며, 땅은 5대양과 6대주를 비롯하여 지상의 만물을 다 실어준다.

더욱이 대소유무의 분별을 넘어선 법신불 일원의 진리라는 입장에서 볼 때, 천지 또한 시간과 공간은 물론, 유와 무를 총섭(總攝)함과 동시에 일체 상대성을 넘어선, 이른바 광대무량한 포월(包越)의 세계이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광대무량한 도를 체받아서 만사를 작용할 때에,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에 끌리지 아니하고, 오직 중도를 잡을 것”이라고 했다.

⑥ 영원불멸(永遠不滅)한 도

법신불 일원의 진리는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인과보응(因果報應)’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동양의 천(天)사상에는 종교적 의미의 천과 형상 있는 자연현상으로서의 자연천(自然天)의 두 가지 의미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묘합관계를 이루면서 혼용되어 왔다. 원불교의 천지(天地) 개념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물리적인 우주자연 뿐만 아니라, 신비성을 내포한 종교적 우주 개념이 함께 고려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영원불멸한 도로서의 천지란 법신불 일원의 불생불멸한 측면에 역점을 둔 우주관으로서, 우주의 대기(大機)는 응연(凝然)하여 원래 생멸이 없다고 본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소천소지(燒天燒地)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나, 광대무량한 우주의 대기 전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본다(《대종경》 변의품4ㆍ인과품1). 더욱이 이는 ‘불생불멸’이라는 불변(不變)의 이치에서 볼 때는 물론이려니와, ‘인과보응’이라는 변화의 이치 또한 끊임없이 순환불궁(循環不窮)한다는 면에서 볼 때, ‘영원불멸한 도’라 할 수 있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영원불멸한 도를 체받아서, 만물의 변태와 인생의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을 것이요”라고 했다.

⑦ 길흉(吉凶)이 없는 도

천지는 응용무념(應用無念)으로 하염없이 순리자연(順理自然)하고 공정무사(公正無私)하게 길이 돌고 돌 뿐이요 길흉이 따로 없다. 여기서 길흉이 없다는 명제는 길흉뿐만 아니라, 대소(大小), 유무(有無), 일이(一異), 단상(斷常), 변ㆍ불변(變不變), 생멸(生滅), 거래(去來), 선악(善惡), 명암(明暗), 강유(剛柔), 순역(順逆), 이해(利害), 득실(得失), 화복(禍福), 호ㆍ불호(好不好) 등, 인간 차원에서 바라본 일체의 상대 개념을 넘어선 절대적 차원의 세계임을 명시한 것이다.

즉 인간에 있어서는 원근친소와 길흉화복의 가치가 있을 수 있으나, 천지에는 길흉화복 등 일체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가치를 초탈하여 오직 음양상승의 도에 따른 인과작용이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순환불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전》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이를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라 하면서, 그 경지는 어떤 개념이나 명상(名相)으로도 설명해낼 수 없는 자리라고 했다. 천지의 밝음, 순리자연, 광대무량 등의 개념은 명암, 순역(順逆), 대소, 광협(廣狹) 등의 상대적 개념을 넘어선 절대의 경지를 지명(至明)ㆍ지순(至順)ㆍ지공(至公)ㆍ지대(至大) 등의 절대긍정적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천지는 원근친소와 길흉화복 등 일체의 상대적 가치를 초탈하여 있으므로, 수행자는 이를 체받아 인간만사를 작용할 때에 길흉에 얽매이거나 끌려서 인도정의를 그르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길흉 없는 도를 체받아서, 길한 일을 당할 때에 흉할 일을 발견하고, 흉한 일을 당할 때에 길할 일을 발견하여, 길흉에 끌리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다.

⑧ 응용(應用) 무념(無念)한 도

천지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한없는 생명의 힘을 주어 살게 하는 생명의 원천임과 동시에, 그 생명체들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긴 채 누구나 도에 따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시주(大施主)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천지가 일체 만물을 화육(化育)하고 생존케 하되, 그러한 천지의 작용은 오직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운행되고 있을 뿐, 일체의 관념이나 상(相)을 떠나 있음을 말한다. 《불교정전》에서는 ‘천지보은의 대요’로서 천지8도 가운데 ‘응용무념’의 도를 들고 있는바, 여타의 일곱 가지 도는 모두 이 응용무념의 도에 바탕하여 전개된 각론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응용무념의 도는 바로 《금강경》의 핵심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내용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에서는 이러한 “천지의 응용무년한 도를 체받아서 동정간에 무념의 도를 양성할 것이며, 정신ㆍ육신ㆍ물질로 은혜를 베푼 후 그 관념과 상(相)을 없이 할 것이며, 혹은 저 피은자가 배은망덕을 하더라도 전에 은혜 베풀었다는 일로 인하여 더 미워하고 원수를 맺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무루[無漏]

욕심과 정욕이 흘러나오는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번뇌를 떠났다, 번뇌가 없다, 번뇌와 함께 있지 않다는 뜻으로 유루(有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누(漏)는 번뇌의 다른 이름.(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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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보다 다습고 밝은 부처님 대자대비]

<김준안 교무/원광디지털대학교>

한때 대종사는 총부 건설을 마치고, 휴양 차 봉래정사에서 1개월여를 머무른 적이 있다. 그때 이경순 선진과 이정화 선진이 대종사로부터 법명을 받았다.

하루는 두 자매가 산딸기를 따서 대종사께 드리기 위해 석두암으로 가져갔다.

두 자매는 "할아버지, 산딸기 따 왔어요"하고 드렸다.

어린 자매의 순수하고 천진스런 행동에 대견해했다.

대종사는 "너희들이 나를 위해 산딸기를 따왔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그러나 내가 산딸기를 다 먹고 나면 너희들이 또 짚신발로 산딸기를 따러 산으로 올라갔다가 뱀에게라도 물리면 큰일이다. 그러니 내가 몇 개만 먹겠다. 다음부터 산딸기 따러 짚신 신고 함부로 다니지 말아라"라고 딸기를 드시며 말씀했다.

대종사의 대자대비가 그대로 눈앞에 그려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일화이다. 대종사는 불지품 2~3장에서 대자와 대비의 뜻을 명확히 밝혔고, 대자대비의 위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씀했다.

먼저 대자라 하는 것은 중생이 선량한 성품을 가지고 갖가지 선행을 실천할 때, 부처님이 이를 기뻐하고 사랑해 더욱 선도로 인도해 주는 마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비라 하는 것은 중생이 탐심과 진심과 치심에 끌려 제 스스로 제 몸과 마음을 태우고 악도에 떨어질 일을 짓고도 사은을 원망할 때, 부처님께서 이를 슬퍼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천만 방편으로 제도하여 주시는 마음을 의미한다.

대종사는 이러한 부처님의 대자대비는 태양보다 따뜻하고 밝은 힘이 있기에 자비가 미치는 곳에서는 중생의 마음도 변한다고 했다.

즉,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이 녹아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잔인한 마음이 녹아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인색하고 탐내는 마음이 녹아서 혜시하는 마음으로 변하며,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의 차별심이 녹아서 원만한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매일 좀 더 행복한 교단, 보다 살맛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꿈꾸며 살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러한 변화도 우리들의 한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비롯된다. 그 마음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부처님의 대자대비이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오늘도 나의 중생심을 내려놓게 한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