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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2 교의품(敎義品)

제2 교의품(敎義品) 36장

대종경(大宗經)

2 교의품(敎義品) 36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종교와 정치는 한 가정에 자모(慈母)와 엄부(嚴父)같나니 종교는 도덕에 근원하여 사람의 마음을 가르쳐 죄를 짓기 전에 미리 방지하고 복을 짓게 하는 법이요, 정치는 법률에 근원하여 일의 결과를 보아서 상과 벌을 베푸는 법이라, 자모가 자모의 도를 다하고 엄부가 엄부의 도를 다하여, 부모가 각각 그 도에 밝으면 자녀는 반드시 행복을 누릴 것이나 만일 부모가 그 도에 밝지 못하면 자녀가 불행하게 되나니, 자녀의 행과 불행은 곧 부모의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는 것과 같이 창생의 행과 불행은 곧 종교와 정치의 활용 여하에 달려 있는지라 제생 의세를 목적하는 우리의 책임이 어찌 중하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교의(敎義)를 충분히 알아야 할 것이요, 안 후에는 이 교의를 세상에 널리 베풀어서 참다운 도덕에 근본한 선정 덕치(善政德治)를 베풀어 모든 생령과 한 가지 낙원의 생활을 하여야 우리의 책임을 다하였다 하리라.]

창생[蒼生]

세상의 모든 사람. 창맹(蒼氓)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일체 중생, 제도받을 중생이 한없이 많다는 뜻으로 억조창생이라고도 하며, 불보살들은 창생을 모두 다 제도할 것을 서원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각자의 몸에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라고 했다(대종경서품13).(원불교대사전)

제생의세[濟生醫世]

일체 생령을 도탄으로부터 건지고 병든 세상을 치료한다는 뜻. 곧 이 세상은 질병기아무지폭력인권유린 등으로 병들어 있으며, 병든 세상에서 인간이 온갖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세상의 병을 다스리고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성의를 다 하자는 것. 성불제중과 같은 의미로 쓰이나 제생의세는 제중에 더 비중을 둔 개념으로 세상의 병맥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개념이다. 세상이 병든 원인이 여러 가지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발전된 물질문명에 비해 정신문명이 발전되지 못하여 문명이 균형을 잃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게 된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개벽 곧 정신문명을 크게 진작시키는 것이 세상의 병을 치료하는 지름길이다. 정신문명을 촉진하는 역할은 주로 종교가 담당해 왔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종교 자체가 세속화되어 가는 현상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종교가 자체 성찰을 통해 거듭나야 하며, 종교인이 종교인다워야 한다. 그래서 종교인의 인격적 자기완성을 가리키는 성불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며, 성불은 궁극적으로 제중, 곧 제생의세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정산종사는 1948(원기33) 교헌을 제정 반포하면서, 총강 제2조에 본교는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학 팔조로써 전 세계를 불은화 하고 일체 대중을 선법화 하여 제생의세하기로 목적한다”(정산종사법어경륜편5)고 했다. 또 원불교의 정체성과 지향정신을 담고 있는 원불교성가2교가(敎歌)’에는 제생의세 목적하는 형제들 고해중생 반야선에 건져서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제중[濟衆]

중생을 제도함. 고해에 해매는 많은 사람들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의미이다. 전무출신을 서원한 사람들은 안으로 성불과 함께 밖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제중의 큰 서원을 세운다. 정산종사는 성불 제중의 서원은 우리 인류의 소원 가운데 제일 높고 제일 큰 서원이요, 성불 제중을 하기 위해 모여 사는 곳은 세상에서 제일 신성하고 귀중한 곳이라 했다(정산종사법어무본편24). 또 이 세상 여러 원() 가운데 사홍서원(四弘誓願)이 가장 크니 사홍서원을 잘 실천하면 성불 제중의 대원을 성취하리라 했다(정산종사법어권도편6).원불교대사전)

