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6 변의품(辨疑品) 16장
<20190820 화요일>
대종경(大宗經) 제6 변의품(辨疑品) 16장
대종사 서울에 계실 때에 민 자연화(閔自然華)가 매양 대종사의 공양하시고 남은 밥을 즐겨 먹거늘 대종사 그 연유를 물으시니
자연화
사뢰기를
[불서에 부처님 공양하고 남은 음식을 먹으면 천도도 받고 성불도 할 수 있다 하였삽기로 그러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그대가 나를 지극히 믿고 존경함에서 나온 생각임을 알겠으나 그대가 그 말을 사실로 해석하여 알고 믿는가 또는 알지 못하고 미신으로 믿는가.]
자연화
사뢰기를
[그저 믿을 뿐이옵고 그 참 뜻을 분석해 보지는 못 하였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부처님의 공양하시고 남은 밥을 먹게 된 때에는 그만큼 부처님과 친근하게 된 것이라, 자연히 보는 것은 부처님의 행동이요, 듣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깨닫는 것은 부처님의 정법이요, 물드는 것은 부처님의 습관이 되어, 이에 따라 천도 받기도 쉽게 되고 성불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것이 곧 그 말씀의 참 뜻이니라.]
{대종경} 제6 변의품 16장
부처님 잔반 공양소와 부처님 닮기
‘부처님이 남긴 음식을 먹으면 천도도 받고 성불도 할 수 있다!’
이 명제가 진실이라면 부처라는 직업보다 쉽고 환상적인 일도 없겠다. 일단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 내가 만약 부처라면 일생동안 할 일은 딱 한가지, ‘부처님 잔반 공양소’ 운영이다. 종일 밥만 먹고 남겨서 골고루 나눠주면 끝이다. 대신,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밥그릇 크기는 대대익선(大大益善), 클수록 좋다는 뜻이고, 하루 식사 횟수는 다다익선(多多益善), 한 숟가락씩만 최대한 여러 끼니 혹은 여러 그릇 먹을수록 좋다.
부처님 남긴 밥을 먹은 중생들은 다 천도 받고 성불한다 하니, 일생동안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이 사업을 계속하게 되면 결국 모든 인류를 다 성불하게 만들 수 있다. 때론,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와 한밤중에도 먹기를 계속해야 할 만큼 일정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부처니까 그쯤은 기쁘게 감당해야지. 이리 위대하고 멋진 사업을 막 구상하던 참인데, 소태산 대종사는 “부처님 공양후 남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과 친근하게 된 것이라, 자연히 보는 것은 부처님 행동이요, 듣는 것은 부처님 말씀이요, 깨닫는 것은 부처님 정법이요, 물드는 것은 부처님 습관이 되어, 천도 받기도 쉽고 성불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씀의 본의다”며 단번에 망상을 접게 만든다.
그렇담 ‘성자 코스프레’로 사업을 변경해서 구상해야겠다. 코스프레란, 실제는 그가 아니면서 ~인척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코스튬 플레이(주인공 분장놀이)의 일본식 표현이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 역할이 주어지면 그 인물에 완전히 몰입한다. 주인공과 연기자가 겉돌고 어설픈 발연기가 아니다. 자신을 다 비우고 주인공 속으로 쏙 들어가 그의 마음, 행동, 생각, 감정까지 완벽히 코스프레 할 때 가장 감동적인 연기가 된다.
그러다보면 때론 극중 인물에서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내가 주인공인지 주인공이 나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다.
만약 그 역할이 성자라면, 그 극이 몇 십 년 계속된다면 어떨까. ‘성자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연구하며 몰입해서 성자가 되어 사는 것이다.
성자의 언행, 지혜, 에너지를 내 것처럼 믿고 오래오래 가져다 쓰면 원래의 자기가 누군지, 내가 성자인지 성자가 나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내면화 단계에 이른다. 소설 〈큰바위얼굴〉처럼 오래도록 간절히 사모하며 잊지 않고 살면 어느 날 스스로가 큰바위얼굴이 되어 나타나듯, 성자 코스프레를 오래 지속하면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의 심성, 언행, 역량을 갖춘 사람으로 변해 있겠지! 이런 사업에 함께 투자해봄직 하지 않은가.
최측근에서 우파니샤드, 즉 성자와 무릎가까이 앉아 언행과 가르침을 그대로 받드는 운 좋은 제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성자와 함께 먹고 생활하며 하나라도 더 듣고 보고 따라하고 깨쳐서 성불할 수 있는 천금 같은 우파니샤드의 기회였으리라. 그 본의도 모른 채 공양하시는 부처님 옆에서 밥이나 남겨 달라 부담스레 기다리고 앉아 있으니 어찌 웃음이 나지 않으셨을까.
<송도교당 / 장오성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