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편(機緣編) 04장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2부 법어(法語)
제1 기연편(機緣編) 4장
다음 달에 대종사께서 정산종사를 부안 변산 월명암에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불경은 보지 말라] 하시었더니, 경상(經床)까지 외면하고 보지 아니하시며, 그 후 다시 진안 만덕산에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전주에는 들르지 말라] 하시었더니, 전주를 바라보지도 아니하고 지나시니라. 후일, 학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일찍 대종사께 물건으로 바친 것은 하나도 없으되 정(情)과 의(義)에 조금도 섭섭함이 없었노니, 마음으로 한 때도 그 어른을 떠나 본 일과 일로 한 번도 그 어른의 뜻을 거슬려 본 일이 없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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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1) 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감정, 생각 등을 의미하며 망념을 뜻하기도 한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을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성(性)과 마음이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정으로 구분하고 성이 본래 그대로 정으로 발현될 수 있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수양론을 제시한다. 《중용》에서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고 하고 발하여 중절(中節)한 상태를 화(和)라고 하여 정(情)의 절제와 평정을 강조하는 데, 이는 정에 대한 유교의 전통적 관념을 대변하고 있다. 희로애락은 정을 말하며 발하지 않은 상태인 중은 본성을 의미한다. 정의 발현이 중절할 때 화가 된다함은 정의 절제와 평정을 통해 본성의 중이 그대로 발현됨을 의미한다.
(2)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사귀는 정의(情誼).(원불교대사전)
의[義]
[개요]
유교의 도덕 범주 가운데 하나로 행동의 올바름. 사람이 국가나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공통 규범에 합치하는 행동을 스스로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義)’라는 글자는 원래 위 부분의 ‘양(羊)’과 아래의 병기 모양을 뜻하는 ‘아(我)’로 이루어진 상형문자로 고기를 써는 행위를 나타냈다. 이로부터 ‘사물을 세세히 자르고 나누는 것’, ‘세세히 잘라서 고르고 질서 있게 하는 것’을 비유하게 되였고, 공정한 원칙에 따라 사회 성원의 의무와 권리를 분배하여 질서를 확립한다는 뜻으로 발전했다. 또 사람의 입장과 지위에 따라 달리하는 용모나 행동방식(儀)을 가리켰다. 여기에서 용모와 행동방식의 가장 마땅한 것(宜)을 뜻하는 당위 규범으로 발전했다. 나아가 행동방식이 당위 규범에 맞을 때 의는 선(善)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이에 반하는 불선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의의 의미변화]
의의 의미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함의가 달라졌다. 이를 대체로 정리하면 세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째 적의(適宜)를 의미한다. 《중용(中庸)》에서는 “의란 마땅함(宜)이다. 어진이를 존경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한 주(注)에서 “의(宜)란 사리를 분별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춘추시대 의는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공자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하는 춘추대의(春秋大義)는 대일통(大一統)의 정신이 강하다.
둘째는 도(道)와 이(理)에 합치하는 것으로 항상 이(利)와 상대하여 의론된다. 《주역》 무망(无妄) 의 ‘불경확 불치여(不耕穫 不菑畬)’는 일하기에 앞서 어떤 목적을 위하는 바 없고 후일의 공효를 엿보는 바 없음을 말한다.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기 때문에 그처럼 하는 것이다. 의란 천리의 마땅한 바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논어》 이인(里仁)에서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 《맹자》 양혜왕상(梁惠王上)에서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면 나라는 위태로운 것이다”라고 했다. 천리의 마땅한 바는 계교함 없이 공정함으로 사욕에 의한 욕심과 구별된다.
재화ㆍ명예ㆍ지위ㆍ작록 등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마땅히 경영해야 할 일을 경영하고 마땅히 취해야 할 것을 취해야 한다. 도의에 따라 얻은 것이며 사의와 계교에서 나온 바가 아니면 그것은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은 것으로 곧 의리이다. 그러나 이도 또한 이익에 빠지기 쉬우므로 이익과 같이 보아야 하고 강약(强弱) 다과(多寡)를 계교함은 이익이다. 초기 유가에서는 의를 중시하고 이를 경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를 취하는 것은 소인의 일로 위란(危亂)의 원인으로 보았다. 한대의 동중서(董仲舒)는 ‘의를 바르게 하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이를 배척했다.