성불제중[成佛濟衆]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자각각타(自覺覺他)의 뜻. 모든 불교 수행자의 구경 목적. 원불교인이 공통적으로 목적하고 있는 최고의 가치 있는 삶. 삼학수행으로 삼대력을 얻어 무등등한 대각도인, 무상행의 대봉공인이 되어 세상을 구제하고 일체생령을 교화하는 것. 제생의세(濟生醫世)와 같은 뜻. 진리를 깨쳐 부처를 이루고 자비방편을 베풀어 일체중생을 고해에서 구제하는 것.(원불교대사전)

선정[禪定]

[개요]

불교의 근본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 반야(般若)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수행. 불교 대승보살들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의 하나. 선정이란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멈추고, 마음을 고요하게 통일하여 입정삼매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선정의 형성과 의미]

()’은 싼스끄리뜨의 드야나(dhyāna), 빠알리의 자나(jhāna)에서 전환된 음, ‘()’은 그 의미를 각각 나타내고 있다. 신체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조용하게 인간본래의 모습을 명상하는 것,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서 동요시키지 않는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 이전부터 널리 행하여진 수행법의 하나인데, 불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수행법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의 다섯 번째에 해당하며, 수행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삼학()의 하나이다. 신체를 안정시켜 유지하는 자세로 좌법이 일반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좌선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선정은 좌선만이 아니라 불교 이외에서는 요가로서 다양한 자세가 이용되고 있다.

또한 선종은 좌선종이라고도 하며, 좌선을 특히 중요시하는데, 선종만이 선정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것은 선정에 의한다고 하는데, 다리를 꿇고 앉아서 양손을 다리 위에 손바닥을 위로해서 겹쳐두는 모습의 선정불이 정인(定印)의 석가불이나 아미타불로서 조각, 회화에 많이 표현되고 있는데 수험도 등에서는 영장의 산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을 선정이라고도 했다. 인간의 생활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망념과 사념(邪念)과 허영심과 분별심을 버리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고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했는데,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쉬는 공부인 선정을 닦을 것이 요구된다.

[한국불교에서 선정]

정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이무심정(二無心定)사공정(四空定)사정(四定)팔정(八定)구차제정(九次第定) 등의 수행방법이 제시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원효(元曉)가 주창한 구심주법(九心住法)과 좌선의 행법이 보편적으로 채택되었다. 구심주는 내주(內住: 내면적이 됨), 등주(等住: 평등하게 됨), 안주(安住: 평안하게 됨), 근주(近住: 가까이 머무름), 조순(調順: 조절하여 순하게 됨), 적정(寂靜: 고요함), 최극정(最極靜: 지극히 고요함), 전주일취(專住一趣: 오로지 한 가지 길에 머무름), 등지(等持: 한결같이 마음을 유지함)이다.

그러나 이 구심주를 닦기 전에 고요한 곳에 머무를 것, ()를 청정하게 지킬 것, 의복과 음식에 부족함이 없을 것,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야 할 것, 모든 연()이 되는 사무를 쉴 것 등의 다섯 가지 환경에 대한 선행조건이 제시된다. 선정에 들기 직전에는 반드시 좌법(坐法)에 따라 몸을 단정히 하고, 반드시 진여(眞如)와 상응하여 자기를 제도하고, 다른 이를 제도하여 무상도(無上道)에 이르겠다는 원()을 바르게 세울 것이 요구된다. 본격적인 수행인 구심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세계로부터 받는 자극과 유혹 등으로부터 동요됨이 없이, 평화롭고 고요할 수 있는 마음을 이루게 되는 경지를 아홉 가지로 나눈 것이다.(원불교대사전)

덕치[德治]

덕을 갖춘 사람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일. 덕치주의의 준말.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에 정치(政治)도치(道治)덕치(德治)의 세 가지가 있다. 덕치는 도덕군자가 덕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고 지도함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 곧 선정덕치(善政德治)를 말한다. 정산종사는 교무선 결제식에서 이렇게 훈시했다.

