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품(敎團品) 31장
대종경(大宗經)
제13 교단품(敎團品) 31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함에 하늘에서 먼저 시험해 보는 이치가 있나니, 보통 사람도 하루 인부만 부리고 일년 머슴만 두려하여도 그 자격과 신용을 먼저 보거든 하물며 천하 대사를 맡기는 데 있어서리요. 그러므로, 큰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먼저 마땅히 이 시험에 잘 통과하도록 조심하여야 하나니라.]
★★★★★★★★★★
[변함 없는 공부인]
<이도전 기자/원불교신문>
섬이라는 지역적 교화의 어려움이 있는 현장인 불목교당을 뜨거운 서원 일념으로 대종사의 일원대도를 생활 속에서 실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이는 오대웅 교도님(48)을 만났다.
원불교를 알기 전까지 기독교와 통일교 등을 다녀봤지만 왠지 정이 붙지 않고 사찰만 가면 묘하게 끌리는 것을 느끼며 신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도 했다.
이르던 중 대학 4학년 때 휴양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아버님의 주선으로 당시 원불교와 인연이 있었던 소남 김영현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완도에서 휴양을 하며 소남 선생의 둘째 자제인 김재천씨의 연원으로 원기 55년에 입교하여 교전 등을 탐독하며 신앙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군에 입대하는 등 약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몇 년 뒤 우연치 않게 소남훈련원에서 종법사님을 배알하는 자리에서 감상 담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 자리서 오 교도는 『고향인 해남 북평면에 교당을 건립하고 싶다』고 발표했으며 『지금도 종법사님께서 기운을 밀어주고 계신다는 신념으로 서원기도를 올리며, 주변교도를 모으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오 교도는 일원가정이 되었지만 처음 가정을 이뤘을 때는 결혼 전 남묘호랑갱교를 믿었던 부인(정상도)의 마음을 돌리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의 뿌리가 내려 어려운 가정 살림이지만 교당 살림까지도 챙기는 주인이 되었다.
특히 오 교도는 2남 3녀의 자녀들에게 『원불교를 만나기 위해서 너희들이 나와 만난 것 같다』며 『원불교를 떠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당부 때문이었는지 큰딸 (오지연)이 현재 포항교당에서 전무출신을 하기 위해 근무 중에 있다』고 말했다.
오 교도는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도 하고 사업도 벌려봤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양계를 시작하여 실패를 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의 일이다.
완도 농원에 우연히 갔다가 풍산 이호준 선생을 만나게 됐다. 『풍산님은 그때 사업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셨는데 나의 사정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신 듯 교단품 31장을 읽게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식량을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때였는데 교전을 읽으면서 진리의 시험이라는 생각과 함께 신앙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후 오 교도의 생활이 바뀌게 되었다. 신앙심이 더욱 강건해 짐은 물론이고, 생활 표준도 항상 신성품 11장 「봄바람은 사가없이 불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란다」는 법문을 깊이 새기며 보은일념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후로 오 교도는 『가정적으로도 하는 일에 자신이 생겼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대종사님께서 지켜주시는 듯한 느낌이 있어 자신감과 함께 누구에게라도 이 법을 권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교리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는 일과 남창지역에 교당을 설립하는 일이 숙제이자 소망』이라며 활짝 웃는 모습에서 신앙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