셋째는 도덕규범이다. 항상 인(仁)과 연용되며 종형(從兄)ㆍ경장(敬長)ㆍ존현(尊賢) 등의 의미를 갖는다. 《맹자》 이루상(離婁上)에서 “인의 실상은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요, 의의 실상은 형을 따르는 것이다.” 진심상(盡心上)에서 “어버이를 친히 하는 것은 인이요,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다” 등에서 보인다. 의는 특히 맹자에 의해 중요시되었는데, 맹자는 의를 ‘수오지심(羞惡之心)’이 확충된 것이라고 하여 윤리적 수치심과 결합시키고, 인(仁)이 인간의 안택(安宅)인 것에 대해 의는 인간의 정로(正路)라고 했다.
또한 부자유친(父子有親)에 대해 군신유의(君臣有義)를 말했다. 부자와 같은 혈연적 관계가 친(親)에 의한 결합임에 비해, 군신간의 인위적 관계는 의가 적합하다고 한다. 성왕은 대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천하인의 바램에 부응하는 것이지 천하로서 개인의 이익을 삼지 않는다. 맹자는 “하나의 불의를 행하고 하나의 무고한 양민을 죽이어 천하를 얻는다 할지라도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맹자》 공손추상)고 한다. 성인의 대를 말하는 것이다. 맹자의 의 개념은 이(理)를 중시하는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의리사상(義理思想) 형성에 기초가 되었다.
성리학자들은 그들의 학문을 의리의 학문(義理之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의와 이가 합해진 ‘의리’라는 조어가 나타난 시기는 춘추시대에서 진한대 사이이다. 이가 지닌 이치 또는 조리로서의 의미는 도(道)와 통하는 것으로 규범으로서의 의와 조리 또는 도로서의 이를 합하여 의의 인도(人道)적 성격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정이(程頤)는 “물(物)에 있는 것은 이(理)가 되고 물에 대처함에서는 의(義)가 된다”고 했다. “물에 있는 것은 이가 된다”함은 물의 이치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물에 대처함에서는 의가 된다”함은 물에 대응함에 있어서 이(理)에 따라 의가 발현됨을 뜻한다. 본래 갖추어 있는 의의 덕성이 발출되는 것이다.
이점에서 성리학적 의는 자기 본질의 실현이다. 도에 대한 소명의식이 의리 실천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 대응에 있어서도 의리를 중시했다. 그 결과 의리의 영역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의리상 마땅히 죽어야 할 일이라면 의를 지켜 죽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했던 만큼 성리학적 의의 관념이 지배했다. 조식(曺植)이 ‘외단자의(外斷者義)’라고 한데서 보이듯이 의란 외부적 사물과 그에 처한 상황에 따라 결단함으로써 해야 할 일을 선택 판단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의리실천을 위해서는 세상을 경륜할만한 종합적인 자질이 필요했다. 인의 정신에 입각하여 대상에 따라 마땅함을 찾는 것이 의이다. 조선시대 역시 의와 이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이를 배척했고 개인으로부터 국가의 경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었다. 외적의 침입 시에 나타난 청의론(절의론)과 화전론의 갈등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원불교에서의 의]
소태산대종사의 의에 대한 입장은 “그 의(義)만 바루고 그 이(利)를 도모하지 아니하며, 그 도만 밝히고 그 공을 계교하지 아니 한다(정기의이불모기리명기도이불계기공 : 正其義而不謀其利明其道而不計其功)”고 한 동중서(董仲舒)의 글을 보고 칭찬한 후 그 끝에 한 귀씩 더 붙이기를 “그 의만 바루고 그 이를 도모하지 아니하면 큰 이가 돌아오고 그 도만 밝히고 그 공을 계교하지 아니하면 큰 공이 돌아오나니라(정기의이불모기리대리생언명기도이불계기공대공생언 : 正其義而不謀其利大利生焉明其道而不計其功大功生焉)”(《대종경》 인도품7)는 표현에 근거하여 살펴볼 수 있다. ‘큰 이’라 함은 구도의 차원에서 확대 해석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 의미를 수용하고 이의 의미를 좀더 적극적으로 제시함으로서 일반 사회적 의미에서 도(道) 실현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곧 원불교에서 의의 의미는 인도정의(人道正義)를 뜻한다. 원불교 핵심교리인 ‘사은’ 중 법률은에서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법률이란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이다. 인도정의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할 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은 ‘개인에 비치면 개인이 도움을 얻을 것이요, 가정에 비치면 가정이 도움을 얻을 것이요, 사회에 비치면 사회가 도움을 얻을 것이요, 국가에 비치면 국가가 도움을 얻을 것이요, 세계에 비치면 세계가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존재를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바르게 살 수 없는 은혜가 된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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