사람을 교화하는 이는 먼저 사람 다스리고 교화하는 세 가지 길을 알고 행하여야 할 것이니, 개인을 다스리고 교화하는 데에나 가정 사회와 국가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하는 데에나 도치와 덕치와 정치의 세 가지 길이 있나니라. 이 세 가지 치교의 도에 대하여는 세전에 자상히 밝히려 하거니와 이 세 가지 교화가 아울러 행해지면 원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요, 이 세 가지 길에 결함이 있는 때에는 원만을 이루지 못하나니, 여러분은 이 세 가지 길에 매하지 말고 이 세 가지 길에 근원하여 개인을 상대할 때나 가정 사회와 국가 세계를 상대할 때나 항상 이를 잘 병진하여 한량 없는 대도 사업의 훌륭한 선도자가 되라”(정산종사법어경륜편17).

과거의 도는 주로 천하 다스리는 도로써 평천하에 이르게 하려 했으나, 미래에는 평천하의 도로써 근본을 삼고, 천하 다스리는 도를 이용하여 평천하에 이르게 할 것이니, 천하 다스리는 도는 정치의 길이요, 평천하의 도는 도치 덕치의 길이니라”(정산종사법어도운편30)고 했다.

덕치란 다스리지 아니하여도 어지럽지 아니 한 것이요(不治而不亂), 말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요(不言而自信), 교화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행해지는 것이다(不化而自行). 이상 세 가지가 부처님의 교화하심이니 노자의 천지무위이화(天地無爲而化)의 자연법칙을 이름이요, 유가의 중화(中和)를 이루게 되면 천지가 자리를 정하고 만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덕치(德治)를 이름인 바, 이들이 모두 성인들의 도성덕립(道成德立)의 최상극치를 이룬 교정일여(敎政一如)의 대교화법인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종교''정치'의 역할과 책임]

모경희 교무

한 가정의 어린 자녀가 행복의 길로 들어서느냐 불행의 길로 들어서느냐는 그 부모의 역할에 의하여 좌우된다.

아직 자력이 부족한 자녀가 원만한 인격으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과 아버지와 같은 '엄격함'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지도되어야 한다. 자애만 있고 엄격함이 없으면 정당한 규율로 지도하기가 어렵고, 엄격함만 있고 자애로움이 없으면 진정으로 감화하기 어려워 그 심성이 거칠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의 행과 불행이 그 부모의 역할에 달려있듯 일체 중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로서 대종사께서는 '종교''정치'를 말씀하셨다.

성자들께서는 천지의 이법을 보아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 도와 덕을 가르쳐 주신다. 만물 변화의 원리인 인과보응의 이치를 깨닫게 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으로 죄를 짓기 전에 미리 방지하고 복을 지어 진급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신다. 즉 종교는 도덕에 근원하여 사람의 마음을 지도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성자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설사 성자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때때로 유혹에 빠져 도덕의 길을 망각하곤 하는 것이 우리 중생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론으로 정한 법에 근원하여 일의 결과를 따라 엄정하게 상과 벌을 베풀어 다스리는 법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인 것이다.

정치는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가지므로 때로는 비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복을 위주로 하는 종교가 다하지 못하는 분명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엄격함과 자애로움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어린 자녀를 바르게 지도하듯이, 일체 중생을 바르게 지도하여 행복의 길로 인도하려면 어떤 집단이라도 엄부(嚴父)와 같은 '정치'와 자모(慈母)와 같은 '종교'가 각기 그 역할을 다하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생의세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는 먼저 일차적 책임인 종교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대종사님 가르침의 참뜻을 깊이 깨달아 실천하고 또 널리 세상을 교화하는데 주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로서 우리의 책무를 다한 것이 아니니, 나아가 정치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하여 도덕에 근본한 선정덕치(善政德治)를 베풀도록, 그래서 일체 중생이 낙원생활이 되도록 까지 하여야 비로소 우리의 소임을 다하였다 할 수 있으리라.

★-THE END-